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임기 4년 간 트럼프는 미-중 관계를 본질적으로 바꿔놨다. 모두가 허풍일 거라고 생각했던 중국 때리기를 진짜로 실행에 옮겼고, 이후 두나라의 관계는 물론 세계가 돌아가는 메커니즘 자체가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현지에서 트럼프의 인기는 상당하다. 일각에선 단순한 애증을 넘어선 팬 베이스도 눈에 띈다. 트럼프 관련 기념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미국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도 ‘바이든’, ‘해리스’보단 ‘트럼프’에 호의적인 게 압도적으로 많다. 대체 왜?
14억 중국인들의 마음이 하나 같진 않겠으나, 중국인들의 ‘애증’ 저변에 깔린 심리를 추측해 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1] 트럼프가 ‘미국을 망칠 것’이라는 기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중국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트럼프 1기 때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훼손된 틈을 파고들어 글로벌 위상을 크게 키운 바 있다. 트럼프의 귀환이 미국의 대중 포위망이 깨지는, 나아가 중국이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친환경에 소극적이 될 미국을 대신해 중국의 산업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2] ‘냉전’이 ‘열전’이 되진 않을 것이란 믿음
누가 대통령이 되건 미-중 경쟁이 필연이라면 차라리 트럼프가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외교가 아닌 거래를 한다. 반드시 대만을 지키겠다는 민주당과 달리 트럼프는 타산이 나오지 않는 전쟁에 개입하는 걸 꺼린다.
[3]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미국을 바라보는 쾌감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 1등’이며 ‘현대 문명의 수호자’라는 통념을 거부한다. 과거의 미 대통령들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들어 ‘게르만족’을 내려다보는 ‘로마황제’처럼 군 반면, 트럼프는 중국을 동격의 강력한 경쟁자로 대한다. 최근 한 인터뷰에선 중국의 첨단 인프라를 소개하며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개발도상국’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4] 강한 리더에 대한 호감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강한 리더’를 선호하는 전통이 있다. 거침없는 발언들과 암살 시도를 겪고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모습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중국에게 결코 호의적이었다고 하기 어려운 ‘스탈린’도 막상 현지에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5] 국경을 초월한 공감대
중국 네티즌이 다수인 한 인터넷 게시판을 돌아다니다 본 한 인기글이 내 이목을 사로잡은 적이 있다.
“… 중국이 직선제 국가가 됐다고 치자, (1) 일본과 한국에 공격적인 관세를 때리고 (2) 이슬람 종교를 강력히 탄압하고 (3) 광저우에 흘러 들어온 아프리카 난민들을 모조리 추방하고 (4) 소수민족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일체의 혜택을 철폐하고 (5) 중국의 어선들이 ‘자유롭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군력으로 보호하겠다고 약속하는 후보가 있다고 치자. 아마도 낙승할 게 분명하다. 첩이 몇 명이 있건, 그동안 뇌물을 얼마나 받아먹었건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좋건 싫건 트럼프는 지금의 시대정신이 내재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자기가 보고 싶은 데로 트럼프를 해석한 단편적인 해석일 뿐이다.
트럼프는 고립주의를 펼치면서도 군비 증강과 Quad 창설을 단행했고, 효율적 정부를 외치면서도 막상 취임한 뒤에는 대대적인 부양책을 펼쳤다. 반면 사람들이 허풍이라고 여겼던 기후변화 협약 탈퇴와 무역전쟁은 진짜로 이행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재임기간 4년 동안 그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저질러 버리는 면모와 ‘말’은 전략적으로 쌔게 해도 막상 ‘행동’은 다른 합리적인 면모를 둘 다 보여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평가는 종말론적 시나리오와 지나친 낙관론만 있고 그 중간은 없는 듯하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데로 세상을 본다’는 카이사르의 말은 과연 진리다. 4년 전 트럼프의 시대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귀환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중국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