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선소에 입사하고 나서 하게 된 생각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군대만큼이나 이상한 별의 별놈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조선소였다.
기술이라곤 1도 모르는 나 같은 무지한 취준생부터, 알바, 정직하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 그와 대비되는 신용불량자, 전과자, 퇴근만 하면 소주병을 끼고 사는 남자, 월급날만 되면 돈을 빌려달라는 아저씨, 그리고 그러한 인간들에게 붙어서 진실되지 못하게 돈을 뽑아먹으려는 2편의 양아치 L팀장이나 K형 같은 사람은 물론 지금 이야기하려는 사기꾼 HJ도 있고 말이다.
HJ. 외부의 시각.
그는 H자동차에서 도장을 하다 왔다고 했다. (도장=페인트칠)
생긴 것부터 건실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얼굴도 잘생겼고, 말도 조리 있게 잘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화술에 감탄사를 유발할 정도로 멋있는 사람이었다. 아는 것도 많고 박식했으며, 일마저 잘했다. 무언가를 시키면 완벽주의자처럼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사실 HJ와 그렇게 친하진 않았다. 그가 다른 팀원들과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친밀도를 올리는 데 사용되는 주제가 그가 일했던 업종인 자동차였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나에게 있어서 그저 이동수단. 비싼 차든, 좋은 차든, 굴러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공감을 1도 유발하지 못했다. 단지 그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HJ는 여러 사람과 두루두루 친했다. 아니,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직종에 발을 들였기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고 했는 것이라 여겼다. 몇 달 동안 끊임없이 위와 같은 모습을 보여왔기에, 정말 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부턴가, HJ는 사람들과 저녁에 술을 한잔 사준다고 말을 하곤 했다. 주로 어리고, 젊은 조공들 위주로 였다. 그전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에 따르면, 잘생기고 착하고 멋진 형이 밥까지 사준다니, 어린 동생들 입장에서 거절할 필요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나에게도 HJ가 저녁에 술 한잔 사준다는 제안을 하였다. 나는 HJ와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술을 즐기지도 않았기에, 딱히 그의 제안에 응하지 않았고, 그는 다른 사람을 찾아 술약속을 권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근면성실의 대표 아이콘이라 보였던 HJ가 보이지 않았다. 팀장에게 물어봤을 때는 개인사정으로 그만둔 것이라고만 알려주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수가 넌지시 말해주기로는 구속이 되었다고 했다. 죄목은 사기라고 했고, 놀라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H중공업에 취업사기로 K 씨가 잡혀갔다고 나왔다.
HJ. 그의 성은 강 씨였다.
HJ. 내부의 시각.
그는 H자동차에서 도장을 하다 왔다고 했다. (도장=페인트칠)
건실하게 생긴 그는 사람들이 믿음을 가질만한 관상이었다. 얼굴도 잘 생긴 그가 조리 있게 말하는 건 사기꾼의 현란한 화술이었다. 사기꾼들의 뱀의 혀는 감탄사를 유발할 정도로 놀라움을 자아내곤 한다. 사기를 치려면 배경지식이 많아야 했고, 똑똑한 척해야 했으며, 꼼꼼한 척을 해서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게끔 만들었다.
HJ는 울산 H중공업에 물량팀으로 입사했고, 울산 H중공업 옆에는 H자동차가 있어서, 사람들이 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개중에는 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고, 그가 던진 화두를 듣는 사람들에게 말 잘하고 일 잘하는 그런 이미지로 비치기만 하면 되었다.
HJ는 여러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했다. 아니,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사기를 쳐야 할 어리숙한 멍청이를 찾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끊임없이 위와 같은 모습을 보여왔던 건 사람을 속이기 쉬웠기 때문이니까. 어느 날부턴가, HJ는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어리고 젊은 조공들 위주로 말이다. 나이 든 기공들에게는 대기업 취업사기 따윈 먹히지 않을 테니까. 그가 조공들에게 던진 화두는 이런 것이었다.
H중공업에 직영 정직원으로 꽂아줄 테니 5천만 원을 달라
는 것이었다. 더욱이 무서운 사실은, 그가 여러 명에게 그러한 제안을 했었고, 실제 술자리에서는 다른 피해자들을 데리고 나왔다. 피해자 들은 하나 같이 그가 직영으로 꽂아주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진실은 이러했다. 취업청탁 명목으로 5천만 원을 받는다.(금액은 상대방마다 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취준생 자식을 가진 부모님들은 자식을 위해 그 정도 투자는 적은 금액이었다. HJ는 그 돈으로 오피스텔을 하나 빌리고, 취업사기 친 취준생을 그곳에 넣는다. 회사에서 주는 기숙사라는 형식으로. 그리고 작업복을 구매하고, 거짓된 부서와 이름을 오바로크로 박아 넣는다. 사원증도 교묘하게 진짜 같이 만들어주었다. 그것을 주는 것만으로, 취준생들이 그것을 믿었을까? 아니다. 그는 부서가 배치되기 전이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소정의 대기기간의 월급 명목의 용돈도 주었다. 취준생 입장에서는 기숙사도 주고, 작업복에 사원증 그리고 월급이라는 명목의 돈까지 나오니, 그를 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타깃이 정해지면, 술자리에 함께 나가, 실제로 취업이 된 것처럼 맞장구를 친 것이다. 그들이 진짜 직영이라도 된 것처럼 믿었으니까.
HJ. 그가 사기꾼이 된 이유
HJ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HJ도 처음부터 취업사기꾼은 아니었다. 그는 열심히 살았었다. 도장공장에 다닌 것도 사실이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고, 일처리면에서 완벽주의자이자, 잘생긴 외모 또한 전부 사실이었다.
그가 힘든 시기에 그가 저질렀던 것과 같은 똑같은 일을 지인에게 실제로 당했고, 그를 속인 사기꾼은 그에게 달콤한 유혹을 했다.
너도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게 해 줄게. 네가 받은 피해를 그걸로 메꾸자.
그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나름 건실하게 살아왔던 그의 인생이 한 번의 선택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 것이니까.
나는 정말 천운이었다. ㅈ소기업들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취업사기까지 당했으면, 나는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쓸 생각조차 못하고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사기를 당하지 않았기에, 그때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이런 글을 작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HJ가 구속된 이후로 안타깝게도 HJ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그가 정말 직영에 다른 사람을 꽂아줄 힘이 있었다면, 자기 자신이 원청의 하청에 하청에 해당하는 물량팀에 있을 이유가 있었을까? 하지만, 어리기만 했던 20대 초반의 나이에 우리가 그것을 판단하고 생각할 능력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언젠가 그가 나에게 권했던 술자리 한 번은, 정말 나를 속이려고 했던 술자린지, 아니면 회식 때처럼 같이 이야기를 별로 못해본 나와 술 한잔을 기울이고 싶었던 것인지는 그가 잡혀간 지금, 그의 속마음은 여전히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