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하얀 세상으로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던 장면이 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그곳, 거울처럼 모든 것을 비추는 순백의 세계. 바로,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 중 하나이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했을 때는 이렇게 건조하고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했는지 몰랐다.
우리가 갔던 남미의 나라 중에 유일하게 비자가 필요해서 관련 서류들 챙겨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칠레이민청을 방문했었다. 독특한 치마와 양갈래로 길게 땋은 머리가 인상 깊었는데 볼리비아에서 만난 대부분의 어머님은 저런 스타일이었다.
거울처럼 반사되어 어디가 하늘이고 바닥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우유니 소금사막과 야경이 이쁘기로 소문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 라파즈까지.. 평균고도가 약 3,600미터에 육박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나라 볼리비아를 여행한 2024년 5월 말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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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및 일정
칠레의 산페드로 아타카마에서 새벽 세시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우유니로 향했다. 마을이 작아서 웬만한 숙소에서 터미널까지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우리는 짐은 많은데 길이 모레바닥이라 끌고 갈 수가 없어서 미리 섭외해 둔 택시를 타고 터미널까지 이동했다. 새벽에도 볼리비아로 향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Cruz Del Norte라는 회사의 버스를 타고 약 열한 시간 동안 달려 볼리비아 우유니에 도착했다. 남미여행을 하면서 버스를 원 없이 타본 거 같다. 버스에서 절도가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가방을 꼭 끌어안고 뒤척이며 잠들었다. 중간에 잠깐 아침을 먹기 위해 들린 휴게소가 해발고도 4,320미터였다. 우리 둘 다 고산병이 없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다.
우유니에서 라파즈도 약 열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시인 라파즈를 즐기고 볼리비아홉이라는 버스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코파카파나를 경유하여 페루 쿠스코에 도착했다.
우유니 소금사막 (Salar de Uyuni)
우유니 소금사막은 해발고도 약 3,600m에 위치한 서울의 약 17배 크기의 세계최대 규모의 소금사막이다. 소금사막을 가기 위해서는 우유니사막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출발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해야 한다.
우유니마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임에도 남미에서도 하위권인 볼리비아의 경제상황과 건조한 기후 때문에 잘 정비되어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현지인들과 관광객으로 붐비는 활기찬 마을이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2024년 5월의 우유니 사막은 하얀 소금사막에 물이 가득 차있어서 거울처럼 보이는 성수기가 아니었다. 더구나 딱 보름달이 떠오르는 시기에 도착해서 예쁜 사진을 못 건지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가지고 업체를 찾아가 예약을 했다. 당연히 렌터카를 빌려서 셀프로 투어를 해보려고 알아봤는데 워낙 저렴한 투어비용 때문에 렌터카업체가 없어졌다는 글만 확인할 수 있었다. 비용문제뿐만 아니라 너무 넓은 지역이라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건기에는 물이 반사되는 웅덩이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셀프투어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는 후기들을 찾아보고 풀데이+선셋과 스타라이트 + 선라이즈 두 가지 투어를 각각 다른 업체에서 예약했다. 먼저, 새벽에 출발하는 스타라이트 투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진을 잘 찍어 주기로 소문난 가이드 겸 드라이버 겸 사진사가 있다고 해서 아리엘이라는 업체를 찾아가서 예약을 했다. 아리엘이 직접 간다고 해서 기대했지만 매번 같은 환경에서 같은 수준의 열정으로 찍어주는 건 아닌 것 같으니 최근 후기가 좋은 곳으로 예약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진촬영 전에 십시일반 모아서 팁을 좀 주는 것도 많은 인생샷을 건지기 위한 방법일 거 같다.
풀데이 투어는 자전거를 타고 찍는 연출을 하기 위해 후기를 찾아보고 오아시스라는 업체로 정했다. 비성수기였지만 다행히 인원이 채워져서 비싼 프라이빗투어가 아닌 일반투어가 가능했다.
먼저 새벽 세시에 출발하는 스타라이트+선라이즈투어를 갔다. 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걸어가니 몇몇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국인 한 명과 한국인 네 명, 현지에서 놀러 온 볼리비아인 한 명이 오늘 투어를 같이했다.
