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과 많이 달라진 2024년
드디어 520일간의 세계여행 마지막 대륙인 유럽이다. 본격적인 여행기에 앞서 내용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유럽여행을 했을 당시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우리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는 2010년에, 와이프는 2012년에 각자 친구와 유럽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2010년 친구와 함께 배낭여행을 했을 때랑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이번 세계여행 중에 40대가 되었다. 지금 내 옆에는 와이프도 있고 핸드폰도 있고 차도 있다. 당시에 나는 갤럭시탭이라는 엄청 큰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걸 가지고 다니면서 맥도널드의 와이파이를 연결할 엄두가 나지 않아 아예 가지고 가지 않았다. 같이 간 친구가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폰3GS가 있어서 오프라인지도가 있는 책 한 권과 함께 여행을 떠났었다.
제주도 왕복할 때 빼고는 첫 비행이었고 첫 해외여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낭만 있었다. 젊었고 패기도 넘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밤새 정보를 찾아보며 설레었다. 모든 것이 신기했고 하나라도 눈에 더 담으려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엄청 걸어 다녔다.
공항에서 12시간 넘게 대기하는 경유편도 상관없었고, 화장실 하나를 같이 쓰는 숙소도 괜찮았다. 매 끼니를 아무 곳에서나 앉아 식빵에 샐러드를 발라먹는 것도 괜찮았다. 유레일패스를 구입해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유럽배낭여행카페 유랑을 통해 미리 예약했던 한인민박도 참 재미있었다. 런던에서는 담배 한 보루로 숙소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었고 마침 남아공월드컵 때라 결승전을 에펠탑 밑에서 낭만 넘치게 봤었다.
14년 만에 다시 찾은 유럽여행은 막 출시된 새 자동차를 타고 있고 조수석에는 와이프가 있다. 무거운 짐들은 트렁크에 실려있다. 숙소에는 우리뿐이고, 핸드폰 내비게이션 덕분에 어디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온갖 조미료를 챙겨 다니며 주방 딸린 숙소에서 한식을 해 먹을 수 있었다. 조금 비싸더라도 시간과 체력을 아끼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고 시끌벅적하게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아지게 되었다.
나에게는 2010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이 있기에 앞으로도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__________
동선과 일정
유럽의 국가들은 그들끼리 맺은 쉥겐조약으로 인해 국경의 이동이 자유롭고 90일 동안은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하다. 쉥겐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영국의 일정까지 포함하여 총 107일 동안 유럽을 여행했다.
90일을 꽉 채워 유럽본토에 있다가 아이슬란드를 가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쉥겐은 유럽국가들끼리 맺은 조약이라는 것이고 무비자 양자협정은 우리나라와 직접 맺은 조약이라는 것이다. 무비자 협정은 쉥겐조약보다 우선 적용될 수도 있어서 한 국가에서 90일이나 길면 6개월도 무비자 체류가 가능해지게 된다.
쉽게 정리하자면 90일 동안 유럽쉥겐 국가를 돌아다니다가 마지막 나라로 독일에 입국하여 90일을 더 무비자로 지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정확한 확인을 위해 한국의 노르웨이 영사관과 중국의 아이슬란드 영사관에도 물어봤는데 심사관재량이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2024년 12월에야 우리나라에도 아이슬란드 대사관이 생겼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던 중 아이슬란드 정부 공식 사이트에 해당내용이 기재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이 내용만 믿고 아이슬란드를 여행했는데 출국할 때 운 좋게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쉥겐국가들끼리는 입국심사가 따로 없어 국내선을 이용하는 것처럼 이동한다)
유럽 내에서의 동선은 스페인 마드리드부터 시작했다. 시계방향으로 포르투갈까지 돌고 프랑스로 올라갔다. 북쪽으로 올라가 네덜란드를 지나 덴마크까지 갔다가 체코와 헝가리가 있는 동유럽 쪽으로 갔다. 알프스가 걸쳐져 있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다시 프랑스 파리로 가서 아이슬란드로 아웃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은 영국이었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경우 땅도 넓고 유럽대륙 중앙에 있어서 한 번에 쭉 돌아보지 못하고 국경을 마주한 근처의 다른 나라들과 인근 도시들을 묶어서 여행했다.
동선을 자연스럽게 계획할 수가 없었다.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돌 수도 없었고 왔던 길을 되돌아갈 때도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을 모두 다 가볼 수도 없었다.
스페인 - 포르투갈 - 프랑스 - 룩셈부르크 - 벨기에 - 독일 - 네덜란드 - 덴마크 - 오스트리아 - 체코 - 헝가리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크로아티아 - 이탈리아 - 스위스 - 핀란드 - 아이슬란드 - 영국
________
이동수단
최소 두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해서 볼리비아 우유니의 숙소에서 유럽에서 타고 다닐 리스카를 예약했다. 리스카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 볼 생각이다.
최종 반납할 때 확인해 보니 89일 동안 총 17,137km를 달렸다. 한 장소에서 3~4일 정도 머물렀을 때도 있고 그 이상 머무를 때도 있었다. 하루에 최대 이동거리는 400km 정도를 넘기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루 종일 운전만 했던 날도 있었다.
차가 있으니 여행의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어디에서든 멈춰 서서 그냥 지나갔을 순간을 잡아둘 수도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서 버스나 기차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시간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어느 곳을 가던지 주차를 신경 써야 한다는 단점도 있었다. 외진 곳에 있거나 규모가 있는 관광지는 괜찮았지만 도심에서는 항상 주차가 문제였다.
