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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 Apr 07. 2023

한가하면서 바쁜, 캐나다 가정 주부의 일과

사실은 돈도 번다구요!


며칠 전부터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연애하며 느꼈던 대사들이 그렇게 인상 깊게 들리더니.. 이번엔 다시 보며 가장 크게 와닿은 말은.. 여주 엄마가 했던 말. "네가 아직 살림을 안 해봐서 모르는데 바쁜데 심심해." 우와. 어찌 이런 나에게 딱 맞는 대사가~~!!! 내가 요즘 딱 그렇다. 이상하게 바쁘고 한가한데 그러면서 심심도 한 그런 상태... 그런데 또 바쁜.. 브런치에 글을 쓸 여유조차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중이다.




캐나다에서의 가정 주부인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 딸은 자기가 학교에 가면 엄마가 뭘 하고 지내는지 엄청 궁금한가 보다. 꼭 한 번씩 엄마는 뭐 했어?를 물어본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청소하고 빨래하고 집정리하고 넷플릭스도 보고 책도 읽지.. '

그런데 이렇게 답하면 나는 진짜 한가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실상은 진짜 바쁘다. 다른 가족들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세 명의 도시락을 싸고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나 외 3인이 나가고 나면 집안일하고..


주 2회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저가 혹은 무료의 ESL 수업에 간다. 가서 영어도 배우고 사람도 사귀고 일주일에 한 번은 수업 끝나고 마음 맞는 분들과 티타임도 갖고..

지난 크리스마스. 어김없이 집에서 밥 먹기

그리고 2~3일에 한번 꼴로 꼭 하는 건 장보기. 여기에 와서 경제적으로 아끼기도 해야 하고 입맛에 맞는 음식도 그리 많지는 않아서 거의 집에서 밥을 해 먹는데, 그러다 보니 식재료들이 늘 집에 차 있어야 한다. 대부분 신선 재료들이다 보니 냉장고에 오래 있지 않도록 장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게 생각보다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 여기는 그로서리 마켓마다 사야 할 재료들이 다를 때가 많아 두세 군데의 마트를 돌아다니며 장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계속 운전..ㅜ.ㅜ) 하루에 두세 군데 돌아다니면 체력이 방전.. 그래서 요즘은 가능하면 한 번에 많이 사서 냉동을 하려 하는데 사실 나는 음식을 냉동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장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가족의 생일이라던가 크리스마스, 명절 등 챙겨야 할 날이 오면 음식도 준비한다. 외식을 잘 안 하게 되니 이런 날 집에서라도 잘 먹이자 싶어 특별 음식을 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이런 날도 많다는 것. 어제도 결혼기념일이라고 불고기에 잡채, 전까지 하니 낮부터 준비를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반찬 한두 가지 조차 살 곳이 없으니 세끼를 모두 내 손으로 만들어야 하고 음식 준비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길어졌다. 아무래도 여기 살면서 시간적으로 가장 많이 늘어난 집안일이 요리가 아닐까 싶다. 정말 캐나다 살이를 하게 되면 거의 모든 엄마들은 요리사가 될 듯.


그리고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부터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한국 회사에서 일을 받아서 포토샵으로 사진을 보정하고 정리하는 일을 한다. 여기에 살면서 수입이 없다 보니 서빙 같은 간단한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나마 내가 여기에서 일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긴 하다. 우리 가계에 큰 도움은 안되지만 내 용돈벌이 정도는 하고 있으니 그냥 마음적으로 위안이 되는 직업이다.


여기에 와서 김치도 처음으로 담가보았다

아이들 하교시간이 되면 버스 내리는 곳으로 데리러도 가야 한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사교육을 위해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고.. 여기는 학원 셔틀이 없고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없는 거리이기 때문에 직업 운전해서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야 한다. 아이가 둘이다 보니 번갈아 가며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오후 시간은 그냥 지나간다.


저녁은 밥하고 설거지하고 아이들 숙제 봐주고 하면 시간이 스르르 사라지는 기분. 한국에서도 가정주부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그곳에서는 반찬 가게도 있고 외식에 배달도 되니 음식 걱정은 이만큼은 안 했던 것 같고 아이들 학원도 셔틀이 있으니 내가 내내 매달려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께서 육아도 한 번씩 도와주시고 김치와 반찬도 해주시니 나의 역할이 지금보다는 적었었다. 게다가 여기서는 언어도 부족하니 밖에서 해결하는 것도 시간이 더 걸리는 기분. 영어 공부까지 해야 하고..




쓰고 나니 바쁘게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여기에서 엄마의 역할이 더 커진 것 같아 나름 바쁘고 이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엄마의 손길이 점차 덜 필요한 순간이 오겠지만 그때까지는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그래야 심적으로 덜 힘들 것도 같고.


어찌 되었든 이곳에서의 가정 주부는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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