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 보자.
아침이다.
냄비 안의 국을 확인하고 가스불을 켠다. 바로 전기 밥솥을 열어 주걱을 이용해 대접에 밥을 푸고 그새 살짝 데워진 국을 밥 위에 끼얹는다. 식탁 위에 아이들 식사를 시크하게 올려 놓자마자 밥 먹어라 아이들을 부른다. 그리고 아이들 옷을 손에 잡히는 대로 주섬주섬 챙겨 거실 바닥에 놓는다.
아이들은 아빠와 어린이집을 가기 위해 밥을 급하게 먹고 옷도 급하게 입는다. 그리고 어린이집 갈 준비 마무리로 양치질을 하고 신나게 아빠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선다.
다들 나가고 아무도 없는 거실에 내가 멍하니 서 있다. 내 주위는 조용하다. 내 옆, 내 앞, 내 뒤 구석구석 아이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깔려있다. 나는 고민한다. 지금 치울 것인가 아니면 침대에 누워 부족한 아침 잠을 더 잘 것인가. 나는 나를 잘 안다. 이 거실의 아이들 흔적을 정리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눕는다면 청소 해야지 청소 해야지 답답해 하다가 결국 잠을 자지 못할 것이라는... 그렇다고 지금 치우기에는 귀찮다! 너무 너무 귀찮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장롱을 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후줄근한 추리닝 하나 꺼내 입고 남편이 입지 않고 방치한 바람막이를 찾아 대충 몸에 걸쳤다. 머리에 쓸 만한 모자를 찾아 손에 쥐고 주방 한구석에 방치된 이어폰을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역시 청소하기 싫을 때는 집을 나가는 것이 최고일 것이다.
무등산은 내가 사는곳에서 동쪽에 위치한다. 50분을 걸어야 무등산 아래 별다방에 도착할 것이다. 아침 해가 강하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이어폰을 휴대폰에 연결해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귀에 꽃았다.
쌀쌀한 공기와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바쁜사람 처럼 걷는다. 실은 바쁘다. 빨리 가서 커피 한모금 해야지. 빵집과 찻집을 지나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지나친다. 점점 무등산은 가까워지고, 나는 무등산과 연결된 계곡 옆에 정비 된 길을 걷는다. 걷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새벽 내 굳었던 몸은 부드럽게 풀리기 시작하고 귀는 풍부한 음악으로 채워진다. 평소 걷는 것을 게을리 한 느린 발걸음은 점점 음악에 맞춰 빨라 진다.
어느새 별다방에 도착했다. 언니가 준 쿠폰을 이용해 주문한 카페라떼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면 내 위치에서 왼쪽과 오른쪽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중앙에 긴 테이블이 놓여있다. 내가 앉을 최고의 자리는 오른쪽에 있는 무등산의 숲이 보이는 자리다.
이어폰의 볼륨을 더 키웠다. 그리고 눈을 숲에 고정한 채 라떼 한모금 마셨다. 앙상한 나뭇가지로 인해 숲 구석구석이 보인다. 라떼 한모금 더 마셨다. 숲 사이로 멧돼지 한마리 보였음 좋겠다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한모금 더 마신다. 저 나무는 무슨 나무지? 한모금 더 마신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내 귀에 들어 온다. 음악과 저 숲의 여유로움이 너무 잘 어울린다. 저 숲으로는 올라가는 길이 없나? 한모금 더 마신다. 나도 무등산에 올라 볼까? 한모금 더. 올라가 보자. 한모금 더.
어느새 카페라떼를 다 마시고 말았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 났다. 별다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 시야에 무등산이 저 멀리 높게 보인다. 궁금해. 무등산이.
올라가 보자.
오늘 말고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