5월 말, 새벽시간의 우유니 사막은 너무너무 추웠다. 두꺼운 양말을 두 개 신고 비닐로 감쌌지만 고무장화를 통해 느껴지는 한기는 너무너무 차가웠다. 손이 너무 시려서 사진 찍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나마 차 안이 따뜻해서 사진 찍는 시간보다 차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태양만큼 밝은 보름달을 보며 각자 자유시간을 가졌다. 5시 반쯤 되자 보름달이 넘어가고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이제 스타라이트투어의 하이라이트 사진을 찍을 순간이다. 각자 핸드폰으로 가이드가 보여주는 색상 중에 하나를 고르고 사진을 찍는다. 핸드폰을 켜고 색상이 보이게끔 한 다음에 셔터스피드 소리에 맞춰 자신이 맡은 글자를 그린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으면 우유니의 N처럼 나비모양이 되니 주의해야 한다.
30분 남짓 촬영 후 6시가 넘어가니 점점 동이 터온다. 너무 춥고 어두운 시간이 짧았던 탓에 그땐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손전등을 하늘로 비춰 찍는 연출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원하는 사진을 미리 가이드나 일행들에게 보여주고 부탁하는 것이 좋다.
뒷배경을 바꾸기 위해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날이 밝아오자 추위도 사라지고 배경이 너무 예뻐서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다. 참고로 장화색상도 고를 수 있어서 원하는 색으로 의상에 맞춰 신을 수 있었다.
오전 8시에 투어를 마치고 그날은 휴식을 취했다. 오전 비행기 시간에 맞춰 바로 공항으로 드롭해 주기도 하니 미리 조율이 필요하다.
다음날 오전에는 한국인들과 함께했던 풀데이투어를 갔다. 기차무덤이라 불리는 곳을 시작으로 기념품매장이 많았던 마을도 들리고 한참을 달려 선인장섬에도 갔다.
스타라이트투어는 장화를 빌려주고 풀데이투어는 판초를 빌려준다. 칠레에서부터 판초를 사려고 알아봤었는데 상인들이 페루에서 수입해 온다는 것을 듣고 페루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남미를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여행자들은 페루에서 구입하는 것이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평원에서 공룡이랑 사진도 찍고 누워도 보고 여러 가지 연출사진을 찍는다. 한국인들끼리 있으니 맘이 편해지고 잘 통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촬영했다.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재밌는 사진을 많이 건질 수 있다.
해가 지기 전에 들른 플래그존에서 태극기를 발견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에 오는 여행자들이 직접 깃발을 가져와 꽂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 테슬라도 가져다 놨다. 마침 테슬라가 힘을 내야 하는 상황이어서 힘을 보탰다.
노을이 질 무렵 마지막 장소에 도착했다. 장화를 신고 찰방 이는 물 위에서 와인도 한잔하고 자전거도 타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것도 우유니소금사막 투어의 매력인 거 같다.
건물의 벽체가 소금으로 만든 블럭으로 지어진 루나 살라다 (LUNA SALADA)라는 4성급 호텔에서 하루 머물렀다. 신기한 건축재료도 볼만했고 수영장과 각종 편의시설도 있어서 모처럼 호텔의 서비스를 즐길 수 있었다. 꽤 멀리 떨어져 있긴 한데 걸어서도 소금사막에 진입할 수 있어서 원 없이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라파즈 (La Paz)
라파즈에 가기 위해 우유니에서 슬리핑 버스를 탔다. 밤에 출발해서 아침에 라파즈에 도착하는 약 열 시간 정도 걸리는 일정이었다. 우유니 사막의 꿈같은 새벽을 뒤로하고, 우리는 밤새 달리는 버스를 타고 해발 3,600m가 넘는 도시, 라파즈에 도착했다.
산자락을 따라 층층이 올라간 집들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는 낯설고도 인상적이었다. 특색 있는 복장을 한 현지인들을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라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다.
