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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더 그랜드 미국_서부 3편

미서부 국립공원 캠핑카여행

by 우당퉁탕세계여행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지나온 나라들과는 다르게 미국을 여행하면서는 소통의 문제로 힘들었던 기억이나 혹시 내가 흥정을 잘 못해서 덤터기를 쓰지는 않을까 하고 느끼는 불안감도 없었다.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믿을만한 한국인 후기가 존재했고 여행객을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친절했다.

문제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였다. 내가 먹은 음식값의 최소 15~20%을 더 내야 하는 팁문화는 미국 여행 끝날 때까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에게 내미는 카드계산기에 자동으로 찍혀있는 18%, 20%, 25% 의 팁 말고 No tip을 누를 용기도 없었지만 팁에 인색하지 말고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와이프말에 수긍했다.

또 한 가지는 인사였다. 지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나의 안부를 묻는다. 매번 교과서처럼 “How are you?”라고 물으면 “I’m fine. Thank you!”라고만 말했다.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형식적인 인사에 불가하다는 걸 알았지만 나에겐 단순한 인사치레 그 이상의 다정함으로 다가왔다.

나의 안부를 묻는 다정함이 막 익숙해질 무렵 2024년 7월 중순의 미서부 국립공원 캠핑카 여행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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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및 일정

처음 RV카를 빌릴 때는 6박 7일의 일정이었지만 에어컨 고장으로 인한 차량 교체와 보상으로 9박 10일의 일정으로 늘어났다. 40도가 넘어가는 무더위에 그 고생을 했지만 이틀 연장해 주는 것으로 통보받았다. 차량교체를 위해 피닉스를 왕복한 기름값이라도 받아내려 했는데 매일 달라지는 담당자들에게 계속 설명하는 것도 지치고 계속 이 일에 매달릴수록 우리 여행에 영향을 미치는 게 느껴져서 그만하기로 했다.

피닉스에 다녀오느라 동선이 이상해졌다. 9박 10일 동안 약 1,500마일 (2,500km)이 넘는 여정이었다. 가장 길었던 이동은 첫째 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세도나까지 이동한 4시간 30분 정도였다. 보통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의 이동을 고려해 동산을 계획했다. 각 지역의 캠핑장에서 하루나 이틀 동안만 있었는데 진짜 캠핑카 여행을 하려면 한 장소에서 더 오래 머무르며 여유 있게 즐길 줄 알아야 진짜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일정에 쫓겨 급하게 이동을 하니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랜드서클 이동경로

라스베이거스 - 세도나 - 그랜드캐년 - 홀스슈밴드 - 앤탈로프 캐년 - 모뉴먼트 밸리 - 아처스 국립공원 - 브라이스 캐년 - 지온 캐년 - 라스베이거스




모뉴먼트 밸리 (Monument Valley)


모뉴먼트 밸리는 미국 서남부, 유타주와 애리조나주 경계에 위치한 붉은 사막과 거대한 바위 기둥들로 이루어진 나바호 족 자치구역이다.

나바호 족은 미 서남부에 자리 잡고 있던 원주민이다. 약 30만 명이나 되는 인구수와 자치면적 모두 미국 최대 규모라고 한다. 미국의 이주정책 당시 갈등으로 많은 다툼이 있었고 끝내 자치지역을 인정하는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모뉴먼트 밸리는 국립공원이나 주립공원이 아니라서 앤탈로프 캐년과 마찬가지로 애뉴얼 패스는 사용하지 못하고 따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미국 서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가진 곳이다.

앤텔로프캐년을 지나 한참을 달리다 보니, 지평선 끝에 혼자 서 있는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약 270m의 높이로 초고층 빌딩 기준인 200m를 훌쩍 넘는 규모의 LeChee Rock이라는 엄청 큰 돌산이었다.

나바호 사람들은 그 바위를 ‘전사들의 영혼이 깃든 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조상의 기운과 창조자의 숨결이 깃든 신성한 장소로 여기는 앤탈로프 캐년과 마찬가지로 경이로운 대자연의 형상을 살아있는 이야기로 생각한다고 한다.

두 시간 반정도를 더 달리자 모뉴먼트 밸리의 거대한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 3억 년 전 바다였던 이곳은 모래, 진흙, 점토 등이 퇴적되어 여러 겹의 지층이 형성되었고 지각변동으로 인해 육지가 되면서 쌓여있던 지층이 바람과 비, 온도차에 의해 풍화와 침식의 과정을 거치며 단단한 암석만 남아 기념탑처럼 우뚝 서있게 되었다고 한다.

