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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바삭바삭 칠레

하늘과 별과 소금과 사막

by 우당퉁탕세계여행

안데스 산맥의 서쪽에 자리 잡은 칠레는 세상에서 가장 길쭉한 나라이다. 길이는 약 4,300km이고 평균 폭이 180km밖에 안될 정도로 얇고 긴 지형을 가지고 있다. 독특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다양한 자연환경을 즐길 수도 있는데 남쪽으로는 빙하가 있는 파타고니아가 있고 북쪽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기후를 가진 아타카마 사막도 있다.

대학원시절 아는 지인들과 야간스키를 타러 다녔는데 그중 한 명이 칠레사람이었다. 보드를 너무 잘 타서 어떻게 이렇게 잘 타냐고 물었더니 “우리 안데스 산맥 있어!”라고 대답한 것이 기억난다. 칠레의 길쭉한 지리적 특성은 세계에서 가장 긴 산맥인 안데스 산맥의 영향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3주가 넘는 시간을 보내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스페인어가 어색하지 않을 때쯤 여행한 2024년 5월 중순의 칠레여행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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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과 일정

아르헨티나의 피츠로이(Fitz Roy)와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는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중요 코스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도 토레스 델 파이네를 등산하기 위해 칠레로 넘어가는 것이었지만 피츠로이에 호되게 혼나고 동선을 변경했다. 엘 칼라파테에서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 비행기를 타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향했다.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Santiago)에서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칠레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90일간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하다. 우리는 산티아고에서 짧게 머무르며 충전을 좀 하고 다음 목적지인 볼리비아로 이동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지역인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로 이동했다. 아타카마에서는 인근의 다양한 투어를 즐기기 위해 차를 렌트했다. 칠레의 파타고니아 지역이 빠지면서 7박 8일의 다소 짧은 일정으로 칠레를 여행했다.





산티아고(Santiago)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생각보다 더 생기 있고 현대적인 도시였다. 안데스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도시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액자 속 풍경처럼 보이게 했다.

칠레 여행 전 남미 오픈채팅방에 칠레 산티아고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강도 살인사건에 대한 경고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치안이 가장 좋을 것 같은 대통령 주거지 인근에서 벌어진 일이라 걱정이 됐지만 최대한 주의하며 다녔다.

산티아고는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원 없이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2003년에 맺어진 FTA 체결 (한국 최초의 자유무역협정)로 인해 한국인들이 산티아고에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한식집도 많아졌다고 한다. 오랜만에 여러 한식집에서 다양한 한식을 먹으면서 한국을 떠나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의 여정을 축하했다.

한인마트들도 있어서 가봤는데 특이한 점은 모든 제품들에 스티커가 붙어있었다는 점이다. 이유가 궁금해 사장님께 여쭤봤는데 칠레의 법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너무 귀여워 보이는 캐릭터가 과자를 사고 싶게 만들어 세계에서 아동비만율이 가장 높은 칠레 아이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해서 이러한 법이 생겼다고 한다. 애초에 캐릭터 없이 만든 칠레 과자와는 다르게 한국에서 수입한 제품들이기에 이런 식으로 가리고 판매한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스페인어가 공식언어인 칠레는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광장 중심의 도시 계획이나 오래된 건물들과 거리의 모습이 유럽과 다르지 않았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San Pedro de Atacama)

산티아고에서 약 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칼라마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눈 덮인 안데스 산맥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아직 착륙하려면 멀었는데도 땅이 가까워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라는 아타카마는 해발 2,400m에 위치하고 있다.

칼라마 공항에서 산 페드로 아타카마까지는 버스로 약 한 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미리 예약을 못해서 걱정했는데 공항 내에 버스업체들이 몇 군데 있어서 현장에서 바로 결제하고 탈 수 있었다.

아타카마에는 달의 계곡이나 소금호수, 간헐천 등 볼만한 관광지가 많이 있는데 각각 투어를 이용하는 비용보다 직접 차를 렌트해서 여행하는 비용이 더 저렴했다. 작은 마을이라 유명한 렌터카업체는 없었지만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두 곳의 견적을 받아보고 웨스트라는 업체에서 SUV를 빌렸다. 세계여행을 하며 여러 나라에서 렌터카를 빌리면서 느낀 점은 수동차량을 운전할 수 있다면 비용도 저렴하고 차량 선택의 폭도 훨씬 넓다는 것이다.

아타카마는 작은 마을이지만 주변에 다양한 관광지가 많아서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공기도 깨끗해서 별을 보기 위한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길바닥이 모래라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나지만 흙벽돌집과 좁은 골목이 이색적이다. 메인이 되는 길에 여행사와 상점, 레스토랑이 밀집되어 있어서 밤낮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엘 타티오 간헐천 (El Tatio Geysers)

차를 렌트하고 끓어오르는 물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기 위해 해발 4,200m에 위치한 엘 타티오로 향했고, 구경하는데 실패했다. 이쯤 되면 나도 이젠 완전 P다. 오후 세시쯤 매표소에 도착했는데 매표소 직원이 지금 들어가 봐야 볼 거 없다고 내일 새벽에 다시 오라고 했다. 투어가 새벽 다섯 시에 출발하는 이유가 있었다. 새벽에 동이 틀 무렵에 간헐천이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어쩐지 차가 한 대도 없더라니…

미리 알아보고 갔어야 했는데 왕복 약 160km의 드라이브였다. 밝을 때 미리 한번 와봐서 다음날 깜깜할 때 운전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거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찍을 당시에는 알파카인 줄 알았는데 비쿠냐(Vicuña)라는 동물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시 새벽 다섯 시에 길을 나섰다.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엘 타티오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1인당 2만 원이 약간 넘는 입장료를 내고 입장해서 간헐천을 바라보니 멀리서 보이는 모습이 어제 낮에는 작은 컵라면에서 김이 나는 것 같았는데 오늘은 압력밥솥이 폭발한 거 같다.

