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항상 당신의 몫
예전에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한국인 교수님의 발표를 들은 적 있다. 그때 그 교수님께서 대학원생이라면 아무도 관심 없는 주제를 연구하는 게 좋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일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대학원생은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너무 새로운 분야에 가면 본인의 연구를 정리하는 단계에서 이미 다른 이들이 논문을 써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일단 남들이 관심 없는 분야를 연구하면서 연구를 손에 익히는 게 좋을 수 있다. 아주 딱 맞는 사례는 아닌 것 같지만, 하이젠베르크라는 물리학자는 박사 학위에서 난류를 다뤘고, 이후 양자역학에 뛰어들어 초창기 양자역학에 크게 기여했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대학원생 때 잘 나가는 분야에 바로 뛰어드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인공 지능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처음 몇 년 동안은 인공 지능을 남들보다 조금만 더 알면 취업이 잘 되었다. 초창기에 인공지능 연구실에 뛰어들었다면, 아마도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해외 기업에 취업하기 매우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야는 몇 년 지나면 구직자들이 많아지면서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구직하기 어려워진다.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하다 보니, 블루 오션이 금방 레드 오션으로 바뀌는 것이다. 어찌 보면 항상 쓸 수 있는 전략은 아니다.
성공적으로 학위를 마치고 박사 후 연구원이 되거나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면 대체로 연구 분야를 바꾸게 된다. 지도교수님과 너무 같은 연구 분야에 있으면 지도교수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사 후 연구원이 되면서 연구 도구를 바꿀 수 있고, 혹은 연구 대상을 바꿀 수 있다. 연구 대상을 바꾸는 것이 대체로 더 안전한 선택이다. 도구가 손에 익었을 것이므로 문제의식만 명확하다면 단기간에 데이터 뽑고 논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요리 경험이 많으면 새로운 요리를 레시피 보고 금방 따라 할 수 있는 것과 같달까? 이때는 가급적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분야에서 연구하는 것이 좋다. 어느 분야든 새로 떠오르는 시기라면, 남들이 아직 연구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도 논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 나오기도 쉽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직장 잡기도 쉬울 것이다.
새로운 도구를 배우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정말로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를 발견했다면,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그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지만, 앞으로 중요할 것 같다면 더더욱 그렇다. 필자의 지인도 박사 후 연구원 때 대학원 때 하지 않았던 도구를 배웠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임용된 바 있다. 물론 새로운 도구를 잘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만한 실적은 필수적이다. 쉽지는 않지만, 분야마다 인정받은 저널이나 누구나 아는 저널에 논문을 싣는 것을 목표로 하자.
회사 연구원으로 취직했다면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자기 장기를 살린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살려 하나씩 적응해서 나가면 될 것이다. 실적만 잊지 않고 챙겨둔다면, 회사 다니다가 연구소나 대학으로 나오는 것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