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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하면 무지개가 뜬다

by 라이프 위버

뒷담화 좋아하세요? 지금부터 제 동료들 뒷담화를 잠깐 하려고 하거든요.


어제(지난 토요일)는 동료들과 북한산 원효봉으로 산행을 다녀왔어요. 일행은 모두 여섯명이었죠. 먼저 교수산우회 회장인 J 선생님. 서로 마다하는 동호회 회장을 선선히 맡아주고 성심껏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어요. 작년에 회장직을 맡은 후 이 분은 동호회에 혁신을 일으켰어요.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을 크게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으로 나누는데 전임교원도 정년직과 비정년직으로 구분되고, 비전임교원에는 겸임교수, 초빙교수 등이 속해요. 그가 회장이 될 때까지 학교의 동호회는 전임교원으로만 구성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회장이 되고 그는 산우회 회원 자격을 우리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전 교원으로 확대했고, 회원이 아닌 교수들도 언제든지 산행에 참가하는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로 만들었어요. 이런 그의 넉넉한 성품 때문에 그가 리딩한 이번 산행에서 저를 포함 2군에 속하는 선생님들이 눈치 안보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걸을 수 있었어요.


그다음은 작년 8월에 은퇴한 S 선생님. 그녀는 은퇴 후에야 전철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버스카드는 최근에야 구매했어요. 은퇴하기 전까지 매사에 자차로 이동해서 전철이나 버스를 탈 일이 없었던 거죠. 여왕처럼 살아서 그럴까요?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아요. 지난가을부터 산우회에 나오고 있어서 아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그녀가 한 이야기를 토대로 판단해 보면 학교일과 집안일 둘 다 잘하기 위해서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녀가 다른 단과대학 소속이라서 서로 부딪칠 일이 없었지만 멋쟁이라서 학교 전체 행사 때 눈에 띄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30대의 몸매를 아직까지 유지하는 비결이 있었어요. 바쁘게 살면서도 거의 매일 윗몸일으키기 500번, 아령 들고 트레드밀 걷기,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어요. 그런 그녀가 어제 말했어요. 산우회 덕분에 이제 막 산행을 시작했는데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이 자신에게 신세계라며 회장, 부회장(그녀는 부회장인 제가 진행하는 짧은 걷기 모임에 이끌려 산우회에 오기 시작했어요.)에게 감사하다고요. 저는 그녀의 말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고 역시 작은 것이라도 좋은 것은 좋다고 상대에게 말해주는 것이 언제나 옳다는 것을 상기했어요.


그리고 W 선생님. 그는 겸임교수예요. J 회장 선생님의 새로운 운영방식 때문에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되었지요. 그가 우리 동호회에 가입을 한 것은 우리의 복이에요. 그는 암벽을 타는 사람이고 산에 관한 한 베테랑인 데다가 주변사람들을 아주 잘 챙겨주는 사람이거든요. 산행을 위한 신발이라고는 운동화 하나밖에 없는 S 선생님이 이번 산행에서 그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S 선생님이 말한 신세계에는 그의 챙김이 포함돼 있어요. 집이 같은 방향이라서 함께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동네 역의 한 정거장 전에 내리면서 시장에 들렀다가 간다고 했어요. 혼자서만 놀다 왔으니 아내에게 뭔가 사들고 간다고 하더라고요.

H 선생님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 분은 정말 개성이 넘치고 센스도 넘치는 사람이에요. 자녀 둘과 남편에게 거의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는 이 선생님은 틈틈이 노래를 불러 트로트 가수증도 받은 분이죠. 어제 산행에서 펼친 이분의 활약을 잠깐 말씀드릴게요.


