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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더 그랜드 미국_동부 2편

바쁘다 바빠 우당퉁탕 뉴욕여행

by 우당퉁탕세계여행

장기여행자들은 중간에 꼭 휴식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세계여행을 떠난 지 5일 만인 베트남에서부터다. 매일매일 들떠서 돌아다니다 보니 모든 피로가 밤마다 몰려왔다. 그래서 다음 여행지인 인도네시아부터는 2~3일 관광을 하면 꼭 하루정도는 숙소에서 쉬던지, 아니면 하루에 한 가지씩만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었다.

한국을 떠난 지 일 년이 넘은 시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뉴욕에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미친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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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및 일정

효율적인 동선을 계획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구매한 뉴욕 관광상품 8가지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왔던 선셋크루즈를 포함하여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더 라이드 (버스투어), 자연사 박물관, 911 메모리얼 앤 뮤지엄, 허드슨 야드 앳지 전망대, 써밋 전망대였다. 전망대는 노을 질 때 뉴욕의 야경과 함께 보고 싶어서 저녁시간으로 예약하다 보니 하루에 하나씩만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센트럴파크에서 돗자리 펴놓고 여유도 즐겨야 하고 주말마다 열리는 플리마켓에도 가야 한다.


지금까지 올린 글들의 동선은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을 앞둔 이에게 여행계획에 참고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는데, 뉴욕은 참고할만한 동선이 아니라는 점을 참고해 주세요.



DAY 5

Brooklyn Flea Dumbo - Central Park - The Ride



브루클린 플리 마켓 (Brooklyn Flea in DUMBO)


매주 주말 브루클린 지역의 덤보에서는 마켓이 열린다. 중고 가구, 빈티지 의류, 수집품, 골동품, 장신구, 예술품, 수공예품 등 다양한 아이템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대마다 개성이 넘친다. 예쁜 구제 의류를 모아놓은 사람도 있고 시계 같은 액세서리나 그림액자 등도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이만 원짜리 선글라스를 하나 샀는데 열심히 쓰고 다니다가 두 달 만에 나사가 하나 없어지더니 박살이 났다. 퀄리티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뉴욕에서 산 기념품이라 생각했는데 아쉬웠다.

주말을 껴서 뉴욕을 여행하는 사람은 덤보에 왔을 때 한번 들러 구경할만한 장소로 추천한다. 빈티지한 아이템과 도시 감성이 어우러진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덤보 플리 마켓을 구경하고 스타벅스에서 시원한 음료를 사들고 브루클린 브릿지 파크로 갔다. 여전히 덤보 포토스팟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엊그제 저녁에 왔을 때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센트럴파크 (Central Park)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공원 중 하나인 센트럴 파크에 가기 위해 시티바이크를 빌렸다. 힘은 들겠지만 가장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뉴욕에서 택시타고 40분 이동하면 십만원

몇 차례 이용해 본 경험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시티바이크 어플에서 일일권을 구매했다. 저녁에 예약한 더 라이드를 타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센트럴 파크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다.

날씨가 흐려서 화창한 날씨의 센트럴 파크는 아니었지만 뉴욕의 상징과도 같은 곳에 왔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조깅하는 사람들도 많고 자전거 도로 옆으로는 마차들이 지나다닌다. 우리는 남쪽에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시티바이크는 30분마다 정류장에 바이크를 연결해야 무료로 계속 탈 수 있어서 중간에 한번 체크인을 했다. 그냥 일반 자전거가 아니라 e-bike를 빌렸더니 힘도 안 들고 페달을 밟을 때마다 쭉쭉 나간다. 사람들을 제칠 때마다 부러워하는 탄식을 듣고 점점 신이 났고 ㅎ 50분 동안 여의도 면적보다 조금 더 큰 센트럴파크를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아주 신나게 라이딩을 즐긴 후 바이크를 파킹하고 등록해 놓은 카드에서 빠져나간 금액을 확인했다가 깜짝 놀랐다. 21일 하루에만 다 합쳐서 37.24달러가 결제 됐다. 한화로 오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한 시간 40분 이용에 둘이 합쳐 십만 원이 넘게 나왔다.

