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의 소중함
이번 여행지는 고대 잉카문명의 본거지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가 있는 페루이다. 남아메리카대륙의 안데스 지역을 지배했던 잉카제국의 중심지였던 페루에는 많은 유적지가 있고 독특한 자연환경 때문에 남미에서도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함께 관광객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페루는 우리나라에서 남미대륙 여행을 위해 시작하는 페볼칠아브 중에 첫 번째 나라로 우리나라보다 약 13배 큰 나라이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마추픽추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많이 접해보기도 했고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었던 칠레와 볼리비아를 지나면서 같은 안데스지역인 페루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더 커져갔다.
2024년 6월 초에 알파카를 원 없이 볼 수 있었던 페루를 여행한 15박 16일 동안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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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및 일정
우리나라 국민은 최대 90일까지 무비자로 페루에 체류할 수 있다. 우리는 그중 15박 16일 동안 페루에 머물면서 여행했다.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볼리비아홉이라는 버스를 타고 코파카바나를 경유하여 쿠스코에 도착했다.
쿠스코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를 가기 위한 관문 도시이자 페루여행의 중심지이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마을을 지나야 한다.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성스러운 계곡투어를 신청해서 버스를 타고 첫 번째 마을인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까지 이동하고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Aguas Calientes)까지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후 다시 쿠스코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약 19시간을 이동하여 이카 (ICA)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520일 동안의 여행 중 이동하며 가장 고생했던 구간 중 하나이다. 고산지대에 구불구불한 낭떠러지 비포장 도로를 몇 시간 동안 달렸는데 멀미가 나서 아예 버스 안 화장실 앞에 서서 갔다. 이카는 와카치나라는 오아시스마을을 가기 위한 거점 도시로 와카치나까지는 택시를 타고 왕복했다. 그리고 페루여행의 마지막은 수도인 리마에서 보냈다. 성수기가 아니었음에도 마추픽추 기차표를 구하기 힘들어서 페루의 일정이 조금 늘어났는데 매력 넘치는 페루를 즐기기에 15박 16일도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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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여행 추천 아이템
페루에서 마셨던 두 가지 음료가 너무 맛있었다. 한 가지는 쿠스코의 한식당집 종태에게 추천받아 매일 하루에 한잔은 마셨던 초코 루꾸마(Choco Lúcuma)다. 안데스지역에서만 나는 열대과일 루꾸마와 초코를 섞어 만든 음료인데 특히 스타벅스에서 파는 초코루꾸마가 아주 요물이었다. 루꾸마의 호박과 고구마 같은 고소함과 달달함이 초코를 만나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리마에서 출국할 때, 공항의 스타벅스에서도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페루의 전통 음료인 치차 모라다(Chicha Morada)이다. 보라색 옥수수라는 뜻처럼 자색옥수수와 파인애플 계피 설탕등을 넣고 끓인 페루 전통 음료라고 한다. 메뉴판에 치차 모라다가 없는 식당에서도 주문이 가능했었다. 매번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만 시켜 먹다가 직접 만든 전통음료를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에 복귀해서도 지인에게 부탁해 치차 모라다 가루 파우더를 구해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에 있다. 정말 강력 추천한다.
볼리비아의 우유니와 라파즈, 코파카바나는 페루의 쿠스코보다 평균 고도가 높다. 우리가 왔던 동선으로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 셈이다. 다행히 고산병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휴대용 산소통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한 번씩 마시면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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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를 향하여
코파카바나를 짧게 둘러보고 페루로 넘어가기 위해 국경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하차하여 출국심사를 하고 걸어서 페루 입국심사소로 이동한다. 버스는 짐을 그대로 싣고 페루로 넘어가서 우리를 기다린다. 볼리비아 출국사무소 앞에서 남은 볼리비아 돈을 페루 돈인 솔로 환전하고 아치문을 통과해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는 일은 항상 긴장된다. 새로운 나라를 여행한다는 설렘과 여행 중 유일하게 사진촬영도 불가능한 무서운 분위기의 출입국사무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매번 새롭다. 페루 입국 시 입국도장을 찍어주지 않아서 출국할 때 공항에서 고생했다는 글을 봐서 걱정했는데 아무 말하지 않았는데도 입국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세계여행 중 입국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나라는 아르헨티나가 유일했다.
