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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선물 같은 에콰도르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갈라파고스

by 우당퉁탕세계여행

남미의 마지막 여행지는 에콰도르다. 본토의 과야킬이나 키토에서 숙박을 했지만 15박 16일의 일정 대부분을 갈라파고스에서 보냈다. 갈라파고스는 1978년에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약 1,000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유럽에서 타고 다닐 리스카를 이미 예약한 상황에서 일정에 맞게 이동하려면 미국 한 달 일정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중미나라들과 멕시코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갈라파고스를 가기로 결정한 건 사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만큼 갈라파고스는 우리에게 너무 매력적인 곳이었다.

우리가 2024년 6월 12일에 갈라파고스섬에 입도했는데 8월 1일부로 입도비가 기존 100 USD에서 두 배가 올라 200 USD가 된다는 소식도 갈라파고스행을 결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바다사자, 펭귄과 함께 수영하고 상어를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갈라파고스를 가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다. 보통 가장 큰 세 개의 섬을 여행하는 갈라파고스를 효율적으로 돌아보고, 수많은 투어 중 우리가 원하는 투어를 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했다. 아프리카의 모리셔스처럼 갈라파고스도 오픈채팅방이 잘 활성화되어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그 지역만의 고유한 동식물들을 볼 수 있는 자연환경을 잘 유지하여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그래서 입출국 시 농수산물이나 검역이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검사를 한번 더 하고 탐지견의 수색을 받는다. 내 가방에 맛있는 냄새가 나서 그런지 당첨되어서 따로 검사를 한번 더 받았다. 복잡한 절차를 거치면서도 그만큼 기대감도 점점 더 커져갔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될 무렵 2024년 6월 중순의 진화론의 발상지 갈라파고스를 여행한 15박 16일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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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및 일정

에콰도르가 아닌 나라에서 갈라파고스를 가는 비행기 편은 없었다. 오직 국내선만 이용해서 갈 수 있는데 우리는 과야킬로 IN 해서 키토로 OUT 하는 동선을 계획했다. 무조건 내륙 도시를 경유해야하기 때문에 바로 연결된 비행편이 아니라면 짐을 잘 관리 해야한다. 페루 리마 공항에서 출발하면서 몇 차례나 (Luggage Through) 러기지쓰루가 맞는지, 갈라파고스로 바로 가는게 맞는지 확인하고 맞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경유지인 과야킬에 도착하고 혹시나해서 본 컨베이어벨트에 우리짐이 나와서 돌아가고 있었다. 만약 그 때 의심을 안했다면 아직도 돌아가고 있…지는 않겠지만 걱정때문에 여행을 망칠뻔했다.

갈라파고스는 크게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가운데 산타크루즈섬과 오른쪽 산 크리스토발에 공항이 있다. 우리는 오픈채팅방에서 얻은 정보로 산타크루즈로 들어가서 왼쪽의 이사벨라 섬을 여행하고 다시 산타크루즈로 돌아왔다가 마지막으로 산크리스토발에서 아웃하기로 했다. 보트를 타고 약 두 시간씩 걸리는 섬들은 세 개의 섬이 모두 다른 분위기였다.

에콰도르 정부하에 거주권과 이동에 제한이 있어서 자유롭지 않은 특별 보호구역임을 감안하더라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도 섬 밖을 나가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현지인들에게 들었다. 누군가의 삶은 이 섬에서 피어나고 이 섬에서 진다는 생각을 하니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우리의 삶이 감사했다.

우리나라 국민은 무비자로 90일간 에콰도르에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하다. 갈라파고스 섬에 입도하기 위해서는 국립공원 입장료 (인당 200 USD)를 제외하고 TCT 카드(Transit Control Card)가 필요하다.