어제는 원래 오른쪽에 있는 계곡 옆 길로 원효봉에 가려고 했는데 그제 내린 비 때문에 계곡 물이 불어 그 길은 폐쇄되었어요. 어제 참가한 6명 중 Y 선생님을 포함 3 사람은 계곡길을 적당히 오르다가 내려와 왼쪽 능선길을 슬슬 오르다가 하산하는 사람들 만나서 함께 내려오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계곡 옆 등산로가 폐쇄되어 6명이 모두 능선길을 타고 원효봉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함께 움직이다 보니 결국 6명이 모두 원효봉까지 접근했는데 원효봉 바로 전에 쇠파이프를 잡고 큰 바위를 넘어가야 했어요. 거기서 Y 선생님이 겁에 질려버린 거예요. 저는 "이 정도 바위는 선생님이 충분히 넘을 수 있다."는 상투적인 말로 격려를 했는데 저보다 아주 젊은 H 선생님이 Y에게 "모자를 쓰고 앞에 있는 회장 선생님 등만 보고 내려가라."라고 하면서 그 선생님 등을 계속 쓰다듬으면서 뒤 따라 내려갔어요. 하산후 Y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니 큰일 날뻔한 상황이었어요. 공황장애가 올뻔했거든요.


저도 또한 H 선생님 도움을 받았어요. 제 등에 떨어진 송충이가 맨살이 드러난 제 목으로 막 기어가려는 찰나에 "선생님 놀라지 마세요." 하면서 내 뒤에서 자신의 스틱으로 송충이 쓸어내린 거예요. 저는 애벌레 종류를 아주 끔찍하게 징그럽게 여기는 사람이라서 너무 감사했어요. 아마 저라면 기겁을 해서 소리부터 질렀을 텐데 그 선생님은 제가 덜 놀라게 하려고 말과 행동을 동시에 한 것이죠. 그래서 저의 괴성이 짧게 끝났어요.


한편 조용한 Y 선생님이 언제 찍은 줄도 모르게 큰 바위 위기 이전이나 이후에 계속해서 나머지 다섯 사람들의 스냅사진을 여러 장 찍어서 우리의 순간들을 기록해 주었어요. 지금까지 동호회 산행에서 그런 서비스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Y 선생님이 말은 별로 없었지만 시선은 우리들에게 두고 있었다는 것이 훈훈하게 느껴졌어요.


사람들이 뭔가를 함께 할 때 연대감(우리의 경우 가장 큰 것은 산을 좋아한다는 것) 갖고 있으면 모두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재주가 다르니까요. 어제 산행에서 저는 어떤 기여를 했을까요? 원효봉에 당도하기까지 6인이 모두 나오는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정상 기념사진은 6인이 전부 나오게 하고 싶었어요. 원효봉에서 한 남자분이 셀카를 찍고 계셨어요. 다가가서 사진 찍어드리겠다고 하면서 저희도 찍어달라고 했어요.(저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편하게 건네는 재주가 있거든요.) 그분이 기꺼이 응했죠. 저는 한 장소에서 3장 정도 만들어 드렸는데 그분은 저희 6인 사진을 위치도 바꿔가면서 아주 여러 장을 찍어주시더라고요. 제 덕분에 우리가 훌륭한 6인 사진들을 건졌다고 말하면 과장일까요?


원효봉까지 오르면서 동료들의 격려가 아니었으면 준수해서 흠뻑 빠지고싶은 북한산의 모습을 엿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저 아래쪽에서만 걷다가 가려고 했거든요. 등력이 좋은 선생님들이 앞서 간 후에 느긋하게 기다려주기도 하고 또 위험한 구간에서는 곁에서 도와주기도 해서 모두 원효봉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제 등산 속도 기록을 보니 시속 1.6km가 나왔습니다. 얼마나 느리게 산행했는지 아시겠지요?


좋아하는 활동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 더 행복했습니다. 순간순간 자신만의 아름다운 색으로 빛을 발했던 동료들을 떠올리니 지금 내 마음에 무지개가 뜹니다. 6인이 멋진 조화를 이뤄 이 중에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빠졌더라면 그 고운빛이 누그러졌을 거예요.

Y를 겁먹게 한 암릉 뒷면. 어제 등산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대문 사진: 왼쪽부터 원효봉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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