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47도에 캠핑카 타고 그랜드캐년으로
미서부의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큰 도시,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여행하고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약 430km 떨어져 있어 우리나라 서울에서 부산 가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펼쳐지는 풍경은 확연히 다르다. 네바다주에 들어서면 끝없이 펼쳐진 넓은 대지위에 낮은 키의 식물들은 듬성듬성 자라고 있고 가도 가도 비슷한 풍경만 보인다.
8년 전 신혼여행 때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렌터카를 빌려 그랜드캐년을 왕복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도심을 벗어나 다시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어 오랜만에 설레었다.
처음 타보는 RV차량을 몰고 10일 동안 약 2,500km를 달리며 뜨거웠던 여름을 보냈던 2024년 7월 중순 미국서부여행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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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과 일정
우리는 단기여행을 목적으로 ESTA를 발급받았기 때문에 90일 동안 체류가 가능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리스카를 인도받기로 한 날짜까지는 한 달 여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정말 꼭 가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만 선택해서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랜드 서클을 한 바퀴 둘러보는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고대했던 미대륙횡단은 다음으로 미뤘지만 우리에겐 캠핑카 여행이 남아있었다. 네바다주와 유타주, 애리조나주를 중심으로 미국 남서부의 여러 국립공원이나 주립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을 그랜드서클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랜드서클을 돌기 위해 RV캠핑카를 빌렸다.
한여름은 피하라는 글들을 봤는데 피할 수가 없었다. 진짜 말 그대로 미친 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라스베이거스를 기점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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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우리가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날짜가 2024년 7월 5일 저녁이다. 그리고 이틀뒤인 7월 7일, 라스베이거스의 최고기온 공식기록이 경신됐다고 한다. 120°F (약 48.9°C) 도를 찍으면서 이전 기록인 117°F도를 갱신했다고 한다.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핸드폰으로 확인한 온도는 47도가 최고였다. 날씨어플에서 처음 보는 숫자에 당황했다. 그것도 연속해서 며칠 동안 내리 그 정도 기온이었다. 외출을 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증막에 있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밤 9시에도 41도였다. 일 최저기온인 30도까지 기온이 내려가길 바랐는데 생각해 보니 30도다. 조금(?) 선선해진 41도에 숙소 앞으로 마실 나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미라지 호텔 화산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딱 내가 지금 느끼는 기분을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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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
남미에서 여행을 할 때부터 바이럴 때문인지 인스타에 캠핑카 광고가 자꾸 보였다. 그중 몇 개의 업체에 견적을 받아보고 인디캠퍼스 (INDIE CAMPERS)라는 업체에 Comfort Standard CLASS C RV를 예약했다.
일반 차량 렌트와 달리 픽업과 드롭오프 시간이 딱 정해져 있었는데 픽업시간이 너무 느리고 드롭오프시간이 너무 빨라서 추가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 렌트비용은 하루에 약 79달러였는데 이것저것 많이 붙어서 금방 비용이 늘어났다.
나는 그냥 캠핑카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냥 캠핑카라고 불리지 않고 RV(Recreational Vehicle)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이동식 숙소를 갖춘 여행과 숙박이 가능한 차량을 뜻한다고 한다. 미국은 관광지의 매표소나 마트 주차장에도 RV 차량이 구분되어 있다. 라스베이거스 지점에 가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캠핑카를 인도받았다.
우리가 빌린 RV(Recreational Vehicle)는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고 전기를 연결하지 않아도 별도의 제너레이터가 달려 있어 자체적으로 전기와 펌프를 쓸 수 있었다.
호주에서 온 직원이 하는 설명을 다 듣는 동안에도 차량 뒤편 생활공간 천장에 따로 달린 에어컨이 시원해지지 않아서 물어봤더니 천천히 시원해질 거라고 한다.
우리는 모험의 세계로 힘차게 출발했다.
첫날 부푼 맘을 안고 세도나 캠핑장에 저녁 늦게 도착해서 에어컨을 켰다. 아무리 기다려도 시원해지기는커녕 그냥 미지근한 바람만 나왔다. 밤 11시가 넘어가는데 기온은 38도다. 에어컨 없이 잠을 청했지만 불가마에서 자는 거 같다. 급하게 인디캠퍼스 고객센터에 문의를 했다. 당일 숙박비 지원을 해줄 테니 일단 숙소를 찾아보고 내일 근처에 가까운 수리점을 알려줄 테니 가보라고 한다.