“ㅎㅎ 우리는 힘 안 드는 전기자전거지롱 ㅎㅎㅎ”

언덕길도 쉽게 오르고 힘들이지 않고 라이딩을 즐기며 사람들을 제칠 때마다 엄청 짜릿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까 빠르게 질주하는 우리를 보고 부러워하던걸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하루 이용권에 전기 자전거는 포함이 안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일 돗자리도 가지고 나와 센트럴파크를 걸어서 여유롭게 즐기기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더 라이드 (The Ride)


오늘 저녁에는 더 라이드라는 버스투어가 예약되어 있다. 해가 질 무렵에 센트럴 파크 남쪽의 파이브 가이즈 앞에서 출발한다. 더 라이드는 일반 시티투어 버스가 아니라 일종의 공연형 버스 투어이다.

일반 관광버스와 달리 좌석이 모두 오른쪽을 향해 있고, 벽이 통유리 파노라마 창으로 되어 있다. 버스 자체가 무대이자 객석 같은 느낌으로 뉴욕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즉석공연을 관람한다.

어쩌다 보니 가이드 바로 옆에 앉았는데 텐션이 어마무시했다. 버스 앞부분과 뒷부분에 두 명의 가이드가 있는데 서로 랩을 주고받으며 흥을 돋우고 호응을 유도한다. 우리가 신이 날수록 창밖의 사람들도 신난 우리를 보고 반가워한다.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가지는 않은 거 같은데 약 75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공연과 관광이 합쳐져 있어 뉴욕을 색다르게 즐길 수 있었다.



DAY 6

911 Memorial and Museum - The Oculus - Rockefeller Center - The Museum of Modern Art - Harry Potter New york - Charging Bull

뉴욕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쁘게 돌아다닌 것 같았는데도 여전히 못 본 것이 너무 많다. 다시 뉴욕에 돌아오기까지는 기약이 없으니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더욱 힘을 냈다.



911 메모리얼 앤 뮤지엄

(911 Memorial and Museum)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세계무역센터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날의 사건과 여파를 기록한 장소이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인공폭포가 있는 메모리얼 지하에 있는 뮤지엄으로 향했다.

매체에서 많이 봤었기 때문에 감정의 소모가 덜 할 줄 알았는데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존 세계무역센터의 잔해물들을 보자 안 그래도 무거웠던 마음이 더 가라앉았다. 특별한 안내도 없었고 누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실내 분위기가 엄숙하다.

구겨져 있는 H형강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원래 있던 계단을 철거하지 않고 재활용하여 전시해 놓았는데 서바이버 스테어즈(Survivors’ Stairs)라고 불린다. 북쪽 타워 인근에 있던 계단으로 테러 당시 수백 명이 이 계단을 통해 탈출했다고 해서 생존자의 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원래 위치 그대로는 아니고, 복구 과정에서 보존 후 뮤지엄 안으로 옮겨 전시되었다.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참혹함에 더해 그날의 실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공간들도 곳곳에 있었다. 소방대원들의 정신없는 무전소리와 다급히 누군가를 찾는 소리, 고통에 절규하는 피해자의 목소리와 피해자를 애타게 찾는 유족들의 음성이 너무 무거웠다. 감히 감당하고 이겨내라고 응원의 소리를 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은 단순히 비극을 재현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장소였다.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과 남겨진 물건들 앞에서는 비통함과 동시에 그들의 삶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이곳은 슬픔의 무게만큼이나,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지하 공간에는 9·11 테러 이후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와 수습 작업이 진행되던 마지막까지 현장에 서 있던 구조물인 라스트 칼럼(Last Column)이 있다. 마지막으로 철거되기 전, 소방관·경찰·구조대원·유가족들은 이 기둥에 메시지, 이름, 배지, 사진, 기도문 등을 붙였다고 한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현장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감정을 담은 라스트 칼럼은 이곳으로 옮겨져 뮤지엄의 중심 전시물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뮤지엄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9·11 메모리얼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앞에 섰다. 테러 이후 두 번의 공모전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무역센터와 바로 이 9.11 메모리얼을 새롭게 만들었다.

무너져버린 쌍둥이 빌딩의 자리에 가로·세로 약 63m, 깊이는 약 9m인 두 개의 거대한 정사각형 수공간이 설치되어 있다. 물은 사각형 벽면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내려, 중앙의 블랙홀 같은 사각형 구멍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피해자들의 빈자리를 표현하는 끝없는 공허와 상실을 상징한다고 한다.



뉴욕 오큘러스 (Oculus)

(World Trade Center Transportation Hub)


911 메모리얼 바로 옆에 있는 오큘러스라는 건물에 애플 매장이 있어 맥북을 사러 갔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지인 덕분에 한국에서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비록 키보드에 한글은 쓰여 있지 않지만 잘 구입한 거 같다.