늦은 오후에 미리 예약한 캠핑장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다. 뒤편으로 모뉴먼트 밸리가 보이는 캠핑장이었는데 그림 같은 풍경이 비현실적이었다. 오늘은 입장시간이 지나서 캠핑장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돌아보기로 했다. 내부가 비포장 도로라서 우리가 타고 온 RV로는 내일 입장이 힘들 거라고 해서 모뉴먼트 밸리를 구경하는 동안만 다른 차를 렌트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밀린 빨래를 하기 위해 세탁기가 있는 곳에 갔다가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를 한 분을 만났다.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시는 한국인이신데 손자 손녀들과 함께 여행 중이라고 하신다. 부부가 일을 그만두고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세계를 여행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셨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본인은 매번 미루다가 이제야 은퇴하고 여행이라는 걸 해보고 있는데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아 힘드시다면서 젊은 나이에 용기를 낸 우리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셨다.

이 지역은 대기가 맑아 밤하늘의 별들을 촬영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기술이 부족해 제대로 찍지 못했는데, 조용한 캠핑장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까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생각나서 문득 우리의 삶에 감사했다.

모뉴먼트 밸리를 구경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투어를 신청해서 가이드와 함께 투어차량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과 직접 차를 몰고 셀프로 돌아보는 것이다. 우리 부부의 최우선은 자유로움이기 때문에 가이드의 설명을 듣지 못해 아쉬움도 있었지만 직접 운전을 하기로 했다. 마침 우리처럼 그냥 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4륜차들이 캠핑장 리셉션 옆에 줄지어 서 있었다. 빨간색 jeep를 보고 맘을 뺏겨버려 당장 예약을 했다.

모뉴먼트 밸리는 우리 캠핑장에서 오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애뉴얼 패스를 못써서 아쉬웠지만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풍경이었다. 도로포장이 되어있는 곳이 없고 모래가 많은 곳도 있어서 4륜차가 아니면 고생했을 거 같다.

우리 앞에 투어차량이 있었는데 더위와 모래바람을 피할 수 없는 오픈카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차를 타고 투어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바호 족 투어를 하면 일반 투어 차량은 들어갈 수 없는 곳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모뉴먼트 밸리에는 주요 스팟들을 돌아볼 수 있는 Valley Drive라는 원형코스가 있다. 약 두 시간정도가 소요된다고 해서 이 코스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The View Hotel이라는 유명한 숙박시설이 나온다. 객실에서는 모뉴먼트 밸리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한다. 옛날 서부영화들의 주요 촬영지로서 인근 숙박시설 중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곳이라고 한다. 숙박을 하지 않아도 바로 옆 주차장에서 멋진 뷰를 감상할 수도 있었다.

처음 마주한 것은 The Mittens & Merrick Butte (미튼즈 & 메릭 버트)인데 왼쪽과 가운데는 마치 벙어리장갑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끝이 안 보이는 평평한 지면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지형이 엄청났다.

그다음 찾은 곳은 Three Sisters (세 자매봉)였다. 수녀 또는 자매들이 모여있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위태로워 보이는 세 개의 우뚝 선 기둥들이 있어서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모든 나바호 족 보호구역내에서는 드론 촬영 금지

가장 단단해서 끝까지 살아남아있는 봉우리가 가장 위태롭게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얇은 봉우리는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는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모뉴먼트 밸리의 밸리 드라이브는 운전하며 미국 서부의 압도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다. 가이드 없이 투어를 하면 지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으니, 미리 찾은 정보를 참고하면 더욱 알찬 드라이브가 될 것 같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붉은 바위 산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살아있는 생생한 공간인지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 (Forrest Gump Point)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는 모뉴먼트 밸리 인근의 도로 위에서 붉은 사암 지형을 배경으로 한 베스트 포토 스팟 중 하나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로 불리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3년 넘게 미국을 횡단하며 달리던 주인공이 바로 이곳에 멈춰 서서 명대사를 남긴다.

“I’m pretty tired. I think I’ll go home now.”

