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과 동경, 그 어느 사이의 마음
응원하는 마음에 대한 글을 쓰려했다. 언제나처럼 부제에 뜻을 적고자 사전을 뒤적였다. 응원의 뜻, '운동 경기 따위에서, 선수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둘째는 '곁에서 성원함. 또는 호응하여 도와줌'이었다. 이내 응원이라는 단어를 한참 잘못 사용했던 지난날이 떠다녔다. 친구에게 "너의 도전을 응원해!" 했던 말은, 친구의 새로운 나날에 소리 질러 격려하거나 돕는다는 뜻이었다. 절대 그렇게 쓰려는 말이 아니었음을. 그저 바라보고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정적인 의견을 표하고 싶었으나, 응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역동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단적인 예지만, 내가 마음을 표하는 방법은 항상 이런 식이다. 굉장히 정적이다. 내 안에서 단어를 고르고 골라, 입 앞까지 가져온 다음, 한참을 머금다가 용기 내어 내뱉는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마르고 닳도록 아끼는 카페가, 대표님만의 신념이 있는 그 카페가 2년이라는 시간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동안 그의 색을 기꺼이 즐겨온 나는, 이번에는 기필코 마음을 전하겠다 다짐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 어떤 말을 전할지부터 시작해서, 2주년 기념 원두도 사야지, 선물도 준비해야지. 혼자 들떴다. 정작, 전하고 싶었던 모든 말은 "10주년까지 해주세요."라는 장난스러운 말로 퉁쳤고. 자리를 뜨기 전 후다닥 게 눈 감추듯 선물을 전하고 도망쳐 나왔다. 내 응원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이걸 응원이라 말하는 게 맞을까.
마음을 담아 전한 선물은 책이다. 사전 예약해 둔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운명처럼 책 한 권을 발견한다.
"이거다!"
어떤 선물을 준비할까. 2주년을 맞이했다는 인스타그램 공지글을 보고도 당장에 찾아갈 수 없게 했던 그 고민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어찌나 고민했던지, 선물이 손에 들리니 코엑스에서 1시간 거리의 카페를 불현듯 방문하기로 한다. 한참 묵혔던 체증이 내려간 것이다. 이내 주변이 선명했다. 마침, 도서전 현장이었던 게 행운이었다. 먼저는 고민해결소나 다름없는 워크룸 부스가 보였다. 그리고 이내 출판사로 묶여 나열된 책들이 보였다. 생소한 환경이었다. 항상 책을 구매하는 교보문고는 책을 주제별로 분류해 둔다. 나름 큐레이션도 한다지만 그 또한 한 꼭지의 테마로 구성된다. 온라인 서점의 형편도 마찬가지다. 주제가 개입되지 않는 곳은 '이달의 인기책' 섹션뿐이다. 그게(그 방식이) 익숙한 나에게는 출판사 카테고리가 영 생경했다. 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봐야 하나 막막함이 뒤를 이었다. 도서전에 사람이 많다고 했으니, 먼저 계획을 짤 심산이었다. 이내 요즘 책을 많이 읽었으니, 가서 즐기면 되겠지 생각한 게 화근이다. 굉장한 자만이었던 것을. 그렇게 한 두 바퀴 헤맸다. 고생 끝에 내가 잘 읽었던 책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제야 책을 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익숙한 책, 그리고 옆에 책. 보다 보면 직원이 말을 걸어온다. 책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그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이 책은 어떠냐는 추천까지. 책을 보면서 가장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코 앞으로 느껴졌다.