에어비앤비나 인터넷 예약사이트에서 밤 열두 시에 예약을 하려 하니 당연하게도 지금 잘 수 있는 방을 예약할 수가 없었다. 하루 120달러밖에 지원을 못해준다는 금액 제한도 있었다. 한밤중에 영어도 못하는데 전화로 더듬더듬 물어보고 몇 군데 돌아본 후에 겨우 방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날 그들이 알려준 수리점에 가서 에어컨이 완전히 고장 나서 교체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인디캠퍼스에 이 사실과 함께 견적서를 보냈더니 한참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자기들 A/S기간이 남아서 다른 업체에서 교체는 불가하단다. 차를 가지고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오면 다른 차로 바꿔준다고 했다.
이미 하루를 날리고 기름값도 썼는데 왕복 열 시간을 또 버릴 순 없었다. 수리점 사장님이 더 화를 내시면서 우리를 대신해 인디캠퍼스와 싸워주셨다. 47도의 날씨인걸 알고 있냐고, 당신들 잘못이니 차를 이리로 가지고 오라고 했지만 그들은 픽업서비스가 따로 없다면서 차를 가져다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고장으로 인한 차량교체를 왜 픽업 서비스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오늘 하루 수리 때문에 날려버린 하루와 기존 렌트기간을 이틀연장 해주고, 당연한 숙소비를 받는 것으로 일단 합의하고 가까운 피닉스 지점으로 가서 교체하기로 했다. 환기구도 고장 나서 안 열리고 서랍장 밑판도 없고 수전도 고장 났었는데 마침 잘됐다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피닉스까지 갔다. 차축이 틀어졌는지 핸들을 똑바로 하면 자꾸 차가 오른쪽으로 간다. 이건 바꾼 차도 똑같은 증상이 있어서 원래 그런가 보다 했다.
피닉스는 조커를 연기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랑 찰스바클리가 뛰었던 피닉스선즈밖에 몰랐는데 왜 팀이름을 선즈로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몹시도 뜨거웠다. 미리 상황을 다 말해놓을 테니 도착해서 바로 차량만 교체하면 된다는 말을 믿고 피닉스에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서 잠시 기다리다가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차를 교체하러 왔다고 했더니 금시초문이다. 우리는 오늘 그랜드 캐년에 가야 해서 조급한데 본사에 보낸 메일 회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미국에는 인디캠퍼스 말고도 많은 캠핑카업체가 있다.
라스베이거스 (LAS VEGAS)
8년 만에 온 라스베이거스는 뜨거웠다. 차에서 내리면 사우나에 온 것처럼 숨이 막혔다. 라스베이거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우리는 그랜드서클을 한 바퀴 돌기로 했는데 시작과 끝을 라스베이거스에서 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 총격을 받았을 무렵 트럼프 호텔에 숙박을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수영장도 뜨거운 물이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폭염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밤
라스베이거스 호텔에서는 다양한 공연들이 밤마다 펼쳐지는데 우리는 그중에서도 Bellagio Hotel & Casino 내 전용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 “오 (O)” 를 보러 갔다. 서커스 같은 아크로바틱과 화려한 수중 퍼포먼스가 90분 동안 펼쳐진다.
바닥이 가변형으로 열렸다 닫히면서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걷다가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된다. 전문 다이버들이 펼치는 다이빙과 여러 사람이 정확히 한 동작으로 움직이는 싱크로나이즈 등을 보니 라스베이거스에서 단 하나의 공연만 본다면 이 쇼를 택하는지 알 것 같았다.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앞의 두바이 분수와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샌즈 앞 스펙트라 분수쇼와 함께 세계 3대 분수라고 불리는 벨라지오 분수 (Bellagio Fountain)를 보러 갔다. 세계 7대 불가사의도 그렇고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장 깨기 하는 재미가 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는 8년 만에 다시 봐도 감동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진짜는 밤에 시작된다. 화려함 그 자체다. 뜨거운 날씨 때문인지 해가 지고 난 후 수많은 관광객이 쏟아져 나와 카지노가 북적이고 다양한 공연도 볼 수 있다. 인접해 있는 호텔들은 대부분 서로 실내이동이 가능하도록 연결되어 있어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실내흡연만 피할 수 있다면 카지노가 더위를 피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우리가 미서부 여행의 시작과 끝을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내며, 운 좋게 2024년 7월 17일 미라지호텔의 마지막 영업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밤마다 열리는 화산쇼(The Mirage Volcano Show)가 유명한데 미라지호텔의 영업이 종료되면서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화산쇼가 종료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영업종료일 당일에 모든 카지노 미지급 프로그레시브 잭팟(balances)을 반드시 플레이어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네바다주의 법령이라고 하는데 오늘 밤 안에 무조건 잭팟이 터진다. 모여있는 돈은 약 160만 달러, 한화로 약 22억이 넘는 돈이었다.
