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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Jan 09. 2023

자존감이 0%인 사람

내 인생의 ㅈ소체험기 05

엄마, 나 도저히 못 다니겠다. 그만둬야겠어!


입사한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예전 모비스 생산라인 공정에서 일하던 시기에는, 스스로 판단하고 그만두었었지만(친구를 배신하고 도망쳤지만), 부모님께 나의 고충을 토로하고 그만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입사한 그곳은 축제대행사였다. 축제를 기획하는 기획자로써 나는 그곳에 입사했다.


나는 비전공자이다. 단지, 대학교 3, 4학년 시기에 불현듯 대외활동에 눈을 뜨게 되면서, 마케팅이라던가, 여행, 축제 등의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되었고, 그러한 쪽으로 진로를 찾아 헤맸다. 물론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지만, 이번 직장도 그러한 시행착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면접을 보러 간 회사는 작은 사무실이었고, 그곳의 대표는 상냥하기 그지없었다. 경험이 전무한 내가, 패기만으로 많은 여행을 다고, 축제에 관한 지식을 어필하자, 좋은 느낌이 들었는지, 나를 채용해 주기로 한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ㅈ소기업.

그렇게 나는 기획자가 되었다. 아니 기획자 인 듯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 울산에서 몇 안 되는 행사대행사들은, 어딜 가나 소규모 회사임은 분명했다. L대표는, 자기 지역의 대표 1회 축제를 기획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울산에서도 제법 유명한 행사를 치러낸 유명인이었다. 함께 일하는 J팀장은, L대표의 후배라고 들었다. H대리는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새내기 였는데, 어떻게 대리를 달고 있는지 의문인 그런 포지션이었고, 첫날 출근한 나에게 자리만 무작정 배정해 주고, 아이디어를 내라 라는 미션을 준 뒤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결국 퇴사할 때까지 배운 것은 1도 없었고, 내 능력으로 어찌어찌 버텼다.


여기는 진정한 ㅈ소기업이었다. 근무시간은 9to6라고 계약하고 들어갔지만, 지켜지는 건 1도 없었다. 우리 집에서 이 회사까지는 버스로 1시간이 소요되는 곳이었고, 대표가 출근하기 전에 회사에 도착해야 했기에 나는 아침 7시 반에는 집에서 나와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마치는 시간이 되면 칼퇴는커녕, 아무것도 할 게 없는데 자발적으로 새벽 1시, 2시까지 야근은 기본에, 야근수당 따윈 챙겨주지 않다. 대신 집에 갈 때 택시 타고 가라며 카드를 주긴 했는데 택시비가 다음날 제법 나왔는지, 그다음부터는 막차시간까지 일을 시켰지만, 버스를 탈 때보다 택시를 탈 때가 더 많았다.(무료 야근이 줄지 않았단 이야기지만, 할 것 없이 그냥 퇴근만 못한 것이다.)


이 회사의 여러 가지 조건도 안 좋았지만, 내가 무엇보다 이 회사가 별로라 느낀 것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L대표

L대표의 첫인상은 제법 좋았다. 하지만 첫인상만 좋았다. 그는 주둥이가 개 썩었다. 입에 쌍욕을 달고 살았고, 인격모독을 남발했고 가스라이팅을 항상 했다. 지 잘난 맛에 사는 놈이었다. 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내라고 미션을 주었을 때도, 본인 머릿속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음에도 직원들이 퇴근을 못하게 밤늦게까지 잡아두었으며, 나름 신선한 아이디어랍시고 들고 가면 신랄하게, 비난을 일삼았다(비판이 아니라, 비난). 그리고, 점심식사 메뉴의 선택권한은 우리에게 없었으며, 당연한 복지인 점심식사를 살 때마다, 자기가 아는 맛집만 데리고 온다고 생색을 내었다. 그랬기에, 업무회의차 출장이라도 나가면, 무섭도록 낮은 텐션의 사무실 공기가 조금은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한 번은 출장이랍시고, 직원들에겐 답정너 업무를 던져주고, 본인은 골프 치러 여행을 다녀옴은 물론, 본인의 골프모임 상품 주문 같은 걸 직원들에게 시켰다.