무사히 국경을 통과해서 푸노라는 도시에 저녁 8시쯤 도착했다. 식사를 원하는 우리 부부와 영국인 한 명은 버스기사와 함께 푸노 시내로 향했다. 이때 먹은 음식은 기억에 많이 남지 않는데 음료가 너무 맛있었다. 페루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잉카콜라는 풍선껌 맛 비슷한 달디단 맛이어서 실망했는데 현지인이 추천해 준 치차 모라다(Chicha Morada)는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쿠스코 (CUSCO)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 남미에서는 짐을 도난당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고 해서 다리받침 밑에 끼고 잤다. 운 좋게 버스 2층 제일 앞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다리를 뻗고 편하게 잠을 잤다. 가장 앞자리까지 와서 다리받침을 들고 꺼내기는 쉽지 않았을 거 같다. 덕분에 이른 아침 쿠스코에 도착해서 얼리 체크인을 하고, 잠깐 쉬었다가 바로 시내로 나갈 수 있었다.
당시 쿠스코 광장에서 어떤 축제가 있다고 했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코르푸스 크리스티(Corpus Christi) 라는 쿠스코에서 가장 큰 종교행사 중 하나라고 한다. 쿠스코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에 위치한 대성당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첫날 시내관광에 애를 먹었다.
쿠스코에서 첫 스케줄은 한식당에서 점심 먹기였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도시답게 여러 곳이 검색되었는데 광장 근처의 한식당은 폐업을 했다고 해서 K-FOOD라는 곳을 찾아갔다. 우리가 갔던 많은 도시에서 한식당을 꽤 많이 가봤는데 맛과 서비스 모두 만족한 몇 안 되는 식당이었다.
사장님 소개로 스페인어 능력자 중학생아들과 함께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여행사들을 비교 견적해 보고 성스러운 계곡투어와 마추픽추 편도 기차, 그리고 비니쿤카투어를 예약했다. 마추픽추에서 다시 쿠스코로 돌아오는 기차는 마추픽추티켓을 미리 예약하지 못한 관계로 상황을 보고 직접 예매하기로 했다.
원하는 투어를 예약하고 쿠스코 시내 투어를 했다. 볼리비아의 라파즈처럼 산의 경사지에 세워진 집들이 인상적인 도시였다. 또 한 가지 눈에 띄었던 건 다채로운 색상과 패턴의 옷들이었다. 수공예로 직접 면직기술을 선보이던 가게도 있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면직기술이 발달해서 현재에도 페루의 주요 산업 중 하나라고 한다.
쿠스코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통복장을 입고 새끼 알파카를 데리고 다니는 현지여성들을 볼 수 있는데 관광객들을 상대로 팁을 받고 알파카와 사진을 찍도록 해주고 있었다. 페루를 여행하다 보면 알파카를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너무 예쁘고 순하게 생긴 새끼알파카와 형형색색의 전통복장을 입은 현지인과의 사진은 그냥 지나치지 못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Saqsaywaman(삭사이와만)
고대 잉카인들이 하늘은 콘도르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쿠스코의 형태가 퓨마 모양이 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믿기 힘들었다. 눈으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도시를 오늘날 드론이나 비행기처럼 하늘 위에서 파악할 수 없었을 텐데 특정 형태로 만들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위성사진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형태이다.
그중에서도 퓨마의 머리로 해석되는 고도 3,700미터의 고대 잉카제국 유적지 삭사이와만에 갔다. 쿠스코 시내에서 멀지 않아 우버를 불러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표를 사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알파카 여러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침을 뱉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도 익숙한 듯 도망도 치지 않고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도와줬다.
길이 약 400미터나 되는 성벽이 거대한 돌들로 퍼즐처럼 맞춰져 있었다. 규모도 상당히 커서 다 둘러보려면 두 시간 이상은 필요할 거 같다.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차를 불러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노을이 너무 예뻐서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북적이던 낮과는 달리 고요한 골목길이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져서 그 순간만은 몸이 힘들다는 생각이나 치안을 걱정하지 않고 맘 편히 기분 좋은 산책을 하는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친체로(Chinchero)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아구아스 칼리엔떼스라는 마을에 가야 한다. 또 그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야 하는데 쿠스코에서 출발하거나 오얀따이탐보 (Ollantaytambo)라는 마을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오얀따이탐보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성스러운 계곡 투어를 하기로 했다. 성계투어라고도 하는데 이 투어를 이용하면 마지막에 오얀따이탐보에 내려주기 때문에 많은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투어이다.
이른 아침 미니버스를 타고 친체로라는 마을로 향했다.
친체로는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이다. 스페인 식민지 당시 세워진 교회와 계단식 논이 있는 유적지인데 마을 입구에 전통 직물을 체험할 수 있는 곳에 먼저 들렀다.