몇게임하고 기운이 좋은 다른 기계를 찾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액수가 점점 줄어든다. 여기저기서 잭팟이 터지는 중인 거 같다. 좋겠다.
세븐 매직 마운틴즈(Seven Magic Mountains)
라스베이거스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약 10마일 떨어진 사막에는 스위스 출신 아티스트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가 만든 대형 야외 설치 미술 작품이 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차 밖으로 내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잠시 망설이다가 빨리 사진만 찍고 오기로 하고 밖으로 나갔는데 마치 건식사우나 같다.
유명한 설치작품이라 이 날씨에도 관광객이 몇 보였다. 인기가 많아서 전시기간이 2027년까지 연장되었다고 한다. 형형색색의 커다란 바위들을 쌓아 일곱 개의 기둥처럼 보이는데 자연과 인공의 대비를 통해 도시와 사막의 경계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예뻐서 사진 찍기는 좋은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이런 날씨에는 충분한 물과 건강한 몸을 가지고 오는 것이 좋을 거 같다.
Welcome to Fabulous Las Vegas” 간판(사인)
라스베이거스에 진입하는 여행자들을 위한 도시 랜드마크이다. 유명세에 비해 주차장이 협소했다. 1959년에 만들어진 이 사인은 높이 7.6미터에 다이아몬드 형태이다. 당시 작가가 저작권 없이 제작비만 받았다는데 현재는 각종 기념품에 새겨져 라스베이거스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오후 다섯 시쯤 갔는데 도저히 저 줄을 기다릴 수 없어서 사진에 다른 사람들이 나오더라도 옆에서 후다닥 찍고 숙소로 복귀했다.
그랜드 서클(Grand Circle)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타고 다닌 승용차를 반납하고 예약한 RV차량을 인도받았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H마트다. H마트는 미국을 여행하는 한국사람에게, 특히 우리 부부처럼 한식러버들에겐 꼭 들러야 하는 마트이다. 1982년 뉴욕에서 시작한 한아름마트가 현재는 미국 전역 18개 주에 약 100여 개 매장을 둔 미국 최대규모의 아시아 전문 슈퍼마켓이라고 한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나 한국 마트에서 파는 밀키트와 각종 반찬들까지 없는 게 없었다.
라스베이거스 인디캠퍼스 매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H마트가 있어서 6박 7일 동안의 식재료를 장 보러 갔다.
하지만 결국 에어컨과 함께 냉장고도 작동을 안 해서 절반을 버려야 했다. 다시 생각해도 인디캠퍼스는 그러면 안 됐다.
후버 댐(Hoover Dam)
라스베이거스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후버댐이 나온다. RV카 전용 라인으로 들어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신분정도 걸어가면 후버댐 전경을 볼 수 있는 다리가 나온다. 바로 옆에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고 지나갈 때마다 다리에 움직임이 느껴진다. 댐의 높이가 약 200미터라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높은 곳에 다리가 있어 약간 무서웠다.
1935년에 완공된 후버댐은 위성으로도 보일정도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인데 그 양이 지구둘레를 1m 폭에 두께 30cm의 길을 만들어 포장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라고 한다.
세도나 (Sedona)
라스베이거스에서 후버댐에 잠시 들러 구경하고 약 네 시간을 더 달려 세도나에 도착했다. 그랜드서클에서는 약간 벗어나는데 미국에서도 기운이 좋은 지역이라고 소문난 곳이라서 가보기로 했다.