최악인 것은 월급날이었다. 모름지기 직장인이란 월급날 하루를 바라보고 뭐 같은 한 달을 버티는데, 대표가 일부러 기억을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월급날만 되면 직원이 "대표님 오늘 월급날인데 월급이 안 들어왔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야 그제야 계산기를 두드리고 월급을 입금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건, 인격모독은 패시브로 장착된 이 인간이, 가끔 회식을 열곤 했는데, 그때마다 직원들을 버스정류장에 데려다준다며, 음주운전을 하는 건 두어 번 느끼고, '잘못하면 인생 종 치겠는데?'라는 생각도 한몫을 했다. 아마 인간성 자체가 썩어서 그랬는지, 음주운전이 잘못된 행동이다라는 상식은 그에겐 없었다.


J팀장

J팀장은 사람은 착했다. 대신 L대표의 노예였다. 이 회사의 대부분의 기획 아이디어는 거의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하지만, 10년째 대표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 사람에게 자존감이라곤 없었다. 10년 동안 무능한 인간이라고 평을 받으며,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이 사람을 아랫직원이 보는데서 수도 없이 갈궈댔다. 대표의 인성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또한 10년이 넘게 일하고 있는데, 월급을 올려준 경우도 거의 없었다. 10년이 지나도록 그의 통장에 꽂히는 돈은 세전 300이었다. 연봉이 4천도 안 됐다. 매년 새해가 되면 대표한테 찾아가 월급인상을 요구했지만, 대표의 인격모독과 가스라이팅에 번번이 포기했다. 나라면, 진작에 이직을 했을 텐데, 이미 자존감이 바닥인 사람이라, 이직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 듯했다. 한 번은 그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팀장님은 여러 가지 행사 기획을 하고 경력도 좋은데, 월급도 안 올려주는 여기서 왜 이직을 안 하십니까?"


대답이 가관이었다. "나같이 무능한 사람을 써주는 사람은 우리 대표님 밖에 없다. 내가 일을 못함에도 고향후배라고 챙겨주시는 게 어디야. 월급을 안 올려주시는 건 내가 일을 못하기 때문이지"라고 말했다.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대표가 출장을 갈 때면 나는 그에게 끊임없이 이직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맨날 입으로만 기회가 생기면 여길 박차고 나가 다른 데 갈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지, 10년이 다 되어감에도 나는 장담할 수 있다. J팀장은 아직도 L대표와 함께 일을 하고 있을 것이고, 자존감이란 1도 없는 패배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가 대표에게 메여있는 건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내가 재직 중이던 때에, 그는, 차를 한대 샀다. 스마트키가 대중화된 그 시절에도 키를 꽂아서 타는 투싼이었다. 후방카메라도 없었다. 500만 원도 채 안 하는 그 차를 사기 위해, 그는 대표에게 돈을 빌렸고(대표는 후배라 그냥 주었다고 어필했는데 그냥 갑을 관계. 빚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그 덕에 대표에게 평생 마음속 채무관계로 엮여있다.


H대리

H대리는 사회초년생이었다. 입사한 지는 6개월쯤 되었으려나. 그녀도 일을 정말 못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일 다운 일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행사대행업 쪽을 전공하였지만, 이론과 실전은 천지차이. 그녀의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사장은 잦은 인격모독에도 '사회생활이란 게 원래 이런 거구나'라고 느꼈을 것이다. 다른 회사를 경험해보지 못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열정적이고 불같은 성격이었고, 늘 J팀장과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그녀도 J팀장의 자존감 없는 성격을 매우 싫어하였고, 둘은 앙숙이었다.

하루는 그녀에게 어떻게 대리를 달았는지 물었다.