천연재료로 다양한 색상의 실을 염색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옷이나 가방 같은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새끼 알파카털로 만든 제품들은 좋은 품질만큼 한화로 십만 원이 넘는 높은 가격대로 형성되어 있었다.
친체로 마을을 잠깐 구경하고 스페인 양식의 교회와 계단식 논을 보러 갔다. 고대 잉카유적과 페루의 전통마을을 같이 볼 수 있었다.
모라이 (Moray)
친체로를 관람하고 모라이라는 잉카시대 농업 실험실로 이동했다. 모라이는 거대한 원형 계단식 구조로 된 유적이다. 각 층마다 온도차가 나서 다양한 작물 실험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 옛날 이런 과학적인 실험을 진행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포토스팟에서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주고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밑에까지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다. 내려가서 직접 보니 상당히 큰 규모였고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마라스 염전 (Salineras de Maras)
모라이에서 약 20분 정도 비포장 도로를 달려 한쪽이 절벽인 산길을 달렸다. 저 멀리 산골짜기에 하얀색 염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라스는 지하 암염수가 흘러나와 자연 증발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천연소금 염전이다.
3,000개가 넘는 작은 염전 웅덩이가 계단처럼 펼쳐진 광경이 경이롭다. 해발 약 3,200미터에 염전이라니 상식을 벗어나는 광경에 원리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이 지역 땅속 깊은 곳에는 수백만 년 전 바다가 있던 시절의 염분이 남아 있다고 한다. 땅속에 스며든 이 지하 암염층에서 지금도 소금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는데 수로를 이용해서 각 구역에 물을 저장해 자연 증발 시켜 소금을 얻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한 개의 웅덩이에서 연간 150~300kg 정도 생산된다고 하는데, 3,000개가 넘는 웅덩이에서 수작업으로 소금을 채취하는 주민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오얀따이탐보(Ollantaytambo)
뷔페식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얀따이탐보로 이동했다. 아구아스칼리엔테스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하는 곳이다. 쿠스코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마을인데 쿠스코에서 바로 가는 것보다 우리처럼 반일 투어라도 성스러운 계곡투어를 하면 여러 신비한 광경을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한다.
오얀따이탐보는 페루 쿠스코 북서쪽의 성스러운 계곡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자, 잉카 제국의 군사 요새, 종교 유적,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모두 공존하는 아주 특별한 장소이다.
이곳이 성계투어의 마지막 코스이기 때문에 가이드의 설명을 잘 듣고 몇 시간 뒤 기차시간에 맞춰 기차역까지 셀프로 찾아가야 한다. 테라스식 요새 (Fortaleza) 유적지에 입장하면 거대한 석조 구조물들이 계단식으로 쌓여있다. 올라갈지 말지 묻는 가이드 말에 잠시 망설였는데 또 안 올라가 볼 수 없어서 일행들을 따라 올라갔다.
방어 + 농경 + 종교적 기능이 동시에 있었던 다기능 유적인데 정상에 도착하면 거대한 6개의 돌로 된 벽이 있는다. 돌 사이의 틈이 거의 없이 정교하게 가공된 태양의 신전 (Templo del Sol)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장비나 기계가 없던 시절 각 50톤이 넘는 저 거대한 바위를 어떻게 이동시켰는지 궁금했다. 심지어 채석장은 약 6km 떨어진 강건너편이라고 하는데 육지 이동도 말이 안 되지만 강을 어떻게 건넜는지는 정말 미스터리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
드디어 마추픽추로 향하는 마지막관문 마을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약 두 시간 정도 이동하면서 절벽에 캡슐 같은 것들이 매달려 있어서 신기했는데 당시 기준으로 며칠 전 방영된 지구마블세계여행에서 곽튜브와 강기영이 방문했던 절벽호텔이었다. 약 150m 높이 절벽을 두 시간 정도 등반해서 올라가야 숙박이 가능한 호텔이다.