(좀 피곤하네요. 이제 집에 갈까 해요.)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을 떠나자 주인공은 달리기 시작했다. 3년이 넘는 기간을 달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정신적 멘토로 삼기도 한다. 그냥 달리고 싶어서 달린 포레스트 검프의 행동은 누군가에겐 위안과 영감을 줄 수 있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삶의 본질일 수 있다는 영화의 해석이 가장 와닿았다.

어릴 적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 장소에 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많은 차량들이 길가에 멈춰서 3km나 뻗어있는 직선도로에서 사진을 남긴다.



아처스 국립공원 (Arches National Park)


아처스 국립공원 가는길에 본 Mexican Hat과 Church Rock

모뉴먼트 밸리에서 약 세 시간 반을 달려 아처스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아처스 국립공원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공식적으로 2,000개가 넘는 아치들로 유명한 곳이다. 붉은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아치형태의 사암은 압도적인 자연의 조형미를 보여준다.

오전 7시 이전이나 오후 네시 이후에는 예약 없이 무료입장이 가능해서 가장 유명한 포인트 한 곳을 오늘 보고 나머지는 내일 제대로 둘러보기로 했다. 노을 맛집이라는 Delicate Arch Trail을 하기로 했다. 아처스 국립공원의 가장 유명한 트레일인데 해질 무렵 붉은 아치 뒤로 지는 해는 압도적인 장관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미 밤 8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거의 뛰다시피 언덕을 올랐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면 불빛도 없고 위험할 거 같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랑 같이 올라가는 몇몇 팀도 있어서 의지하며 편도 약 2.5km를 올라갔다. 난간이 없는 위험한 지점을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자 우리의 목적지인 델리케이트 아치가 나타났다.

다음날 아처스 공원을 둘러보니 왜 이 아치의 이름이 섬세한 아치가 됐는지 알 수 있었다. 높이 약 16미터나 되는 거대한 아치가 얇고 유려하게 휘어져 있어 마치 조각가가 깎아놓은 듯했다.

아파트 5층 높이의 아치는 거대한 암반 내부에 작은 균열이 바람과 물이 의해 서서히 깎여 나가 빈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양쪽 기둥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땀을 좀 식히고 내려왔는데 밤 9시 반이었다. 서울시의 절반정도의 크기인 아처스 국립공원을 하루 만에 돌아보기에는 힘들 것 같아서 늦은 시간에도 무리한 트레일을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에는 되도록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고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는다면 비추천한다.

다음날 아침 미리 예약해 둔 시간에 다시 아처스 국립공원에 입장했다. 우리가 갔던 여름시즌에는 예약이 필요했다. 입장 후 얼마 지나지 않아 Balanced Rock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좁은 지지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간 모습으로 사진 포인트다. 이름 그대로 균형을 정말 잘 잡고 있는 바위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Devils Garden Trail의 초반부에 있는 Landscape Arch이다. 약 12km 구간 중 1.6km 지점에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자연아치이다.

아치가 말도 안 되는 압도적인 풍경이어서 그렇지 사실 붉은 사암과 모레로 이루어진 국립공원 자체도 너무 훌륭한 관광지이다. 너무 뜨거운 날씨만 아니었다면 좀 더 멀리 다녀오고 싶었을 정도로 눈에 담기는 장면들이 멋있었다.

주차장이 있는 초입부분의 그늘
가는길 내내 그늘이 없어요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을 지나 나무밑에서 쉬엄쉬엄 가다 보니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길이가 무려 93.3미터나 되는 거대한 아치는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얇았다. 가장 얇은 곳은 3미터가 채 안된다고 한다. 실제로 1991년에는 아치 암석 중 일부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우연히 당시에 촬영하던 사람이 있어 기록으로도 남아있었다. 혹시나 떨어지지는 않을까 카메라를 들고 지켜봤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푹푹 찌는 날씨 탓에 랜드스케이프 아치까지만 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국립공원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많이 느낀 건 가족단위 여행객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그늘을 만들어 아기를 등에 업고 다니는 가족들도 대단해 보였고 중고등학생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가족들도 대단해 보였다. 아직 아이가 없음에도 TV나 영화에서 사춘기 아이가 문을 ‘쾅’하고 닫고 “아빠는 아무것도 몰라!!”라고 하는 장면에 맘이 아픈데, 많은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좌 :터널아치. 우: 파인트리 아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여러 아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더위 때문에 힘들어하는 와이프는 나무 밑에서 쉬고 있고 샛길로 가야 볼 수 있는 터널 아치와 파인트리 아치를 보러 혼자 다녀왔다. 랜드스케이프 아치와 어제 본 델리케이트 아치는 많은 풍화작용과 침식작용으로 인해 구멍이 엄청 커져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아치형태를 이루고 있는 암석이 얇아진 모습이었는데 언젠가 수천, 수만 년이 흐른 뒤에는 지금 보고 있는 터널 아치와 파인트리 아치도 저런 모습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니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치 밑에 소나무가 있어 파인트리 아치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

