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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위버 Apr 27. 2024

사람이, 사랑이 답이다

사람은 모순 덩어리다. 이를 스스로 의식하기도 하고 모른 채로 모순된 행동을 한다.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중심 인물인 알마시는 소유욕(ownership)을 제일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타인의 아내 캐서린에 대한 집착에 광기를 보인다. 한편 캐서린은 거짓말(lie)이 제일 싫다고 말하면서 남편을 속이고 알마시와 사랑을 나눈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은 결국 두 사람에게 비극을 초래한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캐서린의 남편은 캐서린을 비행기에 태우고 사막에서 일하고 있던 알마시를 향해 추락한다. 알마시는 충돌을 피하지만 캐서린의 남편은 죽고 캐서린은 크게 다친다. 알마시는 캐서린을 동굴로 옮긴 뒤, 의사를 찾아 사막을 횡단한다. 의사는 구하지 못하지만 캐서린에게 돌아가기 위해 알마시는 영국에서 만든 아프리카 사막지대 지도를 독일군에게 넘기고 비행기를 얻는다. 동굴에 돌아온 알마시는 이미 사망한 캐서린을 비행기에 태우고 사막을 날다가 비행기가 총에 맞아 추락한다.


영화 줄거리가 여기서 끝난다면 나는 이 영화의 영상미가 돋보이고 알마시 역의 랄프 파인즈가 아무리 섹시하다고 해도 시간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스마트폰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액자구성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액자 속 액자이고 바깥 액자에는 간호사인 한나(젊고 청순한 줄리에뜨 비노쉬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였다)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을 전쟁(2차 세계대전)으로 잃고, 가장 사랑하는 동료도 지뢰로 인해 사망한다. 스스로 저주받은 사람으로 여기며 절망하던 한나는 소속 부대의 허락을 얻어 전신 화상을 입고 다 죽어가는 "잉글리쉬 페이션트" 알마시와 페허가 된 수도원에 남는다.


한나는 그를 정성껏 돌본다. 그런데 그곳에 그들 외에 또 다른 거주자가 생긴다. 알마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온 카라바지오(일로 알았던 사이)와 폭탄제거전문 장교인 킵이다. 이 네 사람은 한나를 축으로 공동체를 형성한다.


알마시는 한나에게 자신과 캐서린의 사랑이야기를 모두 들려주고, 카라바지오는 알마시가 영국에서 만든 사막지도를 독일군에게 건네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우연히 듣고 알마시에게 복수하는 것을 단념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함께 지도를 만들었던 절친이 자신의 이적행위 때문에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알마시는 자신의 사랑모든 댓가들을 통감하며 죽음을 택한다.


알마시가 안락사를 할 수 있게 도운 한나는 카라바지오 일행과 함께 플로렌스로 가는 트럭을 얻어 타고 길을 떠난다. 그의 손에는 알마시의 유품인 책 한 권과 편지들이 들려있었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비극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작가(원작이 소설이라고 한다)는 굳이 액자 형식을 빌지 않고 두 사람의 스토리로 소설을 쓰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한나를 등장시켰을까?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과 알마시와 한나의 우정을 대비시키고, 절망에 빠진 한나가 무엇을 통해 다시 삶의 희망을 찾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한나는 자신은 간호사이니까 알마시를 살리고 싶었다고 대답했지만, 무의식적으로 한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수도원이라는 도피처에서 그는 알마시를 살림으로써 자신도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도피처 수도원에서 한나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알마시와는 깊은 우정을 나누고 킵과는 연인이 되고 카라바지와는 동료애를 갖는다.


비록 알마시의 죽음이 한나에게 큰 슬픔이지만 알마시와의 그동안의 교감은 한나에게 가장 큰 삶의 자양분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절망한 두 사람이 나누는 교감은 행복한 두 사람이 나누는 교감보다 그 순도가 더 높았을 것이다. 삶의 밑바닥에서 사람들의 영혼은 벌거벗은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원작 소설은 읽지 못했지만)의 주인공은 알마시가 아니라 한나이다.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절망적인 삶에서 한나가 어떻게 다시 삶의 희망을 갖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희망의 자양분은 사람이고, 사람들과의 사랑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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