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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Jan 06. 2023

물량팀

내 인생의 ㅈ소체험기 02

조선소에 취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이버 모 카페에 내가 올린 글이었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10여 통이 넘는 쪽지들이 날아왔다.

"대부분 저희는 xx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oo물량팀입니다."라는 내용이었고, 포설, 족장, 배관, 취부 수많은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 내 쪽지함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기만 하면 됐다.

개중에 H중공업 노조 쪽에 있는 사람인데, 내 지인이 물량팀을 구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는 쪽지가 있었고, 나는 수많은 쪽지 중 그 쪽지 속 연락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

나는 K형을 그렇게 만났다. K형은 나에게 주꾸미집에서 주꾸미  한 그릇을 사주며, 조선소의 시스템에 대해서 대충 설명해 주었고 내가 해야 하는 일과 지인이라는 L팀장을 소개해주었다. L팀장은 자신이 물량팀장이라고 소개하며 나에게서 건강검진 서류와 사진을 받아가며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L팀장은 나에게 조선소 작업복과 안전화를 무료로 사주며 서류가 통과되었고 곧 근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더불어 근태가 중요하다고 누누이 강조를 하였다.

며칠 후 새벽. 나는 우리은행 앞에서 L팀장에게서 받은 연락처의  E팀장을 만났고 나는 E팀장과 함께 조선소에 입사를 하였다.


조선소 물량팀 시스템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이들의 관계는 나 하나를 채용시키고 돈을 받아먹는 소위 연쇄적인 똥띠기의 관계였다.

물량팀 : 조선소 하청의 하청.
E팀장 : 실제 물량팀의 팀장. 현장에서 근무를 한다. 조선소 하청에서 기공들 단가로 물량을 받아오고 조공들에게 적은 일당을 주고 기공단가의 차액만큼을 월급으로 가져간다.
L팀장 : 소개팀장. 조선소 초짜들을 꼬셔서 현장팀장에게 소개해주고, 초짜들이 일한 공수만큼의 뽀지를 받아간다.
K형 : 사람을 소개해주고 L팀장의 뽀지의 일부를 나눠먹는다.

그들이 나에게 밥을 사주고 옷을 사주고 근태를 강요한 이유가 다 있었다. 이들이 배분받는 돈은 이러했다.


조선소의 원청에서 인당 30을 준다고 가정해 보자.

하청에서는 그중에 인당 25를 기공에게 준다.(하청몫 5)

하청팀장은 인당 20으로 물량팀을 불러들인다.(하청팀장몫 5)

물량팀장은 인당 15는 기공에게 주고 조공에게는 9를 준다.(물량팀장몫 5(기공),11(조공))

이 조공에게서 나오는 11을 얻기 위해 소개팀장에게 3을 떼어준다.(소개팀장몫 3)

여기서 소개팀장몫 중 1이 K형의 몫이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30으로 시작된 단가는 일하는 조공은 9를 가져가고 아무것도 안 하고 조공을 소개해준 K형은 1, 소개팀장은 3, 물량팀장은 7, 하청팀장은 5, 하청사장은 5를 나눠가지게 된다.


조선소의 똥띠기가 아무리 개차반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겪은 똥띠기 시스템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던 케이스였다. 무슨 다단계도 아니고 말이다.


선택의 기로


아무것도 모르고 조선소에 입사한 초짜는 두 달이 지나서, 얼추 이 사람들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일이 생겨 며칠 쉬게 된 일이 있었는데 K형에게 갑자기 전화가 와서 왜 일을 안 나왔냐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형이 내 근태와 건강을 걱정하느라 그런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내가 결근이면 K형이 받는 돈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처지에 있던 L팀장도 며칠 후 전화가 왔고, 그들은 나에게 밥을 또 사주며 근태가 중요하다고 어필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 선택이 필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소개팀장이던 L팀장과 현장팀장이던 E팀장이 내주던 뽀지를 올리니 마니로 트러블이 생긴 것이다. 그들의 그 미묘한 단가문제로 나에게 팀을 옮기라는 제안이 L팀장 입에서 나왔다. 그런데 사실 현장에서 같이 부대끼며 고생한 건 E팀장인데 돈 때문에 조금이나마 정든 팀원들과 헤어지는 게 아쉽기도 했고, E팀장의 옆에서 하는 입바른 소리도 내 귀를 팔랑거리게 만들었다. E팀장의 조언은 L팀장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도움을 주는 척했지만, L팀장에게 가던 뽀찌를 E팀장 본인이 온전히 다 차지할 수 있느니, 그렇게 말한 것이 분명했다.

고민 끝에 그나마 현장에서 나를 인정해준 E팀장 밑으로 가기로 다. 같이 일하던 사수가 A급이어서 배울 것도 많았고, 9만 원이던 단가를 5천 원이나 더 올려 받았으니 말이다.


개자식!

내가 L팀장에게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자식은 내가 E팀장 쪽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사람 착한 척은 다하다가 태도가 순식간에 180도 바뀌었다. 그러더니 처음 조선소 들어올 때 사주었던 작업복과 작업화 그리고 동절기 작업복 값으로 30만 원을 떼어갔다. 내가 혹여나 그것이 불만을 가질까 싶어 혀놀림을 남발해대는 게 거가대교보다 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딴에는 내가 고정적으로 수익을 넣어줄 거라 생각한 가축이었는데, 그 가축이 지가 만든 울타리를 부수고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 함부로 믿지 마라.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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