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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타르트 Mar 21. 2024

다음 진료일은 없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시시콜콜한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를 나눠 줄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

5년 전 나의 생일에 남편의 시한부 선고를 들었다.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치료는 없습니다. 호스피스에서 남은 시간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입니다. 다음 진료일은 없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참을 진료실에서 말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다음분 진료를 위해 쫓겨나듯 나왔다. 누구도 내 눈물을 내 어깨를 토닥여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병원 측에서 안내해 준 호스피스 병동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이미 진료를 받고 있던 대학병원의 호스피스는 지방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용할 수 없었고 지역 내 호스피스 병동은 진료를 먼저 받고 있는 환자가 우선이기 때문에 호스피스 만으로는 사용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안내를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의문이 더해지고 있었으나 이미 폭풍처럼 몰려오는 감성의 소용돌이 속에 나는 현실을 마주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고는 그 상담사분이 말씀하셨다. 아직 너무 젊은데 어쩌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 라며 내 손을 잡아 주시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 있게 기다려 주셨다.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져요. 하루하루 남들처럼 잘 살아낸다는 기대는 하지 말고 그냥 견디다 보면 시간이 지나 오늘은 웃는 날이 되기도 하고 내일은 울어도 또 그다음 날은 웃게 될 거예요."

또 마음이 삐뚤어진 나는 마음으로 왜 우리는 남들처럼 잘 살면 안 되는 건가?라는 반문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내려오는 기차에서 혼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뭔가 이젠 정말 조금의 희망도 우리에겐 없는 것만 같아서. 이런 절망을 내가 우리가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물음표에 어떤 해답도 없이 그해 나의 생일은 지나갔다.


그 후 열흘이 지나고 남편은 홀연히 하늘로 떠났다. 요양병원에서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도 믿을 수 없었다. 아닌데, 병원에서는 마지막으로 한 말은 3개월이었는데... 

어쩌면 남편은 그 3개월의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나 보다. 본인보다 항상 남들을 먼저 배려했던 사람이라 가족들이 힘들까 봐 더 견디지 않고 손을 놓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마음은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그렇게 떠나버린 남편을 세 살 딸아이와 나는 붙잡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5년 동안 나는 마음이 힘들 때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3개월 정도는 나도 데려가 달라.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다. 왜 나만 두고 가버렸냐. 살기 싫다 등의 원망으로 가득한 내용과 너무도 빨리 떠난 남편의 안쓰러움이 가득한 내용뿐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냐? 아무 일도 없었냐? 점심은 뭐 먹었냐? 아침에 늦게 일어나진 않았냐? 매장에 이상한 손님은 없었냐? 등등 나의 소소한 하루 일상을 물어주고 시시콜콜한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를 나눠 줄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너도나도 너는 불쌍한 사람이지..라는 눈빛 가득한 눈길을 줄 때면 정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은 나 혼자만이 견뎌내야 하는 순간들이다. 33살에 남편을 보낸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떠나보낸 그 마음이 사라지기도 전에 새로운 남자 만나서 네 인생 살면 된다.라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결국 단단한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마주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 뿐이라고 생각했다. 


수없이 많은 원망의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나는 나를 응원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떠난 자리를 대신해서 나는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행복하길 응원한다. 결국 우리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을 쌓아가고 있고 조금 더 빨리 혹은 조금 더 늦게 도달할 뿐이다. 나의 열심과 상관없이 마주한 좌절의 순간들을 겪으며 인생의 급변함을 몸소 느끼게 된 지금, 내일 당장 죽음을 맞이해도 후회 없을 만큼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행복의 순위에서 벗어나 나만이 느끼는 행복을 찾아 오늘 하루도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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