그래도 짐걱정이 없어졌다는 점은 너무 큰 장점이었다. 짐이 많아서 이동할 때마다 골치였는데 차가 있으니 쉽게 해결됐다.
또 하나의 장점은 좋은 숙소를 비교적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차량으로 이동을 하다 보니 도보로 돌아다니기 좋은 시내 한복판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시내에서 약간만 벗어나도 저렴하면서 좋은 숙소들이 많았다.
더위를 피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고 다녀서 이동 중에 땀을 흘릴 일이 없었다.
거의 매일 한식을 해 먹었기 때문에 재료들을 가지고 다녀야 해서 차량용 쿨러를 가지고 다녔다. 주차하고 관광을 하고 돌아오면 항상 차가운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__________
유심과 환전
동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도는 동안 우리는 현지에서 물리 심카드를 사서 핸드폰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부터는 달랐다. 와이프는 SK 청년요금제가 가능하여 로밍을 하였고 나는 e 심을 사용했다. (SK야!! 나도 청년인데!!!)
미리 찾아본 정보로는 현지 심카드로 개통하는 것과 속도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도 물론 별다른 불편함 없이 사용했었다.
주차요금을 무인으로 지불해야 하거나 화장실을 이용할 때 말고는 대부분 현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많은 상점에서 카드결제가 가능했고 직접 카드를 삽입하지 않아도 되는 컨택트리스 결제방식도 가능해서 유럽 내 사기행각 중 하나인 불법카드 복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______
숙소
숙소는 대부분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취사와 주차가 가능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둘이 사용하기에는 규모가 큰 숙소가 많았다. 도시외곽에 위치한 숙소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숙소들보다 조용하고 저렴했다. 아침 일찍 관광지를 가야 하거나 숙소도 컨디션이 괜찮을 때는 시내의 호텔도 이용했었고 스위스처럼 물가가 감당이 안 되는 곳에서는 캠핑장을 이용하기도 했었다.
대부분 바로 전날 예약을 했지만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덴마크에서 숙소를 구하는데 4번이나 퇴짜를 맞아서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잘 얘기하다가도 체크인을 저녁 7시쯤 할 수 있다고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의 체크인을 위해 그들의 소중한 저녁시간을 빼앗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코펜하겐에서 구한 숙소는 중국인이 호스트였던 집이었다.
아무리 깔끔해 보이는 집이더라도 후기가 없거나 좋지 않은 집은 피했고 에어비앤비에 후기가 없으면 같은 숙소가 부킹닷컴이나 아고다 같은 다른 숙박 어플에 올라와 있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확인이 가능했다.
______
치안
소매치기로 유명한 파리나 런던, 바르셀로나 등 대도시들에서도 우리는 아무 일 없이 잘 다녔다. 운도 좋았던 거 같고 대비를 철저히 했다. 외출할 때는 짐을 최소화하고 항상 핸드폰 도난방지 스트랩을 하고 다녔다.
딱 한번 스페인 빌바오에서 도둑을 만난 적이 있었다. 호텔 체크아웃 후 바로 앞에 주차를 하고 짐을 싣던 도중 트렁크에 실린 가방을 마치 자기 가방인 듯이 자연스럽게 집어서 도로 반대편 도망치던 사람을 잡은 적이 있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놀라웠던 건 잡고 보니 내가 상상한 적 없는 너무나 말끔한 차림의 사람이었다. 깔끔한 셔츠에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매고 마치 관광객이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차림새였다.
한국말로 욕을 하며 쫓아온 나를 향해 순순히 가방을 돌려주고 암쏘리를 연발하며 도망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와 도둑을 번갈아가며 가리키며 말했다. “그냥 보내면 어쩌냐 경찰에 신고해야지!!”였으리라 추측된다.
다행히 바로 잡았고 누구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는 데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주차장이나 도로에 세워놓은 차량의 유리창을 깨고 짐을 가져가는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미국에서도 그렇고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주차를 할 때에는 내부에 훔쳐갈 만한 물건을 두지 않았다.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하다는 후기가 있는 곳에 주차를 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트렁크에 몰아서 넣고, 가지고 있던 튼튼한 자물쇠로 서로 연결해서 묶어놓고 다녔다.
인도에서 딱 한번 칭챙총거리는 사람들을 만난 이후로 특별히 인종차별을 당한 적도 없었다. 아프리카나 남미에서도 니하오라는 인사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건 인종차별의 목적이 아니라 무지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는, 너 어디서 왔니?를 물어보는 게 먼저”인 거 같다고 말하면 대부분 미안하다는 반응이었다.
실제 인종차별을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에는 소통의 어려움도 있고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데 나의 에너지를 쏟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 같다. 그냥 상상 속으로 길거리에 똥이나 밟아라 정도의 통쾌한 복수(?)를 하는 게 나의 여행을 방해받지 않게 해 주는 거 같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한 국가로 입국해서 입국도장을 받고 육로든 비행이든 출국도 그 나라에서 했기 때문에 정리가 쉬웠는데 유럽에서는 하루에 국경을 두 번 넘은 적도 있고 독일이나 프랑스 같이 땅이 넓은 나라는 두세 번 입국한 적도 있다. 기록하고 싶은 건 많은데 정리하는 게 쉽지 않다.
다음번 우당퉁탕 세계여행 시즌2는 사랑하는 가족과 우리의 캠핑카를 타고 금댕이와 함께 하는 목표를 세우게 해 준 유럽여행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