하얀색 구조물로 지어진 역동적인 건축물을 보면 이제 자연스럽게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떠오른다.

건물 외형이 하얀 새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9·11 테러 당시 무너진 구 세계무역센터 자리와 연결되는 공간이라, “재탄생”과 “희망”을 상징하는 곳으로, 뉴저지 PATH 열차, 뉴욕 지하철 여러 노선과 연결되어 있고 웨스트필드 월드 트레이드 센터 쇼핑몰(Westfield WTC Mall)이 들어서 있어, 명품 브랜드와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다. 단순한 교통 시설을 넘어서 관광 명소 + 쇼핑 공간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내부는 높이가 약 48m에 달하는 거대한 아트리움으로, 천장에서 들어오는 자연광 덕분에 밝고 기둥이 없는 무주공간이라서 개방감이 엄청났다. 압도적인 공간감에 자연적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천장의 유리 채광창은 개폐가 가능한 시스템인데 매년 9월 11일 사고가 났던 시간에 , 태양 빛이 오큘러스 메인홀에 정확히 떨어지도록 설계되어 “빛으로 기억하는 추모”를 연출하고자 했다고 한다.

오큘러스는 라틴어로 눈이라는 뜻이다. 9·11로 잃은 것을 지켜보는 시선, 기억하는 눈을 의미하는데 천창이 열리면서 마치 눈을 뜨는 듯한 효과를 연출했다고 한다.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공간이자, 세상을 떠난 이들을 바라보는 상징적 시선인 것이다.

한화로 약 5조 원 이상이 투입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역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 오큘러스는 너무 비싼 공사비와 상업적이라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교통 허브의 역할을 넘어 거대한 예술 작품이자 기념비적인 추모공간으로서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공간이었다.



록펠러 센터 (Rockefeller Center)


맨해튼 미드타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록펠러센터에 왔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커다란 초대형 트리와 아이스링크가 설치되어 유명한 곳이다.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던 곳인데 우리가 갔던 여름에는 나무 데크 의자가 설치되어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층빌딩이 빽빽한 뉴욕에서 이런 넓은 광장이 나타나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관광하다 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돌진하는 황소 (Charging Bull)


록펠러 센터 근처에 있는 해리포터 기념품 샵을 잠시 들러서 구경하고 다시 오큘러스로 향했다. 아까 낮에 맥북을 찾으러 갔는데 문제가 생겨 저녁에 다시 가기로 했다. 덕분에 오큘러스 야경도 보고 럭키비키시티포키였다. 이제 오늘 스케줄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갈까 했지만 오늘이 아니면 돌진하는 황소를 볼 수 없을 거 같았다. 힘들게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겨 비 오는 월스트릿을 걸어 황소 동상 앞으로 갔다.

이탈리아 출신 작가가 제작했는데 처음에는 트럭에 실어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 앞에 몰래 설치했다가 철거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들의 큰 지지로 지금 위치(볼링그린 공원 근처)에 다시 세워졌다.

1987년 뉴욕 증시 대폭락(Black Monday) 이후, 조각가가 미국 경제의 회복력과 힘을 상징하기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뿔을 만지면 행운, 불알(?)을 만지면 재물운이 온다는 속설 덕분에 유명한데, 부자가 되기 위한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이다. 밤 9시에 비까지 내리는데도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우리 차례가 되어 소중히 받치고 사진을 찍었다. 참 민망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만졌는지 반질반질하다. 무릎 뒤쪽은 왜 저렇게 색이 변했나 했는데 저 밑에서 사진을 찍고 일어나려면 필히 저 위치를 잡고 일어나게 되어있다.



DAY 7

Solomon R. Guggenheim Museum - Central Park -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 Hudson Yards Edge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Solomon R. Guggenheim Museum)


개인적으로 뉴욕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미국의 미술품 수집가 솔로몬 R. 구겐하임이 미국 출신의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만든 미술관이다. 센트럴파크 동쪽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저 멀리 살짝 보이기 시작하니까 너무 설레었다.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물이다. 건물 자체가 뉴욕의 대표적 건축 유산으로, 201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성지순례하는 기분이 들어 경건한 마음으로 입장했다.

