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존오브아너 (Legion of Honor)

미국 서부 하이킹으로 회복을 배우다

by 닥터로

미술관 방문


미술관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볼 만한 장소 중의 하나로 알려진 리존 오브 오너 (Legion of Honor)이다. 19세기말 미국에서 설탕 재벌로 알려진 스프레켈스 (Spreckels ) 부부가 만들었다. 풀네임은 California Palace of the Legion of Honor로 미술관 (Art Museum) 이름을 넣지 않고, 궁전이라 불렀다.

The Thinker


이 미술관의 사이트에 가보면 프랑스 파리에 있는 Palais de la Légion d’Honneur 궁전의 영감을 받은 모조품이라고 한다.


그 사연은 Alma de Bretteville Spreckels 부인은 파리에 있는 레종오브아너 궁전에 매료되어 남편인 Adolph B. Spreckels를 설득해서 1915년 당시 엑스포 전시회장으로 활용되었던 지금의 링컨파크에 이 궁전을 짓도록 했다. 부인 Alma가 프랑스 궁전의 모습에 매료되어 똑같은 모습의 궁전을 남편에서 요구했다. 남편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프랑스 정부에게 로비를 하게 되었고, 당시 미국 재벌은 1차 세계대전의 상처 많은 영광만을 가진 프랑스 정부에 어느 정도 입김을 넣었다고 한다.


프랑스 정부는 이러한 로비에 못 이겨 궁전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을 허용했다. 착공은 전쟁 때문에 늦어 지다가 1924년에 돼서야 완공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궁전보다 좀 더 현대적으로 그리고 미술관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 프랑스 것 보다 좀 더 좋다는 평이다. 아이러닉 한 건 남편은 독일계이고 독일에서 공부도 했는데, 새로 받아들인 부인이 프랑스의 모든 것을 좋아해서 부인을 위해 이 어마어마한 궁전을 선사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Adolph 가 부인 Alma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출처: 위키, Legion of Honor 웹사이트)



알마 스프레켈스부인은 샌프란시스코 빅마마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그녀의 키가 180cm여서 그렇게 불렸다고도 하지만 San Francisco 시에 문화 예숙적으로 기여한 게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놀라운 건 그녀는 두 번 결혼했고 첫 번째 남편은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듀이동상을 만든 조각가였다. 두 번째 남편은 아돌프 스프레켈스로 그녀가 만들고 싶어 한 프랑스 궁전과 작품 전시에 금전적인 무한 지원한 사업가였다. 두 남편 모두 샌프란시스코 시의 문화/예술적 기여도를 높이는데 부인의 내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안타깝게 도 이 미술관의 큰 후원자였던 남편은 1924년 미술관이 완공될 시점에 폐렴으로 사망한다. 그 뒤에 스프레켈스 슈가 컴퍼니도 둘째 아들-조카들이 운영해오다가, 스프레겔스 브랜드는 도미노 푸드가 인수했다. 지금 스프레켈스는 전설적인 갑부로 남아 있지만 이들이 기증한 건물은 캘리포니아, San Francisco 전역의 명물로 무한가치를 선사한다. *참고로 스프레켈스 패밀리는 서부 철도사업 등 미 서부시대에 등장하는 초자본주의자로 불리었고, 분노의 포도를 쓴 존 스타인백도 스프레겔스 설탕 농장의 노무자로 일했다고 한다. *몇몇 내용은 미술관 사이트의 내용을 참조했다.


남편이 죽자 스프레겔스부인은 미술작품을 구매하러 프랑스로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프랑스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부인이 프랑스 작품을 애호해서 미술관 안에는 전시된 작품들은 드가 (Degas)나 르누아르 (Renoir), 모네 (Monet), 피사로 (Pissarro), 세잔느 (Cézanne) 등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에 속했던 프랑스 출신 작가들이 작품이 다수 소장돼 있었다. 또 루벤스 (Rubens), 렘브란트 (Rembrandt) 작품도 있었다. 뭐 뜬금없이 피카소 (Picasso), 브라크 (Braque) 작품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가장 자랑거리는 아욱스뎅 로뎅의 작품이었고,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

River God (The River Rhine Separating the Waters) 1765 Clodion (Claude Michel)


19세기의 뛰어난 조각가 중 한 명인 Clodion(Claude Michel: 1738-1814)은 예술의 곡선의 미를 표현한 조각가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의 작품인 강의 신에서는 휘몰아치는 라인강의 모습과 함께 물을 분리하는 강력한 강의 신의 위업은 그의 팔, 목, 몸통, 허벅지의 팽팽하고 잔물결 같은 근육을 기록하고 있다. 클로디온이 의인화한 물처럼 물결치는 그의 턱수염은 항아리의 입구를 잡고 물이 두 개의 시내로 흐르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주제는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A.D. 98)에서 유래했으며 서쪽 제방의 갈리아 영토와 동쪽의 독일 영토를 나누는 라인강을 암시한다. <출처: Kimbell Art Museum 웹사이트, https://kimbellart.org/collection/ap-198405>


클로디온은 1760년대 대부분을 로마에 있는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그는 골동품 조각, 미켈란젤로, 특히 베르니니를 공부했다고 알려졌다.