책을 고를 때면 먼저 무작위 페이지의 내용을 본다. 내용이 눈에 들어오면 작가를 본다. 누가 썼는지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더욱 흥미가 생긴다면 목차와 머리글을 본다. 좋아하는 작가라면, 앞 두 단계를 건너뛰고 목차와 머리글을 보고 고른다. 그러니 출판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잘 보았던 책은 모두 같은 출판사의 책이었다. 구미가 당기는 책이 있는 부스에선 꼭 한두 권, 같은 결의 책이 눈에 들었다. 출판사도 카페와 같았다. 어떤 원고를 출판하여 우리 출판사의 생각을 알릴 것인지, 어떤 메뉴로 나만의 커피 문화를 알릴 것인지. 방법만 다를 뿐 그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음을. 이제야 깨달은 내가 안타깝다. 출판사도 응원(그 비슷한 것)하고 싶어졌다. 그들이 신념을 지켜 출판했던 게 나한테 닿았음을. 기꺼이 즐겼음을 알리고 싶었다. 그 마음에 비해 내가 택할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책을 구매하거나, 한마디를 전하는 것뿐. 그 한마디도 입에 머물다 전하지 못한 게 흠이다.
어쨌거나, 얼렁뚱땅 소심하게 전하고 온 마음에 돌아오는 말이 깊었다. 준 것에 비해 과분했다. 대표님은 2년간 함께 해준 단골이 고맙다고 했다. 찾아갈 때마다 원두 정보하며 신메뉴 하며 아낌없이 내어주던 그가, 이런 선물까지 항상 받기만 한다고 했다. 요즘 주변 단골이 모두 이사를 가버린 터라 새로운 사람들에 낯설고 점점 지쳐갔다고. 그래서 재미를 잃어가던 차에 너무 소중했다고 했다. 출판사 직원에게 대뜸 한 마디씩 전했을 때도 책을 의미 있게 봐주어 고맙다며, 뿌듯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들이 작가가 아니었음에도. 초면인 독자임에도. 물론 그중엔 예의상의 말들이 섞여 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답한 이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응원하는 마음과 답신에 대한 글을 쓰려했다. 뜻을 보고 나니 응원이 맞는지 의문만 남아서 문제긴 했다. 그럼 내가 하루 종일 전하고자 했던 건 과연 무어란 말인가.
지지인가. 그렇다기에는 그들의 의견에 옳고 그름을 따져내지 않았다. 단지 수용했다. 그럼 격려인가. 신념이 만들어지는데 내가 북돋아 준 것이 없으니 그 또한 아니었다. 그럼 성원인가. 이 또한 너무 동적인 단어였다.
그럼 어떤 단어로 표현해 써 내린단 말인가.
존경인가. 받든다기에는, 저들 모르게 곁에서 길을 따른다.
그럼 동경인가. 따르고 공감하지만 꼭 그들과 똑같이 되고 싶은 열망이 없으니 애매하다.
존경보다는 가볍고, 동경보다는 독립적인 거리의 어딘가. 그곳에 내 마음이 있다. 신념을 오랜 기간 지키며 흔들리지 않음에 존경했고, 때로는 격하게 바라던 것을 건네주는 그들을 보며 동경했다. 신념과 행보를 보존하도록 최대한 개입하지 않되, 힘을 보태는 태도 또는 뉘앙스. 정확히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마저도 김소연 작가의 정의를 빌어 겨우겨우 두 단어로 매듭짓는다.
<존경>
존경은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취하고 있는 자세만으로 충분히 표출되기 때문이다. […] 존경은 이미 겸허히 흔들고 있는 백기이며, 적어도 한 수 아래임을 여실히 깨닫고 엎드리는 의식과도 같다.
<동경>
존경과 유사한 형태지만, 존경에는 있는 것들이 부재한다. 존경은 이성적인 이유들을 각주처럼 거느린다면, 동경은 각주가 없다. […] 동경에는 또한, 존경보다는 좀 더 복합적인 욕망이 개입되어 있다.
김소연,『마음사전』
단어로써 내 경험을 전하겠다 하여 단언집. 그렇게 정의해 두고 처음 맞는 시련이다. 전하고픈 경험이 있지만 한 단어로 풀 수 없어 무척 곤란하다. 단언컨대, 이 글의 이야기가 제일 순수한 나만의 방식임은 틀림이 없다. 또 되돌려 받은 마음이 무거워 어딘가 풀어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에 예외로 뜻만 전하는 것에 너른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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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과 동경, 그 어느 사이의 마음.
내 바운더리 사람의 신념을 묵묵히 바라보는 행위.
조용히 나의 방법으로 (어쩌면 그들도 모르게) 따르는 중인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