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1. 죽기 전에 믿으면 안 돼?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라는 말이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인가, 소망의 대상인가, 아니면 사랑의 대상인가? 내가 신학을 한 건 아니지만, 내 생각으로는 OR가 아닌 AND, 즉 모두의 대상이라고 여겨질 것 같다.
그러면, 그렇게 학문적인 거 말고 내 자신에게 하나님은 어떤 대상일까?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죽기 전에 하나님 믿고 천국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부끄러운 구원이든 뭐든 구원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 생각을 했을 당시에는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을 제외한 체, 믿음과 소망의 대상으로만 한정했던 거다. 즉, 과거에 있었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약속에 대한 믿음과 그 약속이 미래에 이루어질 것에 대한 소망은 있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말 그대로 지금 당장에 대한 부분은 제외하고 생각했던 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2.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유치부 예배 때 음향을 보다보니 어떤 예배보다 유치부 예배를 집중해서 드리게 된다. 작은 소리 하나도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선생님들과 전도사님들의 말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요즘 성경학교 주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열심히 듣다 보니 아브라함에 대해서 더 묵상해 보게 되었는데,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아브라함은 구약 시대 사람이라는 거. 그러면 신약 시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주는 약속 대신 아브라함에 주는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약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부모로서 느끼는 아픔에 더해 하나님에 대해서 가졌던 믿음이 깨어지는 고통을 느꼈을 거다.
3. 핑계를 찾을래, 방법을 찾을래
내가 직원들을 평가하는 기준 중에 하나다.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방법을 찾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핑계를 찾는다. 사람 마음 속은 내가 알기 어렵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어느 정도 파악은 가능하다.
아브라함은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자기에게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그 결과 자기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을 제시하시면서 아브라함과 한 약속을 지키셨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한단계 더 높이셨다. 믿음을 넘어선 사랑의 차원으로.
4. 여전히 믿음의 대상인가? 아니면 사랑의 대상인가?
내가 좋아했던 사람에게 고백을 하고 그 고백이 받아들여졌을 때, 그냥 가슴이 꽉 차는 느낌이고, 그 사람을 위해서 막 더 해주고 싶고,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게 즐겁고 그러지 않나.
그동안 하나님께서 나에게 참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하셨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에서 머물기보다는 사랑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신과 피조물의 관계에서 벗어나 진짜 좋아도 보고, 속도 쓰려 보고 이렇게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길 원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나누지는 않았지만(혹여나 실족하는 사람이 생길까봐) 내 입에는 늘 달고 살았던 "내가 믿지만 다는 안 믿습니다." 라는 고백에서 "아시죠. 그냥 제가 사랑합니다." 라는 고백으로 점차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에게 좋은 일들만 생겼다면 이런 변화는 죽어도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아마 더욱더 굳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남았을 거고, 여전히 자유의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기계인가 아닌가 계획에 따른 건가 아니면 선택에 따른 건가를 고민하고 있었을 거다.
난 이성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성의 영역에서 감성의 영역으로 변모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다음 단계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