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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Jan 27. 2023

근본 없는 회사

내 인생의 ㅈ소체험기 01

제로스펙


그게 저입니다.


첫 취업은 어찌어찌하다 보니, 대구로 하게 되었습니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었는데 일이 힘들어서 친구 버리고 도망치듯 취업했죠. 이 이야기는 다음에 들려줄게요.

내가 들어간 회사는, 처음에 말한 스펙업 확률 0%. 최저임금. 월급 세전 130만 원. 나포함 직원 3명. 그중 한 명은 사장. 바이럴마케팅 회사였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죠. 여사장은 전에 어딘가 다른 블로그마케팅 회사에 직원으로 있었는데, 이게 블로그 마케팅을 하다 보면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고 돈 잘 벌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금광을 찾아 과감히 사표를 내고 사업을 시작하신거죠. 쥐뿔도 아는 것도 없이 말이죠.


명불허전

그런데 자기가 뭘 알아야 말이죠. 무조건 블로그를 만들래요. 상위노출을 띄우래요. 노하우도 없어요. 자료도 없어요. 알려주는 것 마저 없어요. 모르니까 아는 직원을 뽑은 거래요. 외주로 글 써주는 프리랜서 5천 원에 게시물 1개를 올리게 섭외해오래는데, 다른 데는 건당 3~5만 원 주는데 말이죠. 되겠습니까?


이게 또 근본 없는 소기업이라 그런가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에요. 아니 근데 타자 빠르고 포스팅에 도가 튼 나는 20분이면 예약포스팅 10개를 걸어놓으니. 남은 시간이 참으로 고역이더라구요. 진짜 네이버 인기검색어 1등부터 10등까지 모든 기사와 메인에 걸린 글을 매일 읽었습니다. 시간이 남아돌았거든요. 이게 월급 루팡이지, 가난한 루팡.


타지에 와서 원룸 잡고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 첫 월급이 들어왔네요. 근데 3개월 수습이라고 세금 안 떼고 100만 원이라네요. 배우는 거니까 좋다고 시작했죠. 근데 타지에서 100만 원으로 뭘 해. 아무것도 못해. 적금은 들 수 조차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다닌 건 대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임금도 저렴하고 물가도 저렴한 도시였기 때문이었지요.


3개월 후에 정규직이 되고 130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근데 세금 떼니까 109만 원이더라구요.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바꿔보기로 했죠. 조금이라도 나은 회사생활을 원했었거든요. (이때 도망쳤어야 되는데. 2년 잡은 전세가 날 못 도망치게 했다. 젠장할.)


사장님 근무시간 9시에서 6시로 바꾸죠?


나는 불만이 많았어요. 왜냐? 할 것도 없는데 10시에서 7시가 웬 말입니까. 10시에 늦게 출근해서 아침에는 아무것도 못해요. 7시는 늦게 퇴근해서 아무것도 못해요.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냐?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여사장은 출장이라 핑계 대고 친구들이랑 해외여행 갔다 왔더라구요. 명불허전 ㅈ소야. 그래서 나도 저녁에 여가시간 좀 쓰게 근무시간 1시간 당겨달라 했어 20분이면 끝나는 업문데 언제 시작하고 언제 마치든 뭔 상관이야. 안 그래요?




P 양

또 생각났다. 여기에 직원은 3명뿐이었지만 또 다른 직원은 여직원이었죠. P 양이라고 하죠. P 양은 고졸에 컴퓨터업무라곤 해본 적도 없어요. 미용하다 왔다더라구요. 애는 착했죠. 근데 사수였지만 나에게 가르쳐 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오히려 신입사원인 내가 그녀를 가르쳤죠. 이게 무슨...? P 양은 여사장에겐 불만하나 말하지 못했죠. 내가 근무시간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하는데 동의는 못하고 눈치만 많이 봤어요. 사장이 출장나갔을 때만 그녀는 목소리를 냈었죠. 그리고 근무시간 변경이 적용된 뒤에 누구보다 행복해 했었습니다다. ㅈ소에는 ㅈ소에 만족하는 직원이 있더라구요.


이상한 구조

이런 회사에도 복지가 있었어요. 여사장이 가끔 간식을 사줬다는 거. 소소한 분식이었지만 맛집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게 전에 여사장이 그만둔 회사 사장을 부장으로 놔두고 영업직원으로 쓰더라구요.(심지어 그 부장은 다른 회사가 있음) 구조가 어떻게 된 건지... 참나. 아마 여사장이 영업능력이 안돼서 부장에게 외주를 준 것 같네요.


이 회사는 병원이나 한의원, 식당이라던가 그런 곳을 홍보도 하고 글도 썼었는데, 이런 영세한 ㅈ소에 홍보글을 맡기는 소형 병원 원장이나 가게주인 분들이 안타깝더라구요. 홍보효과가 내가 봤을 땐 0에 수렴하거든. 시키니까 하지만 참 현타가 오더군요. 난 이 일을 하고 나서 바이럴 마케팅을 안 믿어요.


이런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양가 없는 똥글을 블로그에 적은 지 9개월. 회사가 이사를 갔어요. 범어동으로. 기존 회사는 집 근처여서 걸어 다녔는데 회사가 버스로 출퇴근해야 하는 곳으로 가버린 거죠. 아니 109만 원 받는데 교통비까지 지출이 되니까 어휴.. 3개월은 참고 다녔죠.


12개월이 되었어. 어찌어찌 1년을 참아냈죠. 얻은 거라곤 없다. 모은 돈이라곤 없다. 뭘 한 거야 나는?


사표 통지


1년이 돼서 여사장에게 사표를 통보하러 갔죠. 갑자기 놀라면서 "왜 갑자기 그만두려고 해요?"라고 물어보길래 "ㅈ소라서 얻을 게 없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새로운 일을 하보고 싶어서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정당하게 퇴직금을 요구했죠. 그러자 수습 3개월을 제외하면 9개월이라 퇴직금을 못준다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수습도 근로기간에 포함된다고 대판 싸웠죠. 그러더니 일단 알겠다고 나가보라더군요. 노무사한테 알아보려 했나 봐요. 그럼 뭐 해? 내가 근로기준법 달달 꿰고 있는데.


분명히 이번달 말까지 근무하는 걸로 여사장 방에서 이야기. 하고 나왔었는데, 근데 한참 있다가 노무사한테 물어보더니 갑자기 씩씩 거리며 방에서 나오더라구요. 그러면서 이번주 금요일까지만 일하라는 거에요. 그리곤 퇴직금은 내 말대로 주는 게 맞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그렇게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었나 봐요. 명불허전 ㅈ소 아니랄까 봐...


이렇게 나의 첫 직장은 얻은 것 없이 타지에서 고생만 쎄빠지게 하고 끝났습니다. 아니지. 얻은 게 있긴 있네요.


세상에 사람들이 자기네 회사가 ㅈ소기업이라고 늘 말하지만 진짜 ㅈ소기업은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면 몰라. 니들은 돈이라도 많이 받잖아. 안 그래


이 첫 직장 덕에 내 인생은 제법 많이 바뀌었어요.

이보다 더 바닥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인생은 실전이더라구요. 아직 시즌2, 시즌3 등 많은 ㅈ소가 내인생을 거쳐갔거든요.


옛말에 틀린 말 하나 없네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브런치북 발행으로 기존 글이 1월 27 개정 발행되었습니다. 브런치북에서 ㅈ소기업이야기를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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