각 섬마다 할 수 있는 투어가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투어에 맞춰 일정을 조정했다. 우리는 세 개의 섬 중 가장 번화한 산타크루즈에서 5일, 펭귄도 보고 바다사자랑 이구아나를 원 없이 본 이사벨라를 4일, 물개랑 같이 수영을 즐겼던 산크리스토발에서 3일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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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

갈라파고스를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국내선만 이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페루 리마에서 에콰도르에서 가장 큰 도시인 과야킬 (Guayaquil)로 향했다. 머무는 시간이 하루밖에 안 됐지만 유심을 구매하고 환전을 해야 해서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치안에 대해 위험하다는 말들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도착해서 보니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다. 사람하나 없는 대로변과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집들이 무슨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유심을 사러 숙소 근처 몰까지 걸어서 갔는데 대낮임에도 마주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나중에 갈라파고스 현지인이 키토로 휴가를 다녀왔다고 하길래 과야킬은 안 가냐고 물어봤더니 손으로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위험해서 에콰도르 사람들도 가기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2025년 현재는 외교부에서도 출국을 권고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거 같다.

갈라파고스도 여행자재지역이 되어있어 의아하지만 최신정보를 많이 찾아보고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좋겠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한 한창 전쟁 중이던 요르단을 여행할 때도,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이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마약에 취한 사람들 때문에 걱정했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할 때도 최신정보를 최대한 많이 찾아보고 외교부의 안전수칙을 따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운 좋게도 아무 일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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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파고스

에콰도르의 공식화폐는 미국 달러이다. 극심한 경제위기와 인플레이션으로 2000년부터 기존 자국 화폐인 수크레를 폐지하고 미국 달러를 공식통화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같은 통화를 쓰다 보니 갈라파고스의 한 해 평균 전체 관광객수 중에 미국인 관광객수의 비율이 3~40%나 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연관이 있는데, 발트라섬의 공항시설도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전초기지로 구축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갈라파고스는 미국인 관광객들한테 특화되어 있다. 공식언어는 스페인어지만 대부분 상점과 레스토랑에서 영어사용이 가능했고 자연스레 팁문화도 스며들어있다. 아직 미국이 아닌데 같이 투어를 진행한 미국인들이 자꾸 팁을 건넨다. 만족할 만한 서비스에 기분 좋게 주고 싶은데 너무 눈치가 보였다. 팁에 인색하지 말라는 와이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인당 20만 원짜리 투어에 인당 2만 원을 팁으로 내는 걸 보고 세계여행자의 얇아지는 지갑과 익숙하지 않은 팁문화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투어를 위해 배를 타기 위해서는 수상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투어비에 포함되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섬마다 입도비가 따로 있었다.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한 곳이 많아 불편했다. 안 그래도 비싼 투어비 때문에 현금이 금세 떨어져 ATM도 수차례 갔었다.

나중에 미국을 여행하면서 생각한 건데 만약 우리가 갈라파고스보다 미국을 먼저 여행했더라면 스트레스를 덜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미국은 미국이었다.





산타크루즈섬 (Santa Cruz Island)

산타크루즈섬에 가기 위해서는 섬 바로 위에 비주거보호지역인 발트라섬의 공항을 거쳐야 한다. 발트라 공항에서 보트 선착장으로 공항 셔틀을 이용해서 이동하고 보트를 타고 산타크루즈 섬으로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택시를 타고 섬의 남쪽 푸에르토 아요라(Puerto Ayora)라는 도시까지 이동한다.

발트라 선착장의 큰 로고가 기아의 로고랑 비슷하게 보였는데 여러 곳에 기아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알고 보니 기아에서 갈라파고스섬에 지속가능 이동성과 환경보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설치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기아의 전기차도 보급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공항 셔틀버스에서 막 휴가복귀 중인 택시기사를 만나서 미리 흥정을 하고 택시를 타게 되었다. 갈라파고스 사람들은 대체 휴가를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는데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를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서울로 휴가를 가는 거랑 비슷한 느낌인 거 같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가볍게 산책을 나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휴양지의 모습에 여유를 느끼며 바다에 가까워지자 처음 보는 광경들이 펼쳐졌다.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그늘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바다사자들과 선착장에 유유히 헤엄치는 상어들, 실제로 마주하니 엄청 컸던 펠리컨, 길바닥에 널리고 널린 거대한 이구아나가 갈라파고스를 방문한 우리를 맞아줬다.