세도나는 붉은색 바위산들로도 유명하지만 영적에너지와 자기장이 강하게 집중되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국 전역에서 치유와 명상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에어컨 고장으로 캠핑카 여행 첫째 날과 둘째 날을 날려버렸다. 다음날 차량교체를 위해 피닉스로 가기 전 세도나를 여행하기로 했다.
세도나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청록색 로고 맥도널드가 있다. 세도나 시는 자연경관 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도시로, 1990년대부터 도시 전체에 엄격한 색상 제한과 간판 규제가 있었다고 한다.
붉은색 바위 산과 어울리지 않는 노란색 로고는 허가가 나지 않아 결국에는 눈에 띄지 않는 청록색의 로고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규제를 수용하면서도 브랜딩을 유지한 디자인이 결국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날이 너무 더워 시원한 음료도 한 잔 사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벨 락(Bell Rock)
마치 종처럼 생긴 벨 락은 세도나에서도 손꼽히는 보텍스(Vortex) 명소라고 한다. 보텍스란 지구 자기장이 소용돌이처럼 강하게 집중되는 곳을 뜻하는데 과학적인 증명은 부족하다고 한다. 영적인 기운을 받고자 명상도 많이 하고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후기들도 있어 뭔가에 기대고 싶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겐 매력적인 장소로 남아있다고 한다.
날씨 탓에 주차장엔 아무도 없었다. 차밖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났는데 그래도 조금 들어가 보자 해서 나왔다가 십 분도 안되어서 후퇴했다. 아름다운 붉은색 바위산을 트래킹 하는 코스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가 동선에서 약간 벗어나더라도 세도나에 온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로터리(lottery)를 하기 위해서다. 최고 누적당첨금액이 1조 원이 넘은 적도 있고 평균 2,000억 원의 당첨금액이 나오는 Powerball과 Mega Millions를 구매하고 미서부 여행을 아주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 당첨되면 영주권도 나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잘못된 정보였다. 로터리 당첨만으로는 영주권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당첨되면 뭐 할지 많이 생각해 뒀는데 아직 못하고 있다.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RV카 교체를 위해 반대방향인 피닉스를 갔다가 다시 그랜드 캐년으로 향했다. 사우스림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7시 반이었는데 빨간 해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운영시간이 지나 매표소에 아무도 없어서 원래 우리가 사려던 America the Beautiful Annual Pass 패스를 구매하지 못했다. 1년 동안 미국 국립공원과 약 2,000개 이상 연방국립공원 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다. 우리처럼 여러 국립공원을 방문 예정이라면 무조건 애뉴얼 패스가 유리하다. 80달러에 차량 한 대와 운전자 포함 4명까지 입장 가능하다고 한다. 일단 그랜드 캐년 개별 입장권을 구매해 들어갔다가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에서 나갈 때 환불받고 다시 애뉴얼패스를 구매할 수 있었다.
캠핑장 체크인전에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 바로 옆 Mather Point(마더 포인트)로 뒤늦은 노을을 보러 갔다. 아직 사람들이 많았다. 8년 전에는 새벽에 일출을 보러 왔었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해가 넘어가는 걸 지켜보고 Mather Campground (마더 캠프그라운드)라는 5분 거리 캠핑장으로 갔다. 몇 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그랜드캐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캠핑장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당일 예약에 성공했다. 밤 9시쯤 도착해서 셀프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는데 누군가 차문을 두드린다. 관리인이 와서 밤에는 제너레이터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아주 큰 실수를 했다. 미국 캠핑장에는 전기와 수도, 오수와 하수를 버릴 수 있는 훅업(hookups) 시스템이 있다. 우리가 예약한 캠핑장의 사이트는 전기 훅업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래서 에어컨을 켜기 위해 발전기를 켰는데 그게 소음이 상당하다. 한국에서도 캠핑을 해본 적이 없는 초보가 미국 캠핑장에서 정숙해야 하는 밤인 줄도 모르고 캠핑장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다행히 견딜만한 더위였다.
다음날 아침 그랜드 캐년의 모습을 다시 제대로 보기 위해 마더포인트로 갔다. 그랜드 캐년은 세계에서 가장 장엄하고 유명한 협곡 중 하나로 콜로라도 강(Colorado River)이 수백만 년에 걸쳐 침식하면서 만들어진 협곡이다.