거대한 아트리움 공간이다. 책이나 사진에서 보던 그 모습이다.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공간 전체를 밝히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로 맨 위까지 올라가면,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걸어 내려오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거꾸로 1층부터 올라가지 못하도록 가이드가 안내해 준다. 일방통행이다. 바로 이 나선형 구조를 따라서 전시동선이 계획되어 있는데 “미술관은 단순한 수납장이 아니라 작품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철학이 잘 반영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 한 가지 달랐던 점은 나선형 복도를 따라 Light Line이라는 스크롤 방식의 LED 텍스트를 띄우는 설치미술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진마다 눈에 띄는 텍스트들이 신경 쓰인다. 상설전시는 아니라서 올해 9월 29일까지만 전시한다고 한다. 본래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1959년에 완공된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적 체험 장치로 만들어져 있었다. 일반적인 직선계단의 형태가 아닌 삼각형 돌음 계단이 비상계단으로 있었고 건물의 매스형태를 따라 동그란 화장실이 있었다. 미술품들이 걸려있는 벽 쪽에는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인공조명의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집중하지 못했다. 사진첩에는 건물사진만 가득하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우리가 방문했던 인도의 찬디가르라는 도시를 계획한 르꼬르뷔지에와 앞으로 가게 될 유럽에서 작품활동을 많이 한 미스반 데 로에와 함께 현대건축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벽에 걸려있는 작품들을 단순히 바라보는 전시가 아니라 공간 자체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했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센트럴파크를 가로질러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 왔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배경이 되는 그곳이다.

사실 뻔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도 볼거리가 풍성했고 의외로 건축적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게 많은 공간이었다.

생태계를 주제로 한 전시 홀을 가면 벽과 천장이 명확한 구분 없이 곡선으로 이어져 유기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공간 전체가 마치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천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까지 더해져 자연 속에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자연사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공룡전시였다.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포즈로 설치되어 있던 뼈들은 많은 상상을 하게 해 주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공간이었다.



센트럴파크(Central Park)


어제 자전거를 타고 비싼 질주를 했던 센트럴파크를 다시 왔다. 오늘은 걸어서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여유롭게 둘러보려고 했다.

산책로 안쪽으로 들어오니 어제와는 다르게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가 아니라 좀 더 정적이고 여유로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 돗자리를 펴고, 혹은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가져온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유로운 풍경 속에 누군가 프로포즈를 하고 있었다. 앉아서 주인공들이 나타나길 기다리는데 하늘로 풍선하나가 날아간다. 친구 중 한 명이 다급히 쫓아갔지만 이미 잡을 수 없을 만큼 높이 놀라갔다. 다행히 자유를 찾아 떠난 알파벳 E를 대신할 M이 하나 더 있었던 모양이다. 완성된 메리 미를 보며 구경하던 이들 모두 안도했다.



애플 스토어 (Apple Store, Fifth Avenue)


센트럴파크 남동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 영국출신 건축가 Norman Foster(포스터 + 파트너스) 설계한 애플 스토어에 왔다. 유리 큐브로 만들어진 입구가 상징적인 곳으로 지하로 내려가면 넓은 체험 공간이 있다.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뉴욕 여행 필수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애플의 한국 내 최대 매장인 애플 명동 매장도 노만포스터 작품인데 현대 하이테크 건축의 대표주자답게 구조적인 혁신과 심미성을 쉽게 볼 수 없는 형태의 재료들로 잘 나타낸 것 같다. 진짜 살아있는 나무는 아니었지만 지하공간에 초록이 많아서 시원하고 쾌적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엣지(Edge) 전망대


드디어 길었던 하루의 마지막 코스 엣지 전망대에 왔다. 허드슨강변의 야경을 바라볼 수 있는 북미지역 최고 높이의 전망대이다. 2020년에 개장된 비교적 최신식 전망대로 유리 난간과 유리 바닥으로 만들어진 테라스가 특징이다. 뉴욕에는 유명한 전망대들이 많은데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 미리 검색해 보고 엣지 전망대와 써밋전망대를 골랐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엣지라는 이름답게 허드슨강 쪽으로 일부 튀어나온 공간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 서있었다. 우리 앞으로 새치기하려는 사람들을 중국 사람들이 내쫓아 줬는데 참 고마웠다.



DAY 8

Broadway - Birdland

무리했다. 이틀연속 25,000보 이상 걸었더니 피로가 누적됐다. 우리에게 남은 이틀은 좀 더 여유롭게 보내기로 했다.



