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최후의 승리자, 에도 막부의 창립자이자 근대 일본의 아버지. 일본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바로 그 인물,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하지만 그도 초라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동맹 (사실상 부하) 였던 시절 그의 영지는 50만 석 내외에 불과했다. 노부나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기민하게 대응해 100만 석 상당으로 세력을 키웠지만 그 위상은 여전히 ‘조연’에 불과했다. 노부나가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툰 히데요시에게 비록 선전하긴 했지만 3:1 수준의 세력비로 열세였다.
- 당시 일본의 전 영토는 1,800만 석에 달했으며, 100만 석은 넘어야 메이저 군벌이라고 할 자격이 있었다. 죽기 직전 오다 노부나가의 영지는 약 600만 석이었다. -
결국 이에야스는 치욕을 참고 히데요시에게 굽히기로 한다. 하지만 이에야스의 만만치 않음을 꿰뚫어 본 히데요시는 그에게 전봉, 즉 영지를 옮길 것을 제안한다. 이에야스는 일본의 중심지인 시즈오카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풍요로운 땅이었고, 선조들이 대대로 다스려온 곳이기 때문에 충성심도 높았다. 이런 오랜 터전을 버리고 먼 동쪽, 제대로 개발도 되지 않은 불모지로 가라는 것은 노골적인 도발이었다.
겉으론 막 평정된 관동 땅을 안정시키는 중책을 맡긴다는 명분이었지만 속내는 뻔했다. 이에야스가 반발하면 핑계 삼아 멸망시킬 심산이었고, 정말 전봉에 응하면 그 과정에서 고향을 떠나길 거부하는 부하들의 이탈로 세력이 약화되길 노렸던 것이다. (당시는 농경사회, 고향을 떠난다는 건 사실상 기존의 삶을 송두리째 내려놓는 것을 의미했다) 관동 땅의 원주민들이 옛 주인이었던 호죠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던 것도 계산 속에 있었다. 원주민들의 반란으로 이에야스의 세력이 소모될 것이라고 보았던 것.
분노한 부하들은 다들 사생결단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감정을 누르고 위기 속에서 기회를 봤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에야스는 동쪽의 불모지에서 완성되었다. 바로 이곳, 관동 땅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도쿄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 히데요시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불모지였기 때문에 백지에 새 그림을 그리듯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도 ‘관동 땅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파병을 면했다.
이에야스는 원주민들을 보듬어 안으며 관동 땅을 차근차근 개발했고, 기존에 다스렸던 영지에도 연락을 유지하며 저변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반면 승리의 영광에 취한 히데요시는 실책을 거듭하며 인망을 잃었다. 애초에 히데요시는 여전히 만만치 않은 강적들과 여러 난제가 쌓여 있는데 무리하게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이었다. 그 결과 자기를 지지해 준 제후들에게 많은 몫을 양보해야 했고, 복잡한 국내 사정 속에 치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최악의 자충수를 두기에 이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둠 속으로 숨은 이에야스는 강해졌고 빛에 취해 무대 앞으로 튀어나온 히데요시는 약해졌다. 히데요시가 죽기 직전, 이에야스의 영지는 250만 석에 달해 히데요시의 직할 영지(220만 석) 보다도 컸다. 게다가 옛 영토에서도 고스란히 영향력을 유지했던 만큼 실질적인 세력은 그 이상이었다. 히데요시의 정치에 불만을 품었던 영주들도 속속 이에야스에게 몰려들었다. 히데요시는 꺼져가는 생명을 쥐어짜며 이에야스에게 자기 자식을 부탁한다고 갈구하는 신세가 됐다.
아, 물론 이에야스는 전략적 인내를 구사한 것일 뿐 성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망’은 훌륭한 작품이지만 이에야스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점에선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복수의 때가 오자 이에야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히데요시의 집안과 측근들의 씨를 말려버렸다. 죽은 히데요시의 무덤까지 파괴해 버릴 만큼 그의 복수는 철저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던가? 소인배와 달리 군자는 당장의 치욕을 참고 실력을 갈고닦으며 반격의 때를 기다린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마음을 가다듬고 냉철하게 스스로를 되돌아봐라. 어쩌면 지금의 그 어려움이 더 큰 성공을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늘은 크게 쓸 사람에게 먼저 시련을 준다고 했다. 성경과 유교 경전에서 공통되게 나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