저녁 6시쯤에 아구아스 칼리엔떼스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한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차가 다닐 수 없고 기찻길이 마을을 관통하고 있었다. 마추픽추를 왕복하는 버스들만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따로 있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일 새벽에 매표소에 줄을 서는 일이다. 세 달 전부터 예매해야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마추픽추를 볼 수 있다고들 하는데 내일 어디를 여행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던 우리 같은 세계여행자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지 못한 사람은 현장에서 표를 구매할 수 있는데 새벽 매표소 오픈시간에 대기번호표를 수령하고 정해진 오후시간에 다시 나와 순서대로 원하는 시간대의 표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2024년 6월 1일에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했는데 이 날부터 마추픽추 서킷 시스템이 크게 개편되었다. 마추픽추를 둘러볼 수 있는 코스를 서킷이라 부르는데 기존 5개였던 서킷이 3개로 줄고 좀 더 다양한 하위 경로가 10가지나 생긴 것이다. 너무 복잡하고 새로 생긴 서킷을 가본 사람 후기가 전무해서 기존에 우리가 가려던 서킷과 비슷하다는 Circuito 2 - Ruta Clásico Diseñada을 예매하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내일 새벽에 줄을 서야 하는 매표소를 사전답사를 위해 찾아갔다. 밤 9시가 넘은 시각에도 열려있길래 슬쩍 물어봤는데 내일 표를 살 수 있다고 한다. 반신반의하며 입구에서 여권확인 후 대기번호표를 받아 표를 구매하러 안쪽 매표소로 들어가 문의했는데 진짜 표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13시부터 15시까지의 표들뿐이어서 이른 아침의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내일 새벽에 다시 줄을 서보기로 했다. 이때 대기번호표가 350번대였는데 오후시간대 표들은 구매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6시가 되기 전 대충 모자만 눌러쓰고 숙소 바로 앞 매표소에 갔다. 앞에 줄 선 인원은 다섯 명이었고 우리는 6번과 7번 번호표를 받았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잠깐 눈을 붙이고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를 한 바퀴 둘러봤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는 마추픽추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음식점들이 있는 작은 마을로 뜨거운 물이라는 뜻이다. 돌아다니며 온천은 못 봤지만 우리나라 시골의 계곡 같은 분위기였다. 계곡을 따라 많은 숙소와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었다. 항상 숙소에서 체크아웃한 후에 짐들이 문제인데 기차로만 이동하는 마을의 특성상 숙소와 레스토랑에서도 짐을 맡아주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마침내 원하던 아침 7시 표를 예매하고 마추픽추까지 가는 버스도 예매를 했다. 마을에서 마추픽추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편도 약 45솔인 버스를 타고 약 30분 동안 올라가는 방법과 약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동안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다음날 아침 6시 조금 넘어 버스 타는 곳으로 갔는데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끝이 보이질 않는다. 쉴 새 없이 버스가 사람들을 태우는데도 결국 우리가 예매한 마추픽추 입장시간 7시가 넘어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마추픽추(Machu Picchu)
드디어 마추픽추에 도착했다. 고도가 약 2,000미터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보다도 400미터가 높은 곳에 위치한 마추픽추는 잉카 문명의 고대 도시 유적이다.
“마추(Machu)”는 오래된, “픽추(Picchu)”는 산, 꼭대기라는 뜻으로 오래된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연하게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도대체 이 높은 곳에 이 정도 규모의 돌들로 정교한 석조 구조물들을 만들었는지 불가사의하다.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사진으로 보던 바로 그 장소가 나온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다. 아침에는 간혹 안개 때문에 마추픽추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너무나 화창하고 맑은 날씨였다.
이 사진을 찍기 위해 헤어밴드부터 판초까지 풀 세팅을 하고 올라갔다. 볼리비아에서 구매하려 했는데 판초는 페루가 젤 저렴하고 디자인도 다양하다는 말에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헤어밴드만 사고 참다가 결국 쿠스코에 도착해서 판초를 샀다.
마추픽추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상단테라스에서 마을 안으로 직접 들어가기 위해 내려갔는데 우리가 예매한 서킷 2는 중심부 마을까지 직접 내려가 볼 수 있었다. 중간에 티켓을 검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구간이 세분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 티켓 검사도 제대로 안 하고 단체관람객들도 많아서 통제가 잘 되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상단의 사진 중 왼쪽 석축이 오른쪽 보다 더 정교한 게 쌓은 걸 볼 수 있는데 계층에 따라 정교함도 다루고 거주하는 구역이 달랐다고 한다. 바로 앞에서 석조건축물을 보니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1,450년경에 만들어진 걸로 추측되는 구조물들은 지붕이 소실되고 부분적으로 파손된 모습도 있었지만 돌로 만든 벽체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안타깝기보다는 오랜 세월을 버텨낸 존재 자체가 더욱 위대해 보였다.
