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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나 Aug 18. 2023

생닭과 스크류바 그리고 츄파춥스

폴리아티스트와 나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무는 곳,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스피커 속 소리가 갑자기 멈추는 곳, 

괜히 민망한 마음에 마우스 휠을 만지작거리게 되는 곳,

그곳은 바로 19금 장면이 나오는 작업영상이다. 


어느덧 폴리(Foley) 생활 10년 차를 채우고 있는 지금이야 19금 영상이든, 폭력적인 영상이든, 담담한 마음으로 작업물을 대하게 되었지만(훈훈한 장면 작업보다는 시각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19금 장면 작업은 생각해 보면 민망과 난감, 어색의 그 사이 어딘가였다.




처음 19금 폴리 작업을 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상을 보며 정신을 못 차리고 ‘어버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폴리아티스트는 정신 차릴 겸 나가서 생닭을 사 오라고 했다. 

뜬금없는 생닭 주문에 ‘왜’라는 질문 타이밍도 놓친 채 마트로 달려가 생닭 한 마리를 샀다. 

그리곤 폴리부스에 가져다주려는 찰나,

아직 생닭 사용 순서가 아니라고 말하는 그의 말을 따라 생닭은 다시 냉장고 행이 되어버렸다.




닭의 역할에 대한 궁금함을 뒤로하고 영상 순서대로 녹음을 진행하기로 했다.

처음에 등장할 소리는 침대와 이불 소리인데 커다랗고 두꺼운 이불을 소파 위에 깔아 두고 

영상 속 주인공의 움직임에 맞게 강약(?)을 조절하며 효과음을 만들어준다. 

폴리아티스트는 익숙한 듯 손과 엉덩이 무게를 힘껏 이용해 장면에 묻어나는 침대 소리를 창조해 냈다. 


‘뭔 이런 거까지 녹음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는 주인공들처럼 옷 벗기는 소리를 만들 차례 이기 때문이다.

외투와 속옷 벗는 소리가 모두 폴리아티스트의 손에서 만들어진 소리라는 것을, 나도 이 일을 할 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쌓여있는 옷가지들 틈에서 가장에 어울리는 옷을 찾아 이리저리 펄럭이고 휘두르며 소리를 만든다.

터틀넥의 목 부분이 벗겨지는 소리를 강조하기 위해 두터운 밴드를 덧대 강조해 주고, 바지에서 다리가 빠지는 느낌을 위해 손을 청바지에 넣다 뺏다 하다가 그래도 안되면 직접 청바지를 입고 벗으며 휙, 휙 빠져나가는 소리를 강조해준다.


영상 속 주인공과 똑같이 연기하는 폴리아티스트를 보며 숨은 여우, 남우주연상의 또 다른 주인공은 그가 유력하다며 점쳐 보며 어느새 19금 폴리(Foley) 작업에도 적응하고 있는 나였다.


옷더미 속에서 여성 속옷을 찾아 버클을 이리저리 풀어보며 ‘딸깍’ 하는 소리를 찾아 헤매던 폴리아티스트는 소리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플라스틱 부품과 작은 쇠를 덧대어 한층 더 짙어진 효과음을 만들었다. 

또 자신이 입고 있던 속옷의 고무줄을 이리저리 만지며 남 주인공의 속옷 벗는 소리까지 구현해 내었는데, 

폴리부스의 시창이 나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에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진 순간이었다. 


손과, 다리, 팔을 이리저리 만지며 살소리를  녹음하지만 부드러운 살의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 

생각했던 폴리아티스트는 화장실로가  물로 팔을 적신뒤  폴리부스에 남아있는 바디로션을 슥슥 발라 촉촉한 피부를 만들었다. 

어찌나 많이 발랐는지 녹음실이 라벤더 향으로 가득 차 우리의 머리 아픔과 맞바꿔야 했지만,

좋은 소리를 위해 후각은 잠시 포기하기로 했다.


냉장고에 있던 생닭을 꺼내 폴리부스로 건넸다. 

드디어 내가 궁금해하는 생닭의 쓰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폴리아티스트는 포장되어 있는 닭을 꺼내 한 손으로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닭을 때리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들어 있어 한층 더 탱탱해지고 차가워진 닭의 촉감과 손바닥으로 내리치는 힘이 만나 ‘찰싹’ ‘찰싹’ 하는 소리가 녹음실에 울렸다.

그렇다. 모두가 아는(?) 그 소리, 살과 살이 닿아 내는 소리인 것이다.

소리만 들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영상과 함께 들어보니 실제같이 극대화되어 영상이 한층 더 야하게 느껴졌다.


녹음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생닭을 보면 작업했던 그때를 떠올리곤 했었다. 닭을 보면서 이런 소리를 만들거라 누가 상상할까, 예상치도 못한 물건을 이용해 소리를 창조하는 것이 폴리(Foley)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계기였다.



상상도 못 한  생닭의 정체를 파악하고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다.

바로 키스 소리도 녹음해야 한다는 것!

잉? 이거도 폴리(Foley)라고?

폴리는 어디까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배우들의 현장 소리에 이 정도는 녹음되지 않을까?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뒤로 한채 확인한 결과, 좌절이었다.

키스의 ‘ㅋ’도 들리지 않는 현장 소스였던 것이다.


"자 그럼 키스 소리를 녹음하자." 

세상에, 이런 말이 있다니 이것 또한 폴리(Foley)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특별한 경험 일테다.


폴리아티스트는 자신의 입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쪽’ 하는 소리를 내보지만 침소리가 너무 많이 섞인 소리는 영상 위에 겉돌기 바빴다. 

이에 방법을 재빨리 바꿔 이번엔 그의 팔 안쪽에 스스로 입술을 대고는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조금 더 촉촉한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찾은 방법은 스크류바와 츄파춥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꽝꽝 얼어있는 스크류바를 입안에서 녹인 뒤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움직이며 생기 있는 키스 소리를 만들어 냈다. 아이스크림이 입술과 부딪히며 '찹' 하는 소리가 자연스러워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이 기세를 몰아 그다음은 츄파춥스를 이용해 입술과 입술을 머금은 느낌을 표현하기로 했다.

최대한 사탕과 이가 부딪히지 않게 조심조심 사탕을 녹여먹으며 만들어내는 소리는 인위적으로 들리지 않아 원래 있었던 것 마냥 영상에 '착' 달라붙었다.


스크류바와 츄파춥스를 먹으며 작업하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폴리아티스트 혼자 고군분투하며 키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첫 번째, 녹음 후 진심으로 맛있게 아이스크림과 사탕을 먹으며 당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두 번째다.




키스소리를 마지막으로 19금 폴리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제일 중요한 게 남았다. 바로 에디팅이다.

지금까지 녹음한 소리를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보면서 싱크를 맞추는 일, 일상적인 장면이야 자연스럽게 마주하며 넘기지만 19금 영상을 에디팅 하다 보면 괜히 뒤에서 누가 보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더 확인하게 된다.


알 거 다 아는 어른이지만 사실 한동안 19금 장면을 작업하는 것이 버거웠던 적도 있었다. 괜히 민망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사운드의 기준을 잡는 일도 평소 작품보다 어렵기도 했고, 서로 다른 성을 가진 폴리아티스트와 영상을 보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19금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이것 또한 폴리(Foley)의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일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이거도 설마 폴리(Foley)야?”라는 물음이 있다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설마 설마, 그렇습니다.” 다.

소리가 있는 곳, 그 어딘가에 늘 폴리(Foley)가 있다.

이것이 폴리아티스트와 나의 역할이면

앞으로도 묵묵히 그에 어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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