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롱 Jan 07. 2023

워킹홀리데이 준비

내 인생의 ㅈ소체험기 04

큰돈을 벌기 위해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자!

2013년 어렵지 않게 받아 든 이학사의 졸업장에 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스펙은 너무나 형편없었고, 남들처럼 스펙마련에 죽자고 덤비지도 않았고, 영어라고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밑바닥을 맴돌았을 테다가, 헛된 꿈을 좇던 대학교 3, 4학년이었던지라, 졸업할 때 내가 갈 수 있는 직장의 폭은 매우 좁았다. (1편 참조)



생각해 보면, 그 시기는 유독 주변에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 또한 빈번한 취업실패로 인해, 워킹홀리데이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나는 나의 고등학교 친구인 J와 함께,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딱 3개월 단디 돈 모아서 500씩 들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고?
돈 많이 번다더라.


또 어디선가 주워들은 정보를 가지고 내가 친구에게 한 말이었다. 나뿐만 아니고, 내 친구 또한 같은 처지였기에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워킹홀리데이를 가자는 말은 달콤한 유혹이 돼서 돌아왔다. 실제로 나의 고등학교 베프들 중 절반이상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그리고 나의 이 제안이 내 친구의 인생경험을 바꾸어 버릴 줄은 그때의 나는 꿈에도 몰랐다.




4860원. 그 해 최저임금이었다.

우리는 그날부터 직장을 찾아 알바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둘 다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 경험 없었기에, 혼자 시작하는 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와 동반입사 가능. 월 200 이상 가능. 이러한 키워드가 우리가 찾는 일자리였다. 그 당시 울산에는 H중공업과 H모비스 등에서 많은 대졸자, 휴학자 등의 아르바이트 생을 뽑아왔었고, 낮은 최저임금 덕에 공장 생산직은 힘들지만, 제법 높은 임금을 벌 수 있는 일자리였다.

그렇게 며칠 동안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중 H모비스 계열의 하청 카오디오 제작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친구와 함께 면접을 보러 오라는 이야기였다.

공장아르바이트는 커녕 사회초년생도 못해본 놈들이라서, 공장아르바이트라니, 괜스레 겁부터 났다. 간단한 면접을 마치고, 언제부터 어디로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다. 면접부터 걱정했지만, 둘 다 군필에 허우대는 멀쩡했으니, 크게 면접에서 까일 일은 없었다.




나는 공장 컨베이어 라인에 서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하루종일 동일한 노동을 반복하는 행위 자체가 엄청나게 힘든 일인데, 그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니까.

처음 출근 한 모비스의 근무조건은 단순했다. 주간 2교대.

주야로 근무하던 현대자동차의 시스템이 주간 2교대로 교체되었고, 아침 6시부터 15시까지, 그리고 15시부터 24시까지 주간 2교대의 형태로 근무가 시작되었다.

첫날 내가 맡은 일은 컨베이어벨트의 가장 앞자리였고,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을 반장으로부터 들었다. 모니터에 나오는 차량의 에어백 파츠를 창고에서 찾아서 가져와 하나씩 컨베이어벨트에 올리기만 하는 단순한 업무였다. J가 맡은 업무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오는 부품에 일자로 피스를 박아 넣는 일이었다. 공구를 다뤄야 하는 업무이기에 어려워 보여, '내가 맡은 업무가 다행히도 더 쉽네'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생각해 보면, 일 자체는 매우 단순했다. 다만 하루종일 왔다리 갔다리 해야 하는 업무다 보니, 퇴근할 무렵에는 양발에 물집이 가득 잡혀있었다. 이것이 입사 1일 차였다.


