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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추구하는 인생 늦깎이

by 라이프 위버


한 때 방송 진행자가 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영어 선생을 하는 와중에 말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내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게 하는 비법은 나의 태도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말 진지하게 듣는다. 그리고 중간중간 추임새를 잘 넣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한 것을 적절한 타이밍에 잘 묻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디테일한 질문까지 하니 사람들은 이야기할 맛이 날 것이다.


나는 학기 중에는 드라마는 안 보려고 애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연속해서 드라마를 보느라고 일상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결말이 궁금하면 나는 소설을 꼼꼼하게 읽지 않고 종잇장을 휙휙 넘기면서 결말을 빨리 읽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미 결말(그의 존재)을 알고 결말을 직접 알현하면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들으니 조바심 낼 필요도 없고 그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됐는지 살짝 엿볼 수 있으니 정말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할까? 현재로서는 삶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밖에 말 못 하겠다. 젊어서도 이야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지금만큼 좋아한 것 같지는 않다. 나이 들어가며 이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각기 다르게 반응하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한된 나의 삶의 밖에 있는 인간의 삶에 관심이 많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순진(innocence)의 단계에서 벗어나 경험(experience)의 단계에 올라오니 내가 모르는 것, 경험하지 못한 것이 천지라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없으니 간접 경험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육십이 넘어서야 순진의 단계를 벗어났다는 생각이 드니 앞으로 나는 더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그래서 나는 은퇴를 하면 가르치는 일은 그만하고 싶고,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육체를 많이 쓰는 환경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내게 경험이 쌓이면 나는 삶을 더 깊고 넓게 알게 될 것이다.


정신적으로 나는 이제야 성년이 된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더 성숙할 것이다.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며 더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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