칠레에 오기 전에 패딩을 무료 나눔 하고 와서 두꺼운 아우터가 없었다. 가장 따뜻하게 챙겨 입고 갔는데 정말 얼어죽을 뻔했다. 살면서 느낀 추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추위였다. 5월 중순의 엘 타티오 투어는 정말 따뜻하게 입고 가는 걸 추천한다. 해발 4,200미터의 산등선을 넘어 엘 타티오에 해가 비추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추위가 바로 사라졌다. 부글부글 끓는 물이 이곳저곳에서 솟구친다. 고산지대에서 분출되는 수증기와 떠오르는 태양은, 그야말로 대지의 숨결을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증기를 배경으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캠핑을 하는 가족을 만났다. 지열로 얼마나 오래 삶아야 익을지는 모르겠는데 달걀을 삶고 있었다. 성공했기를…

엄마 이거 맞아요?



달의 계곡 (Valle de la Luna)

달의 표면을 닮은 계곡이다. 아타카마 시내에서 5km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다. 가까워서 쉽게 생각하는 바람에 미루다가 갔는데 한 번은 마감시간이 지났고 한 번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 폐쇄되었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이 지구에서 가장 좋아하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아쉬웠지만 요르단에서 화성을 닮았다는 와디럼을 경험했기에 지구밖 풍경에 대해 멀리서만 보고도 만족할 수 있었다.



발티나체 라군 (Baltinache Lagoons)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인 아타카마는 연중 강수량이 0~2m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건조한 지역이다. 물의 유입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 고온건조하여 증발량은 많아서 여러 광물들만 남은 라군이 많다. 염류가 축적되어 사람이 물에 둥둥 뜰 정도로 염도가 높은 라군들이 많다.

요르단에서 사해에 몸을 담가본 우리는 물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한적한 발티나체 라군을 가기로 했다. 아타카마 시내에서 약 35km 떨어져 있는데 길의 대부분이 비포장 도로여서 구글리뷰에 타이어 펑크가 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글들이 많았다. 우리는 다행히 무사히 도착했지만 오는 동안 펑크 난 차량도 봤고 매표소에도 한대가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었다.

1인당 약 14,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면 사해처럼 물에 뜰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라군이 나온다. 우리는 겨울시즌이기도 했고 사해를 다녀와서 패스했지만 물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무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에메랄드빛의 작은 물 웅덩이들이 나오는데 입구에 있던 것과는 다르게 투명하고 깨끗해서 보호관리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얀 소금결정으로 둘러싸인 투명한 에메랄드빛 웅덩이와 풀 한 포기 없는 무채색의 배경은 정말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살라 데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Salar de Aguas Calientes Sur)

아타카마 관광지를 찾아보다가 거리가 멀어도 꼭 가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아름다운 호수를 발견했다. 살라 데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라는 호수였는데 정보를 자세히 찾아보지 않아서 왕복 세시간이상 걸리는 꽤 멀었던 거리를 한 번 헛걸음했던 곳이었다. 당연히 관광지에 해당 매표소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갔는데 이곳에서는 표를 살 수 없다고 해서 입구컷 당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Socaire라는 마을에서 인터넷으로 예매한 티켓을 보여주고 체크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편도 150km가 넘는 거리이고 가는 길에 주유소가 없어서 포기하고 다음날 다시 찾아갔다.

아타카마 시내에서 한 시간 반정도 걸리는 해발고도 3,367미터에 위치한 Socaire라는 마을에서 미리 예매한 티켓을 보여주고 허가증 같은 걸 받는데 이 종이를 보여줘야 입장이 가능했다.

칼리엔테스 호수는 해발고도 약 4,200미터에 위치한, 붉은 바위와 에메랄드빛의 염호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차에서 내리자 매서운 추위를 느끼게 하는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둘 다 다행히 고산병 증상이 없어 앞으로의 볼리비아, 페루여행도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아타카마에서 가본 관광지 중에서 단연 최고의 풍경이었다. 멀리 있는 설산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더 환상적으로 보이게 해 주었다. 붉은색 바위들과 에메랄드색 호수는 세계여행을 하며 경이로운 장면들을 그래도 꽤 많이 봐서 더 이상 놀랄 일이 없다는 생각이 오만한 생각이었음을 알려주었다.

걱정했던 고산병증상도 없었고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추위도 잊고 두 시간정도 오래 머물렀다. 눈으로 본 색감이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 안타깝다.

보통 유명한 관광지는 블로그에 후기가 있기 마련인데 접근성이 좋지 않아 이곳에 대한 정보는 찾기 힘들었다. 아타카마에서 투어를 이용하던지 우리처럼 렌트를 할 경우에는 기름 가득 채우고 꼭 Socaire 마을에 멈춰서 체크인 후 가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남회귀선 (Tropic of Capricorn)

아타카마의 숙소로 돌아가는 23번 국도에는 세계적으

로도 의미 있는 지리적 기준선인 남회귀선이 있다. 남회귀선이란 지구 적도에서 남쪽으로 약 23.5도 떨어진 위도선으로 남반구의 열대 지방과 온대 지방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이곳을 기준으로 북쪽은 열대지방이고 남쪽은 온대지방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몸이 고생했던 여행이었다. 밤마다 너무 건조한데 추워서 난로를 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래 립밤을 잘 바르지 않는데 이곳에서는 필수다. 누군가는 코피가 계속 나서 코에도 립밤을 바르라는 팁도 알려주었다. 고산지역이라 숨쉬기도 편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뒤덮은 별들과 땅을 뒤덮은 소금은 가장 이국적인 모습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 여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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