바다사자와 거리두기는 바다사자가 지키지 않는다
선착장에서 볼수 있는 흔한 동물들
처음에만 징그럽고 무서운줄 알았는데 지금도 내스타일은 아님



찰스 다윈 연구소

(Charles Darwin Research Station)

갈라파고스제도는 찰스다윈이 진화론 (자연선택설)을 생각하게 된 토대가 된 연구자료들을 만든 곳이다. 실제 그가 갈라파고스제도에 머문 기간이 한 달을 조금 넘겼을 뿐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찰스다윈연구소를 가려면 꼭 가이드와 함께 들어가야 한다. 입구 쪽에 시간마다 신청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근처 카페에서도 가이드를 섭외할 수 있었다.

갈라파고스는 작고 큰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주하는 원주민이 말하기를 각 섬에 사는 거북이는 각기 다른 특징이 있어서 알아보기 쉽다고 말한 점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핀치라는 새들의 부리가 딱딱한 씨앗을 먹는 지역은 굵고 강한 부리가 됐고 곤충이나 꿀을 먹는 지역의 핀치새는 가늘고 긴 부리를 갖게 되었다. 선인장의 잎을 먹는 거북이나 이구아나가 없는 섬의 선인장들은 낮게 펼쳐진 형태가 되었고 동물들이 사는 섬의 선인장들은 키가 커졌다는 사실들을 위의 사례들과 함께 연구해서 생물들의 상호작용이 진화 방향에 영향을 준다는 진화론 (자연선택론)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거북이와 이구아나 피해서 키가 커진 선인장
갈라파고스 거북이

찰스다윈 연구소 내에는 Lonesome George (외로운 조지)가 있다. 1971년에 발견되어 2012년에 죽기 전까지 지구상에 같은 종을 남기려 노력했지만 결국 자신의 아종에서 마지막 개체가 되어 박제로 남은 외로운 조지이다. 보호하지 않으면 진짜로 사라진다는 경고의 상징으로 갈라파고스 환경보호 정책과 관광규제 강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쓸모가 많았던 거북이는 인간들에게 많이 잡혀서 점점 개체가 줄었다고 한다. 그중 한 마리는 안 잡혀가고 연구소 구석에 쪼그리고 있었다.

메인거리에는 많은 레스토랑과 기념품샵, 여행사들이 있다. 가까운 미국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기 때문에 팁문화가 생겼고 달러를 쓴다. 움직일 때마다 달러가 들어서 우스갯소리로 갈라파고스가 아니라 달라파고스라는 별명이 생긴 이유라고 한다.

섬마다 볼 수 있는 동물들과 할 수 있는 체험이 워낙 다양해서 투어의 종류도 다양하다. 전부 배를 타고 나가는 투어이기 때문에 예약이 가득 차 있거나 해당요일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오픈채팅방에서 정보를 얻어 노스무어 노르테 투어와 핀죤섬 스노클링투어를 예약했다.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샵마다 대여 물품의 차이로 추가요금이 있기 때문에 잘 알아봐야 한다.



세이모어 노르테 (North Seymour) 투어

아침 9시에 버스를 타고 산타크루즈 섬에 입도할 때 들렀던 선착장으로 향했다. 세이모어섬은 발트라공항이 있는 발트라섬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세이모어 노르테 투어는 갈라파고스를 상징하는 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투어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바다사자가 맞아준다. 갈라파고스섬을 여행하며 바다사자와 물개, 바다표범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다 물개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차이가 있었다. 일단 가장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건 귀의 유무이다. 사진처럼 귀가 있거나 앞지느러미로 잘 기어 다닌다면 바다사자이다.

산타크루즈 섬에서 많이 본 이구아나랑은 다른 색상의 이구아나가 있었다. 흔하게 봤던 검은색 이구아나는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생활하는 바다 이구아나이고 아래 사진의 노란색은 육지 이구아나이다. 처음 봤을 때는 좀 무서웠는데 볼수록 뚱한 표정이 매력적이었다.

가이드를 따라서 섬을 돌아보는 노스 세이무어 투어는 갈라파고스에서만 서식하는 독특한 동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투어라 인기가 많았다.

목에 붙어있는 붉은색 주머니를 한껏 부풀린 프리깃버드(Frigatebird) 도 볼 수 있었는데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군함조라고 불리는데 이 섬이 군함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서식지라고 한다.

