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아들이 말했을 거야..."

by 연주

2023년 9월 25일


우연히 평택 미군기지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항상 회사일이 바쁜 남편에게 여행 갈 수 있겠니 물었고 남편은 급하게 끝내야 할 일이 있지만 여행 가기 전 마무리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가기로 한 그때부터 우리 둘은 의견이 맞지 않았다. 평소 불안도가 매우 높은 나는 고속도로가 무서워 기차를 타고 가고 싶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남편은 기차타고 가는게 더 힘드니 우리 차를 타고 가자. 서로 자신의 주장만 하다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남편은 더 바빠져 야근까지 하게 됐다.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날마다 밤 11시에 퇴근하는 남편에게 더욱더 운전을 맡길 수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평택 가는 날이 다가와서야 기차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네 명이 같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없었고, 겨우 찾은 자리는 네 명 다 따로 앉아야 하는... 어린아이들이 과연 부모와 떨어져 앉아 2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야근 중인 남편이 나에게 전화해 말했다.

"여행 취소하자. 너무 바빠서 안 되겠어. 주말에도 일해야 할 것 같아."

여행 가기만을 기대한 애들에게 미안했지만, 어차피 기차표를 구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을 권유한 동생은 이러다가 저러다가 왔다 갔다 한 나의 선택을 기다려 주면서 결국 가지 않겠다 선언한 나에게 매형 없이 누나 혼자라도 애들 데리고 기차 타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귀가 얇은 나는 또다시 기차표를 알아봤지만, 겨우 찾은 세 자리 역시 애들과 같이 앉을 수 없고 출발 시간도 늦은 오후고... 또 한 번 더 동생에게 안타깝지만 다음 기회에 가겠다 했다.


시간이 흘러 여행 가기로 했었던 날 바로 전날...

남편은 야근 후 밤 11시에 집에 오자마자 갑자기 말을 바꿨다.

"여행 가자. 우리 차를 가지고 가고 여행 갔다 와서 바로 사무실 들어가면 돼."

"갑자기 왜 그래. 안 간다 했잖아. 그리고 기차 아니면 안 갈 거야. 이제 기차표는 아에 못구해."

"무슨 걱정이 이리 많아. 우리 차로 얼른 갔다 오면 되지."

"자기 회사일 바쁜데 무슨 소리야. 그러다 쓰러져. 이런 상황에서 세 시간 운전은 힘들어. 피곤한 당신한테 운전 못 맡겨."

"워매~ 괜찮다니까! 나 컨디션 괜찮아!"

"동생에게도 이미 안 간다 말했어. 이제 고민 그만하자. 이 대화 끝! 그만 말해!" 했지만...

남편은 조용히 한마디 더 했다.

"아들이... 반 애들한테 말했을 것 같아. 평택 미군기지 간다고... 자랑했을 것 같더라고..."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문제였다. 남편과 내가 여행 가는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기차표 구한다고 아등바등하고 있을 때 우리 애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 옆에 앉아 있던 아들에게 물었다.

"너 반 아이들한테 미군기지 간다고 말했어?"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는 아들이다.

"어... 말했어... 근데 평택만 말했어. 선생님 뒤에 큰 지도 있는데 평택이 어딨는지 찾아봤어."

"사실대로 말해봐. 평택만 말했어 미군기지도 말했어?"

"평택만..."

"정말로? 솔직하게 말해야 돼."

"미군기지도 말했어..."

남편은 아들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고민하지 않고 단호하게 결정할 때임을,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이제 곧 12시야! 얼른 자! 내일 아빠차 타고 평택 가야 하니까!"라고 말하며 동생에게 가겠다고 카톡을 보냈다. 남편과 애들을 방으로 떠민 나는 서둘러 여행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날 뻔했다.

거의 평택에 가까워질 무렵, 우리는 고속도로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무슨일인지 갑자기 앞 차가 브레이크를 밟아 멈춰 섰고, 당황한 남편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우리의 투싼은 앞으로 미끄러졌다. 이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투싼을 믿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약! 비명을 지르고 딸은 으어헝! 울부짖고, 아들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고...

천만다행으로 투싼은 앞차와 부딪치지 않고 1센티미터 정도의 좁은 간격을 두고 멈췄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 안심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다. 한 차가 빠르게 우리 투싼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경적을 빵! 크게 울렸다.

"뒤에 차가 오고 있어!!!!!"

내가 소리 지른 순간, 앞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편도 얼른 차를 출발시켰다.

살았다...


이전 19화그땐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