라이온 킹 (The Lion King)


라이온 킹은 브로드 웨이에서도 유명한 공연 중 하나이다. 1997년에 초연을 한 이후로 현재까지도 시각·청각·스토리를 모두 갖춘 뉴욕 최고의 가족 뮤지컬 중 하나로, 뉴욕 여행에서 놓치면 아쉬운 경험 중 하나이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날 애니메이션으로 복습을 했다. 동물 캐릭터를 상징하는 독창적 의상과 인형을 사용하는데 아프리카를 다녀온 터라 더 몰입이 잘되는 듯했다. 연기력도 좋고 인형탈이나 분장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연출도 훌륭했다.




버드랜드 (Birdland)


라이온킹을 보고 나와서 버드랜드라는 재즈바에 갔다. 뉴욕의 재즈 전설들이 공연한 공간으로 뉴욕 재즈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이다.

바와 테이블 좌석이 함께 있어 식사와 음료를 즐기며 감상 가능했다. 최소로 시켜야 하는 금액이 정해져 있었는데 안주랑 음료를 좀 시키니 충분했다.



DAY 9

Little Island - Summit Observatory



리틀아일랜드 (Little Island)


오늘은 허드슨 강변의 리틀아일랜드가 첫 번째 목적지다. 허드슨강 위에 약 132개의 콘크리트 튤립 모양 기둥을 세워 조성한 공원인데 또 토마스 헤더윅 (Heatherwick Studio)이 설계했다. 참 실험적인 형태를 잘 시도하는 것 같다. 약 10,000제곱미터 정도 되는 규모의 공원인데 입체적인 지형과 조경이 있어서 산책하기 좋고 허드슨강을 조망하기 좋다.

132개의 파일 기둥 위에 280개의 상판이 올려져 있는 구조인데 낮은 기둥은 4.5m에서 최대 19m 높이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쪽에 들어와서 산책로를 걷다 보니 인공지반 위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조경이나 지형의 높낮이가 자연스럽다. 뉴욕의 계절을 표현할 수 있도록 35종 이상의 나무, 65종 이상의 관목, 270종 이상의 풀·꽃이 식재되어 있다고 한다.

공원 내에는 약 700석의 공연장도 있어서 다양한 행사와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이런 프로젝트는 활용도와 활성화의 정도가 성공적인 프로젝트인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리틀 아일랜드는 연간 백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이자 뉴욕시민들의 쉼터였다.

2024년에 서울시에서 주최한 노들섬 공모전에서 토마스 헤더윅의 작품이 당선되어 설계계약을 맺고 진행 중이라고 한다. 리틀아일랜드에 이어 물 위에 부유하는 듯한 여러 높이의 섬들이 연결되어 있는 Soundscape (소리풍경)이라는 설계안이다.

2027년 완공예정이라는데 리틀 아일랜드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성공한 프로젝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밋 원 밴더빌트(Summit One Vanderbilt) 전망대


내일 워싱턴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를 렌트하고 뉴욕에서의 마지막 일정 써밋 전망대로 향했다. 2020년에 완공된 뉴욕에서 4번째로 높은 건물의 전망대인데 엊그제 갔던 엣지 전망대가 삼각형 형태의 튀어나온 테라스가 특징이었다면 서밋 전망대는 뉴욕을 배경으로 새로운 경험이 가능하도록 한 체험형 전망대이다.

바닥과 천장이 모두 거울로 되어있어 신비로운 공간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되어있다. 91층에는 세계적 아티스트 Kenzo Digital의 설치미술 작품 AIR가 있다. 거울과 유리로 가득한 공간이라 사방이 반사되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은색 풍선 같은 오브제가 공중에 떠 있어 관람객이 직접 만지고 놀 수 있다. 단 한 가지 단점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단독 사진은 구석이 아니면 찍기 쉽지가 않다.

노을이 반사되는 크라이슬러 빌딩

특히 일몰 시간에는 뉴욕의 석양과 도시 불빛이 무한히 반사되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뉴욕에 있는 동안 단연코 최고의 노을을 이날 써밋 전망대에서 볼 수 있었다.


써밋 전망대를 마지막으로 9박 10일간의 뉴욕일정이 끝났다. 많은 곳을 갔지만 아직도 갈 곳이 많다. 위에서 내려다본 뉴욕을 보고 있으니 인간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물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참 대단하고 멋진 도시다.

뉴욕은 거대한 건축물이 하늘을 찌르고, 수많은 불빛이 끝없이 반짝이는 도시였다. 뉴욕에서의 시간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지만, 그 흔적은 오래도록 남을 거 같다. 언젠가 다시 이 도시를 찾아, 오늘의 나와는 다른 눈으로 또 다른 뉴욕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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