브런치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다가 마추픽추가 건설된 시기에 대해서 알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랑 비교해 보자면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집권시기라고 한다. 훈민정음도 만들고 해시계랑 측우기 등을 만들었던 우리나라도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마추픽추 입장권을 미리 예매하지 못해서 보지 못할까 봐 불안했었는데 다행히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를 가까이에서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비니쿤카 (Vinicunca)
이른 아침 여섯 시쯤 비니쿤카 투어가 시작됐다. 레스토랑에 들러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약 두 시간 동안 이동해서 무지개산이라 불리는 해발고도 5,000미터가 넘는 비니쿤카에 도착했다. 세계여행을 하며 갔던 곳 중 가장 높은 지대였다.
우리가 탄 버스가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뷰포인트까지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정도 트래킹을 하거나 오토바이나 말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처음 경험하는 5,000미터 이상의 고산에서 숨이 가쁜 트래킹을 할 자신이 없어서 일단 올라갈 때는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걸어서 올라가는 길과 오토바이 길은 따로 있었다.
아프리카의 모리셔스에서도 칠색지구공원에 가서 알록달록한 색을 나타내는 흙들을 봤었는데 비니쿤카를 보고 있으니 너무 작고 귀엽게 느껴졌다. 정말 엄청난 스케일이었다. 오랜 시간 빙하에 묻혀있다가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이렇게 투어가 생기고 본격적으로 관광지화 된 건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각기 다른 색의 광물퇴적물이 층을 이뤄 장관을 이뤄내고 있었다.
우리처럼 눈이 부셨는지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알파카들이랑 사진도 찍고 약 한 시간의 자유시간을 즐겼다. 우리를 인솔했던 가이드가 시간을 계속 체크해 줘서 이 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궁금했는데 지금 사진을 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 같다.
비니쿤카는 단지 예쁜 색의 산이 아니라 수천만 년의 지구역사와 현대의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상징적인 장소이다. 새로운 관광지가 이렇게 생겨났다는 것이 눈은 즐거웠지만 마음은 씁쓸했다.
와카치나 (Huacachina)
쿠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18시간을 달려 와카치나로 향했다. 남미여행하면서 버스는 정말 원 없이 타보았다. 그중에서도 이번 코스가 육체적으로 가장 힘이 들었다. 나스카라는 도시를 경유하는 15시간 35분이 걸리는 도로를 이용했는데 확대해서 보면 하단의 우측 사진과 같은 길이다. 한쪽은 낭떠러지에 비포장이라서 여행 후 처음으로 멀미를 심하게 했다. 실제로는 18시간 이상이 걸렸다.
중간에 나스카라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뭐가 있는지 찾아봤더니 엄청난 곳이었다. 외계인이 그린 그림이라는 설도 있을만큼 하늘에서 봐야지만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있을만큼 거대한 그림들이 넓은 평지에 그려져 있다. 미리 알았더라면 분명히 지나치지 않았을 관광지인데 아쉬웠다. 페루에 다시 올 이유가 생겼다.
이카라는 도시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바로 옆 마을 와카치나로 향했다. 오아시스 마을로 유명한 와카치나가 우리의 페루에서 마지막 여행지이다. 사막의 한가운데 오아시스라기보다 차로 금방 도착해서 그런지 사막 초입의 유원지느낌이 나는 동네였다.
원래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오아시스였는데 2015년에 물이 거의 마를뻔한 이후로는 인공펌프를 통해 급수를 해서 물이 마르지 않도록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버기카 투어를 예약하러 나갔다. 넓은 사막을 버기카를 타고 노을을 보러 가는 투어인데 와카치나에서는 필수 투어이다.
버기카 앞자리가 시야도 좋고 영상 찍기 좋아서 인솔자 바로 뒤를 열심히 쫓아가서 앞자리를 사수해 앉았는데 다른 여행객 두 명이랑 얘기하더니 갑자기 우리 보고 뒷자리로 옮기라고 한다. 이유를 물어도 못 알아듣는척하길래 화가 좀 났지만 여행을 하며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겪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긴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화가 났지만 그냥 참았다.
중간에 샌드보딩도 체험할 수 있었는데 이전의 여러 나라에서 해봤던 만큼 자신감 있게 올라탔다가 데굴데굴 굴러서 세계각지에서 모인 여행객들에게 빅 웃음을 줄 수 있었다. 방심은 금물이다. 샌드스키와 샌드보드를 타는 사람들도 꽤 많았는데 쉽지 않아 보였다.
모래언덕뒤로 사라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참 앉아있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여러 나라에서 사막을 경험했지만 매번 새로운 느낌이다. 모래의 색상이나 날씨도 다르고 그날의 기분도 다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 같다.
한국을 떠나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가고 남미여행도 막바지다 보니 날이 저무는 게 점점 더 아쉬웠다.
이제 다음 여행은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