갈라파고스를 상징하는 동물 중에 가장 특이하고 인기가 많은 동물이 나타났다. 파란색 발을 가진 블루풋 부비새 (Blue-footed Booby)이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성향과 한쪽발을 번갈아 들며 어설픈 춤을 추는 모습들을 보고 스페인어 bobo (바보)에서 유래한 Booby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우리는 운 좋게도 알을 품고 있는 파란 발 부비새를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땅 위에 둥지를 만들어 두세 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레드풋 부비새도 있는데 겐도바사 섬(Genovesa)에만 살고 있어서 그 섬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해서 아쉬웠다.

세이무어섬을 약 한 시간 동안 둘러보고 근처에 모스케라 섬(Mosquera Islet)으로 이동했다. 돌고래뼈가 놓여있고 바다사자가 백사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같이 좀 뒹굴다가 가볍게 스노클링을 즐기러 이동했다.

갈라파고스에서 첫 스노클링은 생각보다 깊은 물과 탁한 시야 때문에 마음껏 즐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나라에서 스노클링을 하면서 봤었던 예쁜 산호초와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없는 해양동물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열심히 돌아다녔다.

물이 차가워서 WET슈트 착용은 필수이다. 업체마다 가기고 있는 슈트의 종류가 달라서 꼭 확인이 필요하다. 다행히 이 날은 긴팔 5mm 슈트가 있어서 추위를 많이 타는 와이프가 꽤 오래 물속에서 머무를 수 있었다.

다음날부터 갈라파고스의 바닷속을 본격적으로 탐험하기 위해서 첫날은 가볍게 인사만 나누고 산타크루즈섬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산타크루즈 선착장에는 많은 벤치가 있었다. 분명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바다사자가 다가왔다. 사람들이 자리를 피해주자 자연스럽게 벤치를 점령한다. 너무 편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토닥토닥하고 싶었는데 겨우 참았다.



핀존 섬(Pinzón Island) 투어

핀존 투어는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 준 스노클링투어이다. 보트를 타고 산타크루즈섬 서쪽으로 한 시간 넘게 달리면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 나오는데 그 섬이 바로 피존섬이다. 바다거북과 상어, 각종 열대어들 등 다채로운 해양생물들과 스노클링을 할 수 있다.

첫날 가볍게 맛본 갈라파고스 바다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을 안고 다이빙을 했다. 자연스레 지금껏 들어갔던 바다와 비교를 하게 되었는데 사실 동남아에 비해 시야는 좋지 않다. 세 개의 해류가 만나는 교차지점이라 부유물과 플랑크톤이 섞이면서 시야가 탁해진다고 한다. 그래도 작은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 산호초 위주의 동남아 보다는 훨씬 크고 희귀한 생물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갈라파고스 스노클링의 장점이다.

앞서가는 가이드를 따라서 거북이랑 가오리, 화이트팁 상어를 보았다. 그중에 하이라이트는 바로 바다사자이다. 물밖에서와는 다르게 아주 빠르게 수영을 즐긴다. 사람들 주변을 맴돌며 장난도 치고 가끔은 사람들 앞으로 갑자기 지나가면서 놀라게 하기도 한다.


갈라파고스의 투어는 섬에 있는 업체가 배들을 연결해 주는 방식이다. 업체에서 예약할 때 긴팔슈트의 유무를 확인받았지만 막상 배에 오르고 슈트를 착용하기 위해 고를 때 없는 경우가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럴 경우 확실히 해야 한다는 걸 알고 배에 오르기 전 가이드에게 슈트의 존재를 물어봤지만 있으니까 걱정 말고 타라는 말만 믿었다. 우리는 핀죤섬투어 이후 아주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해결방법은 미리 빌린 슈트를 들고 타는 방법이다. 대부분 식사와 장비들을 포함하는 투어이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최악의 컨디션으로 갈라파고스 여행을 망치기 싫다면 꼭 슈트를 미리 빌리는 것을 추천한다.



이사벨라 섬 (Isabela Island)

갈라파고스 전체 면적의 약 58% 차지하는 가장 큰 섬 이사벨라는 야생동물과 화산 지형 탐험의 천국이다. 화산으로 형성된 섬답게 화산지형을 하이킹하는 투어나 바닷속에서 용암이 굳은 흔적 위에서 스노클링 하는 투어 등이 많았다.