마녀시장 (Mercado de las Brujas)
라파즈의 명물 ‘마녀시장(Mercado de las Brujas)’은 이름부터가 흥미롭다. 거리 곳곳에는 말린 새끼라마, 약초, 부적, 그리고 각종 주술 아이템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상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객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다양한 색상의 가방이나 옷 등 기념품 위주의 상점들이 많아졌는데 아직도 독특한 분위기의 전통 주술용품을 판매하는 상점들도 볼 수 있었다.
미 텔레페리코(Mi Teleférico)
경사지에 만들어진 도시의 주요 교통수단은 미 텔레페리코라 불리는 케이블카다. 총 30km가 넘는 11개의 노선이 도시 전역에 펼쳐져있다. 2014년에 개통된 케이블카는 지하철처럼 환승도 가능한 운송수단일 뿐만 아니라 도시전망도 가능한 전망대 역할도 한다. 장점이자 단점은 아찔하면서도 짜릿하다는 점이다.
킬리킬리 전망대(Mirador Killi Killi)
일몰 후 야경을 보기 위해 전망대를 찾았다. 가는 길의 치안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킬리킬리 전망대는 해발고도 3,640m인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도시중 하나인 라파즈의 풍경을 360도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산들과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코파카바나 (COPACABANA)
다음 목적지는 페루의 쿠스코 (CUSCO) 다. 우리는 볼리비아 홉 (Bolivia Hop)이라는 버스를 미리 예약하고 아침 7시에 숙소 앞에서 탑승했다. 홉 시스템은 중간 경유지에서의 일정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었다. 표를 예매할 때 코파카바나에서의 일정을 정해서 당일에 바로 쿠스코로 갈 수도 있었고 다음날이나 며칠 뒤에 출발도 가능했다. 티켓 한 장으로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우리의 아메리카대륙에서의 시간은 이제 제한이 생겼다. 며칠 전 우유니에서 인터넷으로 유럽여행을 위한 차를 리스했기 때문이었다. 정해진 날짜에 차를 인수하려면 한 달 반 뒤에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해야만 했다. 아름다운 티티카카 호수를 짧게 즐기고 당일에 쿠스코로 향했다.
먼저 볼리비아 Tiquina라는 곳에 도착해서 호수를 건너기 위해 페리를 타는데 사람들은 버스에서 하차하여 따로 보트를 탄다. 짧게 휴식을 취하고 다시 버스에 탑승하여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가 있는 코파카바나로 향했다.
라파즈에서 출발한 지 약 4시간이 지난 후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우리 둘 다 아무렇지 않아서 잊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해발고도 약 3,8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여행하고 있었다.
코파카바나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아주 유명한 포장마차들이 있다. 가장 후기가 좋은 집에 들어가 소고기볶음과 트루차라는 송어구이를 먹었다. 워낙 많은 한국인들이 와서 그런지 한글로도 메뉴들이 적혀 있었다. 맛보다는 부산의 태종대 분위기와 한글 메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식당이었다.
세로 칼바리오 (Cerro Calvario)
코파카바나에는 가장 유명한 투어인 태양의 섬 외에도 사진명소로 알려진 쎄로 칼바리오가 유명하다. 우리는 4시간의 짧은 경유시간 안에 태양의 섬투어를 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되어 쎄로 칼바리오만 올라가 보기로 했다.
아찔한 경사를 따라 삼십 분 정도 올라가니 기가 막힌 풍경이 펼쳐졌다. 고산지대에서는 가벼운 운동만으로도 숨이 차올라 힘든데 아름다운 티티카카호수를 배경으로 꼭 사진을 찍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힘들게 올랐다. 제주도의 4.5배 크기인 티티카카호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인 우유니의 환상적인 비현실감과는 또 다른, ‘하늘과 맞닿은 도시’라는 수식어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라파즈,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다웠던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 티티카카까지….
볼리비아는 고산지대 특유의 공기, 독특한 문화, 그리고 눈을 사로잡는 풍경들 덕분에 잊지 못할 나라가 되었다.
사실 볼리비아는 쉽지 않은 여행지였다. 비자발급도 까다로웠고 고산 때문에 숨이 차서 계속 불편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을 감싸고도 남을 만큼 풍경이 경이로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페루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