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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원 Nov 14. 2024

2.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0. '이방인'의 마지막 외침

<이방인>의 주제는 주인공인 뫼르소를 통해 전달된다. 1부에서 보이는 그의 행동과 생각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1부와 2부를 나누는 큰 사건의 발단인 '햇빛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에 사람에게 총을 쏘고 말았다'는 부분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2부의 재판에서 그는 한 명의 사람을 살해한 것을 넘어 인간성을 상실한 범죄자가 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삶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뫼르소가 신부에게 하는 마지막 외침엔 삶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담겨있다.



1. 우리는 진정 '살아 있는 사람'인가?

“당신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으니 마치 죽은 사람 같으며, 삶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없는 것과 같다. 당신 눈에는 내가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나 자신과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것은 당신보다 강하다.”     


뫼르소가 말하는 '살아 있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삶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있는 사람', '나 자신과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는 삶을 오로지 자기 자신을 통해서만 인식한다. 하지만 등장인물 중 신부, 판사, 검사 등은 그에게 종교적 사상을 강요한다.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가지고 있는가? 다른 누군가의 삶과 다를 게 없지는 않은가? 물론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른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삶에 관한 자신만의 인식과 그에 대한 확신은 있어야 한다고 뫼르소는 말한다.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이다.


보편적인 가치관은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지만 결국 서로가 다 다른 개인이다. 뫼르소는 시대의 흐름에 무조건 적으로 따르는 행위는 ‘죽은 사람’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 종교적 믿음 같은 것에 휘둘리지 말고 개개인으로써의 삶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2.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숙명'

“낯 모르는 사람의 죽음, 또 어머니의 사랑 따위가 어째서 중요하단 말인가. 오로지 하나의 숙명만이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다. 나 자신과 또한 당신처럼 형제로서의 특권을 떠들어대는 숱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바로 숙명이다. 누구에게나 다 그런 특권은 있다. 이 세상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어떤 일반적인 가치들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치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믿는 것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가? 옳은 가치만이 존재할 뿐이며, 다수가 믿는 가치를 자신의 가치라 생각할 뿐이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 공감하고 슬퍼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느낀다. 종교를 믿기도 하고, 다른 위안을 찾기도 한다. 뫼르소는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 불변하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특권을 가진 모든 사람은 결국 죽는다. 뫼르소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숙명인 죽음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세상의 어떠한 관념, 사상 등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고 있다고 말한다.  죽음이 현실의 모든 가치를 평등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에게 신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오직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만이 의미 있는 일인 것이다.


3. '삶 그 자체에 대한 의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늘그막에 왜 ‘약혼자’를 두고 삶을 다시 꾸리려는 장난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생명이 사그라져가는 그 양로원 언저리에 찾아드는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죽음에 가까이 이르러서도 어머니는 해방된 느낌으로 이 세상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을 가졌음이 틀림없다. 그런 어머니가 죽은 것을 슬퍼할 권리는 내게 없다. 심한 분노가 괴로움을 씻어주고 새 희망을 안겨 준 것처럼 나도 삶을 다시 꾸며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는 다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그에게 이번 삶은 죽음이 결정된 삶이다. 어머니가 떠오른 것은 그의 상황과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삶을 다시 살고자 했다. 이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가 아니다. 운명, 숙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삶 그 자체에 대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뫼르소는 슬퍼할 권리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가득한 이 세상에 진정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것은 그녀뿐이었다. 그는 이것을 깨닫고 자신도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4.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세상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며 이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이 처음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이 세상이 나와 다름없는 형제 같았으니, 나는 그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성취되고 내가 사형 집행을 받게 되어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에 찬 아우성으로 날 맞아주기를 바라는, 내게 남은 그 소원이 이루어질 때, 나는 비로소 외롭지 않으리라.”     


뫼르소는 왜 '이방인'인가? 재판에서 그의 사형선고는 살인죄보다는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던 죄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세상의 보편적인 가치와 믿음에 부정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 '이방인'이 되고자 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얘기했다. 그를 부정하는 세상의 모든 것은 그의 선택과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뫼르소의 진정한 삶을 이끌어낸 것은 사형선고, 확정된 죽음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소원은 확정된 죽음, 사형 집행인 것이다. 세상은 소원을 이루어줄 장치일 뿐이다. 세상은 그의 삶과 죽음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 자신이다. 자신만이 삶에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외부의, 세상의 무엇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방인>은 어려운 책이다. 삶의 본질은 우리에게 쉽게 와닿는 것이 아니다. 보고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치들과는 다르게 형체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질문하는 자세뫼르소처럼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가 '이방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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