쉬는 시간은 6분

제법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 하지만, 내 기억 속에 2시간 단위로 10분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휴식시간이 되면 공장 내에는 벨이 울려 퍼지고, 컨베이어벨트는 정지하게 된다. 이때 흡연자들은 재빠르게 흡연을 하러 가고, 나머지는 짧은 커피타임을 가지며, 화장실도 재빠르게 갔다 와야 한다. 만약, 업무시간에 용변을 봐야 하는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컨베이어벨트가 진행을 못하기에 제품이 끝도 없이 적체되어, 팀원들의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분이라는 시간은 온전히 우리 차지가 아니었다. 우리가 일하는 곳으로부터 화장실은 걸어서 2분 거리에 있었고, 왕복으로 치면 4분의 시간이 그냥 소요되었다. 휴게실로 가서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겨우 6분에 불과했기에, 다른 사람들을 보면, 제자리에서 그냥 핸드폰 연락을 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보냈다. 소중한 10분이 경과하면 영락없이 다시 벨이 울렸고 컨베이어벨트 앞 모니터에는 업무를 독촉하기라도 하듯이, 파츠의 네임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식사시간

점심 식사 시간만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숨을 돌리며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식사는 배식 형태였고, 맛은 평범했다. 다만 1시간의 휴식 시간 중에 각 회사별로 식사시간이 상이했던 게 문제였다. 빠르게 밥을 먹고 계속 쉬면 좋으련만 너무 많은 근로자들이 일하는 형태였기에, 시간을 정해놓고 식사를 했고, 쉬다가 밥 먹으러 가고 다시 오면 휴식시간이 끝나거나 애매하게 남아있는 그런 일들이 빈번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미묘하게 짧은 휴식시간이 단순한 반복업무를 더욱 힘들게 했다. 더욱이 누워 자기도 애매하고 제대로 쉴 만한 공간마저 없는 게 고역이었다.


야간 통근버스

평소에 출퇴근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지만, 24시에 생산공정이 끝나고 나면은 야간 통근버스를 이용했다. 울산에서는 대중교통이 23시 무렵이 되면 거의 다 배차가 종료되기 때문에 통근버스는 강제 선택사항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버스가 우리 집까지 뱅뱅 돌아간다는 것. 10분이면 갈 거리를 다른 데부터 들려서 가니 집에 가면은 40분은 훌쩍 넘는 시간이 경과한 후였고, 집에 와서는 씻고 나면 침대에 쓰러져 기절했다.




도망쳐야겠다. 미안해 친구야


내 평생에 일에 스트레스를 받아 도망친 적이 2번 있는데, 그중 한 번이 이번이었다.

모비스 공장의 제조 일을 하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반복 단순작업을 못하는 성격이다. 조금이라도 내 의견이 반영되고, 생각을 어필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이런 면에서 나는 모비스보다는 조선소 쪽 업무가 맞았다.

단순히 컨베이어에 물건을 올리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업무를 3주가 조금 넘는 기간(실제 일한 건 15일)하고, 대구에 있는 ㅈ소기업에 취업이 되었다는 핑계를 대고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반장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대구로 도망쳤다. 

어찌 보면 이 회사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ㅈ소기업이 아니라, 그냥 의지 없고 끈기 없는 한 명의 대졸자가 그저 또 추노 해버린 늘상 있는 일이었으리라.




J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면 같이 입사했던 J는 어떻게 되었을까?

J는 5개월을 넘게 버텼다. 죽자고 일해서 천만 원을 모았다. 모은 돈을 가지고 호주로 날아갔다. 천만 원이 넘는 돈 중 절반은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쓰고, 거기서 일본인 여자친구도 만들었다. 1년동안 호주에서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제법 많은 돈을 모았고,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나라를 여자친구와 함께 여행하며, 목돈을 들고 들어왔다.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는 하고 싶던 눈썹문신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그 이후로 여자친구와 결혼도 하고 성공도 했냐고?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소설처럼 해피엔딩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우리 인생이라는 게 다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내가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나는 그곳을 ㅈ소기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내가 더 ㅈ같은 직원이었겠지만...
안 그래?


구독하기와 라이킷 댓글은 힘이 됩니다.

이전 04화 취업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