(Bryce Canyon National Park)


아처스 국립공원에서 약 네 시간 반동안 달려 브라이스 캐년에 도착했다. 브라이스 캐년은 사실 협곡(Canyon)이 아니라, 고원의 가장자리가 침식되어 생긴 거대한 자연 원형극장(Natural Amphitheater)이다. 후두(Hoodoo)라는 뾰족한 바위 기둥이 수천 개 이상 모여 있는 국립공원이다.

해가 뜰 때 시시각각 변하는 후두의 모습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일출을 추천하여 아침 일찍 선라이즈 포인트 (Sunrise Point)로 향했다. 구름이 너무 많아 해를 보기 어려워 보여 그런지 주차장에는 우리 차량밖에 없었다.

6시부터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조금 더 모여들었다. 지평선과 구름 사이로 점점 붉은 해가 떠오르는 듯했다. 섬세하고 뾰족한 수천 개의 후두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느낌 때문에 우리의 다음 행선지인 지온캐년과 비교해 여인으로 비유된다.

후두 하나하나가 조각 작품처럼 섬세하고 색감이 다채롭기 때문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드레스 같다는 후기가 와닿았다. 전망대에 서서 해가 떠올라 후두에 비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담기 위해 기다렸다. 처음에는 본연의 색상에 가깝게 보였는데 해가 떠오르자 점차 밝은 오렌지 색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브라이스 캐년에도 후두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트레일들이 있는데 엄두가 나질 않아 위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번 미서부 국립공원 여행은 한여름 시즌에 오게 되어서 아쉽게도 트레일을 하지 못했는데 한 캠핑장에서 아무리 적어도 2박은 하면서 유명한 스팟에 가거나 물놀이도 하고, 트레일도 하면서 여유롭게 즐긴다면 좋을 것 같다.



지온 국립공원 (Zion National Park)


브라이스 캐년과 비교해서 남성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지온캐년이 우리의 미서부 그랜드서클 마지막 여행지이다. 우리 루트랑은 반대로 지온캐년부터 시작해 그랜드캐년을 마지막으로 시계방향으로 도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행객이 가장 많았던 캠핑장이었다.

브라이스캐년의 상징적인 후두가 작은 나무들 같았다면 지온캐년은 거대한 숲 같았다. 수직 벽이 700~800m 이상 올라가는 곳도 있어 극적인 경관을 볼 수 있다. 다른 캐년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데 붉은색, 분홍색, 크림색 등이 섞인 다채로운 색을 띠고 있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다음날 지온캐년에서 유명한 Zion–Mount Carmel Tunnel에 갔다. 1930년에 완공된 아주 오래된 터널이라서 RV차량이나 큰 차들의 통행을 고려해 터널 양쪽에서 편도로만 운행이 가능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깜깜한 터널을 달리다 보면 창문처럼 열린 구간들이 나오는데 웅장한 지온캐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위험 때문에 정차는 금지되어 있다.


지온캐년을 마지막으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오면서 약 2,500km의 그랜드서클 투어가 마무리되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캠핑카에서 예상치 못한 에어컨 고장으로 고생했지만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한식도 매일 해 먹을 수 있었고, 매일매일 분위기가 다른 자연속에서 눈뜰 수 있었다.

다른 어느 곳보다 미국서부에서의 캠핑카 여행을 추천한다. 주행 중 소음이 몹시 크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RV차량이 활성화되어있다 보니 운전하기 편한 넓은 도로와 전용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어 불편함이 없었다.

특히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필수인 에어컨이나 냉장고는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달린 RV카의 매력에 푹 빠진 여행이었다.

이제 미국 서부여행을 마치고 미국 동부로 떠난다. 시카고와 나이아가라 폭포를 꼭 가고 싶었는데 다음 여행으로 미뤘다. 아쉽지만 이번 세계여행을 하면서 꼭 세계 3대 폭포를 보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이 깨져버렸다.

다음 여행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뉴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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