"경력도 짧은데 대리가 되셨다니 아는 게 많으신가 봐요?"


아니었다. "다른 회사와 협업할  신입이라고 꿀리지 않으려면 직책은 대리쯤 되어야 하니까 대리라는 직함을 주셨다."라고 했다. 입사 3일 차인 비전공자인 신입새내기인 나도 대리였다. 그녀는 잦은 야근에 피곤해했다. 그래도 집이 가까우니까라고 자기 위로 하면서 버텼다. 저녁식사는 대표가 카드를 주고 가서 자유롭게 할 수 있었는데, 원하는 맘스터치 메뉴를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복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회초년생부터 블랙기업에 입사한 그녀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어쩌면, 나도 같은 블랙기업만 골라서 취업했었기에 동질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수시로 그녀에게 이직을 권유했다. 부산에 가면 9to6근무지만 여기처럼 야근을 시키지 않는다. 다른 회사는 제때 월급이 들어온다. 같은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라도, 한계치에 도달하면 이직을 할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H대리는 갑자기 최고 바쁜 '외국계 포럼 및, 외국계 인사들의 포럼 후 여행코스를 짜던 시기'에 갑자기 이직을 했다.

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수많은 포럼 관련 리를 던져준 채로.(나는 이 행사에 대해 1도 몰랐다.)

후에 퇴사하고 나서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장롱대리님, 덕분에 지금은 칼퇴하고 연봉도 높고 훨씬 좋은 직장에 다녀요."라고 대답했다. 나의 뒤통수를 그렇게 세게 때리고 갈건 예상 못했었는데 말이다. 망할 년.


디자이너 K

디자이너 K양은 내가 입사한 이후에 채용을 했다. 직원들이 포토샵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대표가 새로이 사람을 뽑았다. 그녀의 전공은 3D모델링이었고, 포트폴리오를 들고 와 입사했지만, L대표에겐 포토샵이며, 일러스트레이터며, 3D모델링이며 중요치 않았다. 그저 디자인학부를 나온 사람이면 되었다. 그녀도 우리처럼, 잦은 인격모독에 시달렸으며, 더불어 외주업체 특성상, 발주사의 잦은 디자인 변경으로 늘 만성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게다가 J팀장은 틀에 박힌 꼰대라, 그녀의 적이었다. 그녀가 나름 아이디어를 내서 디자인을 만들어 J팀장에게 컨펌을 받으러 가면 J팀장은 아저씨들이나 좋아할 법한 아이디어를 내서 그녀의 작품을 망쳤다. 그리고 J팀장의 입김이 들어간 작품이 발주사로 가면 당연히 빠꾸를 먹었다. 자존감 없고, 패배감으로 가득 찬 J팀장은 K양에게만 어깨가 올라갔다. 기 센 H대리한테는 한마디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내가 퇴사한 이후, 그녀에게 안부를 한 번 물은 적이 있는데, 그녀 역시 이후 바로 퇴사했으며, 그 회사에 들어간 것이 자기의 큰 실수라고 말했다. 이하동감.




ㅈ소기업은 괜히 ㅈ소기업이 아니다. 업무상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사람 스트레스가 정말 심하다. 그 당시에 내가, 계속 회사를 다녔으면, 아마 J팀장처럼 자존감이라곤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추노 하게 도와준 H대리와 디자이너 K양도 L대표의 가스라이팅과 인격모독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그들에게 이직을 권유한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브런치에 올라오는 퇴사 관련 이야기를 많이 본다. 많은 꼰대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면전에 대고 쌍욕을 일삼으며, 인격을 모독하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가스라이팅을 통해, 사람의 자존감을 0으로 만드는 L대표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ㅈ소기업하위계열로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은 게 어쩌면 이미 50%는 성공한 직장생활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저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도 나는 퇴사를 고민하는 내 주변 지인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또라이 때문에 네가 퇴사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네가 또라이가 돼서 그 사람을 퇴사하게 만들어!

라고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요즘은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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