산타크루즈섬에서 약 두 시간정도 달려 남동쪽에 위치한 푸에르토 비야밀(Puerto Villamil)에 숙소를 잡았다. 산타크루즈섬을 중심으로 이사벨라와 산크리스토발행 보트는 매일 운영되고 있었다. 여러 업체를 돌아봤는데 1인당 30달러라는 비용은 차이가 없었다.

산타크루즈 섬에서 핀죤투어를 덜덜 떨면서 하고 난 이후로 살짝 컨디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두 시간 넘게 거친 파도를 뚫고 배를 타고 온 여파도 있을 거라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새로운 섬에 발을 딛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산타크루즈 섬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일행과 만나 El Estero라는 곳으로 향했다.

공항도 있고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산타크루즈섬은 기념품샵도 많고 레스토랑도 많은 북적북적한 번화가였다. 산타크루즈섬과 비교했을 때 이사벨라섬은 조용하고 한적해서 좀 더 자연에 가깝게 느껴졌다.

갈라파고스에 도착해서 이구아나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무섭고 징그러웠는데 눈길 가는 데마다 엎드려 있는 이구아나들을 매일 보니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우리는 결국 보지 못했지만 바닷속에서 먹이를 먹는 바다이구아나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라고 한다.

나무 위의 펠리컨과 서로 뒤엉켜있는 이구아나들을 지나쳐 거대한 맹그로브 숲이 있는 El Estero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약 4km 떨어져 있는 곳이라,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약간 먼 거리인데 천천히 산책하면서 동물들도 보고 얘기도 나누면서 오니 금방이었다.

맹그로브 숲 건너편으로 나가야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물이 좀 덜 빠져서 숲을 통과할 수가 없었다. 하필 수영복을 안 챙겨 갔는데 썰물 시간대를 잘 맞춰가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맹그로브숲을 빠져나오면 탁 틔인 바다를 볼 수 있다. El Estero 근처는 얕은 석호와 바다 사이의 경계로, 작은 물고기 떼가 자주 출몰하기 때문에 수많은 부비새들이 모여서 사냥을 하는 아주 진귀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바다 위를 선회하며 물고기 떼를 탐색하고 리더의 다이빙을 따라 수십 마리가 동시에 수직낙하한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경이로운 광경에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어느덧 해가 넘어간다. 구름이 많아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아까와는 또 다른 황홀한 풍경을 감상하며 마을로 돌아왔다.


이사벨라에 도착한 날 저녁부터 열이 펄펄 나고 콧물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 되었다. 갈라파고스 여행을 10일 정도만 계획하고 온 거라 하루하루가 소중했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이틀 동안 마치 물개들처럼 뒹굴거리며 쉬었다.

마치 우리의 모습

현지 감기약은 아무리 먹어도 소용이 없었는데 한국인 동행이 준 조제 감기약을 먹자 상태가 바로 호전됐다. 다음에 세계여행을 다시 한다면 꼭 한국에서 만든 감기약을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대로 이사벨라를 놓칠 순 없었다. 아직 물에 들어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되어 이사벨라 주변 용암암반들을 둘러보는 카약투어를 신청했다. Tintoreras 섬(티토네라스) 근처까지 가이드와 함께 돌아보며 자연과 교감하는 투어였다.

카약투어는 약 한 시간반정도 진행되는데 우리는 2인용 카약을 선택했다. 부비새도 가까이에서 보고 남아공에서 봤던 펭귄과는 다르게 좀 더 날카롭게 생긴 갈라파고스 펭귄도 볼 수 있었다. 적도 근처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펭귄이라는데 멸종위기동물이라고 한다. 운이 좋으면 스노클링을 하면서 같이 수영하는 경험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사벨라에서 해마를 보기 위해 로스 투네레스 (Los Tuneles) 투어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바닷속을 들어가 보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산타크루즈섬으로 향했다. 마지막섬인 산크리스토발섬에 가기 위해서는 가운데 위치한 산타크루즈섬을 경유해야 한다.



