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현실과 미래의 희망
“박 주무관(박정훈), 이 보고서 언제까지 올라가야 하는 거죠?”
행정실장(조미경)님께서 쌓인 서류더미를 정리하며 물었다. 책상 위엔 공사 도면, 예산 결산 서류, 교직원 급여 지급명세서까지 혼란스럽게 섞여 있었다.
정훈 씨는 멍한 눈으로 컴퓨터 화면에서 시계를 확인했다.
“내일 아침까지요. 근데 공사 업체랑 계약 검토도 오늘 끝내야 하거든요. 실장님도 퇴근 못 하실 거예요.”
미경 씨가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우리 학교 인원 좀 늘려달라고 교육청에 요청한 게 벌써 몇 년 전이죠? 그런데 아직도 20년 전 그대로잖아요. 겨우 2~3명으로 어떻게 이걸 다 하라는 거예요?”
정훈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20년 전이랑 다를 게 없긴 하죠. 그런데 업무는 20배쯤 늘었으니까 문제예요. 늘봄학교? 야간돌봄, 각종 방과후수업, 유치원 유아학비 누리과정, 급식소 환기 개선 공사? 에듀테크? 사회가 고도화된 만큼 학교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인력은 왜 늘리지 않는 걸까요?”
최근 몇 년 동안, 학교 업무는 단순한 교육행정에서 벗어나 점점 더 복잡하고 전문화되었다. 늘봄학교 운영으로 인한 학생 돌봄 서비스는 기본이고, 석면 해체와 내진보강공사, 급식소 환기개선공사, 옥상 방수 같은 전문공사 업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친환경 설비 설치까지 교육행정직 공무원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다.
교육행정직으로 시험(국어, 영어, 국사, 행정법, 교육학)을 치고 공직에 들어왔기에 시설 전문 지식이 부족하여 시설공사를 설계하고 원가 내역서를 검토하고 전문공사업체를 주도적으로 컨트롤하여 공사를 감독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전문 지식도 없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교육행정직의 업무스펙트럼이 워낙 광범위하다보니 한 분야만 깊게 판 전문업체와의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업체에 사실 상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모순적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다시말해 학생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학교 공사들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교육행정직 공무원이자 그 이전에 학부모로서 참 걱정이 많다.
학교 행정실의 현실은 20년전과 비교해도 여전히 고작 2~3명이 모든 업무를 떠안고 있다. 학교회계, 일반행정, 시설 관리,재산, 물품, 교직원 급여, 인사, 연말정산, 공무원 출장여비, 2단계 가격규격동시입찰, 급식공고, 나라장터 계약, 수학여행 입찰, 교복구매 입찰, 어린이통학버스 임차 수의견적 공고, 우유 단가 입찰, 각종 현장체험학습 버스 임차 견적공고, 에듀테크(chatgpt, canva, perplexity 등) 구매. 맞춤형복지, 소방, 기계설비, 전기, 수도, 배관, 수목전정, 민원 응대까지 교육행정직이 다 해야 하는 상황에서, 책임은 커지고 권한은 여전히 제자리다.
특히 겨울방학은 교육행정직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학교사업집행을 점검하고 불용액을 최소화 하기 위한 결산 추경과 다음년도 본예산 편성, 연말정산, 물품, 재산 결산 마감 등으로 인해 가장 바쁜 시즌이 된다. 학생들과 교사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방학 동안,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은 매일 출근하여 초죽음 상태로 밤늦게까지 야근을 이어간다. 여러 일정이 겹치면 주말에도 초과근무를 해야만 업무를 처낼 수 있다. 정훈 씨가 말했다. “솔직히, 지금 이 환경에서 버티는 건 미련한 거 아닐까요? MZ세대 후배들 보면 미련 없이 사직서를 내고 떠나던데, 그게 더 현명한 선택 같아요.”
정말로 미련 없이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출산율 저하로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이상하게 교육행정직 공무원의 업무는 줄지 않는다. 오히려 늘어난다.
MZ세대 공무원들은 사명감에 기대 일을 버티지 않는다. 더 나은 환경과 균형 잡힌 삶을 위해 과감히 공직을 떠나고 있다.
정훈 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떠난 사람들은 현명한 선택을 한 걸지도 몰라. 문제는 떠나지 못한 우리가 이렇게 계속 버틸 수 있느냐는 거지.”
현장에서는 10년 차 이상의 중견 공무원조차 사직서를 내고 퇴사하는 일이 현재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 6급 교육행정실장님께서 20~30년전과 비교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열악한 교육행정직의 처우와 과도한 행정실장 책임 문제에 결국 크게 실망하여 면직을 하셨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후배들이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악한 환경과 처우 속에서 사명감만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얼마 전 또 한 명의 교육행정공무원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고작 2~3명인 행정실의 과중한 업무와 책임, 그리고 학교에서 가장 소수의 인력으로 겪는 여러가지 구조적 문제 등이 겹치며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극단적인 것이었다. 정훈 씨는 그 사건 소식을 듣고 며칠을 멍하니 지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그리고 누가 다음 피해자가 될까?” 그는 두려웠다.
학생 수가 줄고 학교가 작아진다고 해서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사업과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추가되며 업무는 더 세분화되고 복잡해졌다. 그렇다고 예전에 생겨난 일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시스템은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
“우리가 더는 버티지 못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누구겠습니까?”
정훈 씨의 말에 행정실장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이겠죠. 학교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이 될 거예요.”
정훈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얘기해도 아무도 듣지 않으면 또 누군가 희생자가 되겠죠. 이제는 대책이 필요해요. 빠른 대책이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 비극이 또 일어날 겁니다.”
교육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교육행정공무원들이 지칠 대로 지친 지금,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공교육의 근본이 흔들릴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교육행정공무원들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 나아가 사회 전체의 문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은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고 있다. 이제는 그 짐을 나눌 사람과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교육이 지속 가능하려면, 공무원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