다시 봐도 정말 장관이다. 20억 년 전의 지층이 노출되어 있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지질학적으로, 역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그랜드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몇 개의 뷰포인트를 더 구경했다. 협곡 밑으로 직접 가볼 수 있는 트레일이 있었는데 더위 때문에 못한 것이 아쉬웠다.
홀스슈 밴드 (Horseshoe Bend)
그랜드 캐년에서 약 200km 떨어진 홀스슈 밴드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약 1.2km 걸어가면 콜로라도 강(Colorado River)이 말발굽(horseshoe) 모양으로 휘어 흐르는 지점이 나타난다.
2017년에 왔을 때는 난간이 없었는데 2019년에 새로 생겼다고 한다. 300m 절벽 아래로 사람들이 떨어지는 사고가 반복되자 주요 전망지점에 난간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난간이 없는 부분들도 있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짧은 트레일과 말발굽형태의 협곡 하나뿐이라 실망했다는 후기들도 있는데 지금껏 본적 없는 절벽 끝의 완벽한 곡선만으로도 충분히 압도당할 만큼 경이로운 풍경이다.
홀슈스밴드 인근의 페이지라는 마을에서 하루 숙박하고 이동하기로 했다. 바로 근처에 엔텔로프 캐년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둘 다 보고 이동할 수도 있지만 엔텔로프 캐년은 현지인 나바호족 가이드와 동반이 필수라서 예약이 필요하다. 그랜드캐년의 캠핑장 이후에는 될 수 있으면 전기와 수도를 모두 연결할 수 있는 풀 훅업(Full Hookup)이 가능한 사이트만 예약해서 한밤중에도 30도가 넘어가는 더위에 버틸 수 있었다.
앤텔로프 캐년 (Antelope Canyon)
신혼여행 때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하여 그랜드캐년을 보고 홀스슈밴드까지 볼 수 있었다. 엔텔로프 캐년은 홀스슈 밴드에서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입구까지 갔다가 가이드가 필요한지, 영업시간이 언제까지인지 미리 알아보고 가지 않은 탓에 보지 못했다. 드디어 모니터 보호화면에서만 봤던 앤텔로프 캐년을 보러 간다.
먼저 미리 예약한 투어사 사무실에서 모여 환경보호등에 관한 서약서를 작성하고 간단한 설명을 듣는다. 사진 촬영이 안된다는 후기도 봤는데 지금은 괜찮다고 한다.
앤탈로프 캐년 투어는 어퍼와 로우어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난이도도 쉽고 한낮에 빛이 좁은 협곡 사이로 떨어지는 보습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어퍼 앤탈로프 캐년을 예약했다. 십여 명 정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눠 벤치가 달린 오프로드 전용트럭을 타고 약 십 분 정도 달려 입구에 도착했다.
좁은 협곡의 입구로 들어서니 붉은색 사암이 양쪽으로 우리를 감싸고 있다. 좁은 틈으로 파란색 하늘이 보이는데 선명한 색상의 차이가 아무렇게나 막 찍어도 예술이다. 운 좋게 가장 인기가 많은 시간대인 열두 시를 예약해서 좁은 협곡사이로 햇빛이 내리쬐는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었다.
그룹마다 가이드가 있는데 설명과 함께 사진도 찍어주고 빛이 잘 보이게 모래도 계속 뿌려준다. 한 그룹의 모든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배경의 사진을 찍기 때문에 그룹의 맨뒤에 따라가면서 따로 사진을 더 찍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 다음 그룹이 연달아 계속 쫓아오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1억 9천만 년 전부터 형성된 사암층이 바람과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이런 협곡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997년에 어퍼보다 더 좁은 로어 앤탈로프 캐년의 협곡에 11km나 떨어진 상류에서 급격히 내린 비가 들이닥쳐 관광객 11명이 목숨울 잃는 사고를 당하는 사고 이후 사이렌 등 안전장치도 마련되고 나바호 족 가이드 필수 동반이 되었다고 한다.
그랜드서클 일정을 한번에 담으려고 했는데 내용이 너무 많아졌다. 다음 여행은 앤탈로프 캐년 이후 미서부 국립공원 캠핑카여행 2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