갈라파고스 맛도리

이사벨라에서는 관광객 대상 레스토랑보다 현지 레스토랑을 많이 갔다. 갈라파고스에는 랍스터가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랍스터가 아니라 랑고스티노 (Langostino)라는 작은 랍스터가 많았다. 레스토랑을 여러 군데 돌아다녔는데 랍스터는 없다고 하고 랑고스티노만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랍스터의 스페인어인 줄 알았는데 맛도 다르고 가격차이도 많이 나기 때문에 꼭 확인이 필요하다.

산타크루즈에는 우리나라 곱창구이와 비슷한 트리파(Tripe)라는 소곱창요리가 있다. 보통 내장을 기름에 튀기거나 바삭하게 구워내고 토마토, 양파, 상추 등을 섞은 생채소 샐러드(ensalada criolla)와 함께 나온다. 푸에르토 아요라 시장 좌판에서 파는데 한국인들 후기가 좋다.

산크리스토발섬에서는 똠양꿍맛과 비슷한 참치 수프를 잘하는 집이 있다. Encebollado (엔세보야도)라는 음식인데 에콰도르 전통 음식이라고 한다. 참치(tuna), 유카(cassava), 양파, 고수, 라임, 고추 등이 들어가 있어 국물이 진하고 해장용이나 든든한 한 끼로 좋다.



산크리스토발 섬(San Cristóbal Island)

산크리스토발은 갈라파고스제도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는 가장 오래된 화산섬 중 하나이다. 인당 30달러를 내고 산타크루즈에서 갈라파고스의 마지막 여행지 산크리스토발로 향했다.

컨디션이 괜찮아져서 긴팔 슈트와 핀을 빌려서 티헤레타스 (Muelle Tijeretas)라는 곳으로 스노클링을 하러 갔다. 산크리스토발 남서부에 위치한 스노클링 명소인데 가려면 언덕을 넘어가야 한다. 가는 길에 갈라파고스의 역사, 생태, 보존 활동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는 지안니 아리스멘디 환경 해설 센터가 있는데 산책로가 데크로 굉장히 잘 조성되어 있었다.

갈라파고스에 있었던 날 중에서 이 날이 가장 날씨가 좋았다.

산책로를 따라서 언덕을 넘어가자 보기만 해도 시원한 바다가 펼쳐졌다. 가져간 슈트를 입기 위해 데크에 앉아있는데 바다사자들이 점점 다가온다.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먼저 앉아있던 사람들을 내쫓는다. 데크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이 장소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럼 같이 앉을 법도 한데 혼자만 눕겠다고 소리를 지른다.

장난꾸러기 바다사자랑 한참을 수영하고 놀았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 놀라게 하기도 하고 물 위에 떠있는 낙엽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진짜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꼈다. 수온이 낮아서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손에 꼽을 만큼 특별한 경험이었다.

갈라파고스를 여행하면서 산크리스토발에서 바다사자를 가장 많이 봤다. 특히 일몰 맛집이라는 Playa Mann이라는 해변에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쉬고 있는 바다사자들이 많았다. 사람 반, 바다사자 반이었다.

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에서 엄청난 수의 물개를 만나고 그 악취 때문에 충격적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숫자가 적어서 그런지 다행히 악취는 없었다.


갈라파고스는 기대했던 대로 우리에게 엄청난 만족감을 준 여행지였다. 난생처음 보는 동식물들과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까지도 가능했던 살아있는 지구 박물관이었다. 해변을 점령한 바다사자, 모래사장을 누비는 이구아나, 파란 발을 자랑하던 부비새들 모두 너무나 소중한 기억이다.

갈라파고스에서의 모든 것이 좋았지만 딱 한 가지 깊은 바닷속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갈라파고스를 온다면 꼭 스쿠버다이빙을 배워와서 망치상어를 보겠다고 다짐하며 다음 여행지인 미국으로 향했다.


섬들을 돌아다니며 기념품샵을 많이 봤는데 이 슬리퍼는 산크리스토발 공항에만 찾을 수 있었다. 티셔츠도 사고 모자도 사고 엽서도 사고 많이 샀는데 이 귀여운 슬리퍼는 안 살 수가 없었다.

갈라파고스는 기념품 천국이다. 기념할 것이 많아서 그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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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