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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Jan 20. 2023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하다(상)

내 인생의 ㅈ소체험기 08

패배한 인생

어디 써먹기도 애매한 수산학 전공(물고기).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했다가 단순반복 업무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아 도망친 3주짜리 자동차 생산직 경험

1년 동안 배운 것 하나 없이 월 107만 원에 헛되이 인생을 낭비한 마케팅 첫 직장.

많은 인간관계가 돈에 얽히고섥혔던 조선소 물량팀.

(+취업사기)

인성파탄자 사장 밑에서 자존감을 잃어가고, 야근에 지쳐가던 기획사.


이것저것 찔러보다 이룬 것 하나 없던 시절. 그것이 2015년 10월 경, 제로스펙에서 발전한 ㅈ소기업 스펙만 갖춘 나였다.(인생 참)

도대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지루한 생산라인 서는 일은 도저히 못하겠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는 사무직도 못하겠고, 돈안주는 야근은 때려 죽어도 싫다. 차라리 일 한 만큼 돈 주는 데가 그나마 가장 괜찮은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집 근처 H중공업 기술교육원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보곤, '기술이나 배워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기술교육원 입교

무엇보다 놀랐다. 아무나 받아주는 줄 알았다. 기술을 배운다는 것을 쉽게만 생각했다. 아니었다. ㅈ소기업에 제출하는 이력서보다 긴 양식과, 빈칸을 채워야만 하는 자기소개서 질문들.

[1분 자기소개]

[본인의 장/단점을 어필하시오]

[10년 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요즘 공기업/대기업에서 흔히들 물어보는 서류전형 질문이었다. 그런데 ㅈ소기업만 다녀본 내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해봤어야지. 샘플도 없고, 인터넷을 찾아도 정보도 없는 데다, 나이에 비해 어필할만한 경력도 없다. (쓰레기 같은 ㅈ소기업 경력만 가득하니까!!!! 젠장!!!)

'기술 한번 배워보는 것조차 이렇게 어렵다니, 나같이 무능한 놈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일주일 동안 몇 번의 수정을 거쳐서 어찌어찌 서류통과하였고, 이후 면접날 되었다. 정장을 갖춰 입고, 번호표라는 것을 받아 들고 처음으로 겪어본 다대다의 면접.

엄숙한 분위기에 날카로운 인상의 면접관 세명. 떨리는 마음으로, 교육원에 입교하고자 하는 이유를 말했다. [일한만큼 정당하게 급여를 받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면접이기에 못 했고, "아버지처럼 배관을 다루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며, 잠시나마 겪었던 물량팀에서의 경험을 포장해 어필했다. 숨 막히는 다대다의 면접이 끝나고, 결과가 발표되는 날까지, 잠 못 이룬 기억이 난다.

서류와 면접을 뚫고, 입교하고 보니, 나도 보통이 아닌 이상한 경력 투성이었지만, 다른 수강생들의 스토리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나 같은 ㅈ소기업 라이프만 겪어본 사람은 없는 듯했다. 고등학생부터, 누구나 들어본 제약회사를 다니다 퇴사한 영업사원은 물론, 토익 800점에 공무원 시험을 여러 번 실패해서 들어온 어학연수 경력을 갖춘 공시생까지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건, 다음화에서 이야기하겠다.





ㅈ소기업에는 제대로 된 서류/면접이 없어요

그간 다녔던 기업들은 달랐다. 왜냐고? 진정한 ㅈ소기업이었으니까. 내가 갔던 기업들은 이랬다.

서류? 그런 거 없다. 흔히 시중에 파는 이력서보다는 조금은 , 사람인에서 주어지는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기재한 이력서를 받는다. 그리고 주제하나 없는 자기소개서. "저는 화목하신 부모님 아래서 어쩌고 저쩌고..." 정도는 탈락이겠지만,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고, 어느 대학을 졸업했으며, 학점은 몇 점, 전공은 무엇." 정도만 어필해 주면 패스. 그리고 깔끔한 사진. 그러면 이력서 제출이 끝이 난다.


다만, 인사담당자들이 그들의 이력서를 읽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서 문제.(잔뜩 쌓아놓고 지들 심심할 때 열어본다. 이것이 ㅈ소다.)

만약 그들이 이력서를 뒤적이다, '이 녀석 제법 성실해 보이니 부려먹을 수 있겠는걸?'이라고 생각하면, 면접에 호출한다.

어디 살아요? 집은 근처에 있고?

이 쪽 일은 해봤고? 오 대학 다닐 때 뭐 많이 했네, 비슷한 일이니까 금방 배우겠지

우리는 월급을 이만큼 줘요, 수습 때는 90%(혹은 70%). 그리고 4대 보험은 정직원 된 다음부터

부모님은 안녕하시고? 직업은 무엇이신데요?

운전할 줄 알아요?

아마도 면접 스터디를 해보거나,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제대로 된 기업을 준비한 취준생이라면, 런 말 같지 않은 질문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라 본다. 중견기업 아니, 중소기업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서류/필기/면접 전형 등을 갖추고 있으니 만약 이런 질문 등을 하는 기업이 있다면 단연코 피해라. ㅈ소.

제대로 된 기업은 부모님 직업, 집위치 같은 건 묻지 않는다. 하지만 ㅈ소기업에겐, 그런 예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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