Saint John the Baptist Preaching ca. 1665 Mattia Preti (Il Cavaliere Calabrese)

이탈리아의 거장, 마티아 프레티 (1613-1699) 작품 실물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작품은 Saint John (성 요한) 세례자의 설교이다. 그림에서는 요한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군중 앞에서 전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깃발에는 "Behold Lamb of God"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이로다)라는 말을 할 준비가 격동적으로 그려졌다. 이런 모습에 열광하는 군중이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그 졌다. 해설에는 프레티가 1661년부터 몰타 섬에 거주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본 작품이 Legion of honor에 전시되게 된 것은 Roscoe and Margaret Oakes 부부와 Kathryn Bache Miller 자선사업가가 기증했다.

The Last Judgement ca. 1500 추정 작자 미상 단 Tyrolean Master (티롤지방에서 발견)


티롤지방 (오스트리아 지방?)에서 그려진 이 작품은 최후의 심판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다

Diana and Endymion 1726 Michel-François Dandré-Bardon


본작품은 프랑스 화가 미셀 프랑스와 당드 발던 작품인 다이애나와 앤드미온이다. 로마의 신화에 나온 이야기로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운을 가진 양치기 소년 앤드미온을 슬쩍 보고 있는 남자를 싫어했던, 아폴로의 딸 아르메테우스 (다이애나)가 앤드미온을 지켜주는 건지, 흠모하는 것인지, 보호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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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나오며


미술관을 나오니 시차 때문인지, 비행기에서 잠을 설쳐서 그랬는지 엄청나게 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경하고 나오는데, 그래도 뭔가 허전함이 남아 있었다.

작품에 대해서 지식이 많다면, 구경을 해도 남는 것이 많겠지만.. 난 미술 작품을 잘 몰라서 그냥 좋다고 만 느끼지.. 그 외에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미술 전공한 여자 유학생과 함께 시카고 미술관에 갔는데 그 여자분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봤다. 그 이유는 교과서, 책자에 소개된 그림을 직접 보니 감격해서 눈물이 나더라 하는데.. 난 처음에 어디 아프신 줄 알았다. 아직도 그 부분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마치 사진으로만 구경하던 연예인을 직접 보면 눈물이 나듯이 그런 걸까? 아니면 경치와 같은 느낌을 주는 걸까?

졸림이 몰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끔 가던 커피집이 생각났다.

정통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를 파는 카페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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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다되어 가서 시차 적응도 할 겸 해서 친구 집으로 일찍 들어갔다. 당시 친구 와이프 하고 가족들은 LA로 간 상황이라 집으로 가기 전 차이나 타운 가서 간단하게 밥 먹고 간단한 맥주 먹고 돌아왔다.


다음날 원래 계획은 혼자 Napa 또는 Sonoma 와인너리 갈 계획이었으나

친구가 다음날 Off라 친구와 같이 샌프란시스코를 구경하기로 했다.



San Francisco 거주지 모습


지금 와서 생각하면..


친구와 같이 샌프란시스코 구경한 것도 좋았다. 친구도 1년남짓 병원-집 만 다녔지 실제로 시내 구경한 적이 별로 없었고, 나도 왔던 곳이지만 관광하러 다니질 않아서 어디가 어딘지 기억도 가물 거렸다. 더구나 관광 전차인 트롤리 타보고 싶었으나 못 타봤다. 둘다 샌프란시스코 잘알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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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동네 집들은 중부의 집들과 비슷하다. 친구가 잠깐 한인 교회에 볼일을 본다고 해서 생각해 보니.. 그날이 일요일이었던 듯. 그날 같이 예배는 못봤던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난 그때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샌프란시스코 도시가 언덕과 이쁘게 생긴 집들이 많다. 똑같은 집보다는 개성있는 집들이 많다. 물론 일부지역은 미국도 프랜차이즈 아파트 (빌라)가 있긴하다.



트윈픽크


Twin Peak에 올라가니.. San Francisco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날 날씨가 눈이 부시도록 좋았고, 편광필터를 장착해서 자연스럽게 사진 옆을 어둡게 하는 베네팅 효과가 나왔다. 이렇게 표현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나중에 찍고 나서 카메라 또는 렌즈가 고장 난 줄 알았었다

미국을 떠나기 전 이곳에 올라와서 탁 트인 장면을 봤지만, 내 앞날이 캄캄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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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 Peak를 내려와서 Castro 거리로 갔다.


Rainbow 표시가 Gay 표시라는 건 미국생활하면서 한참 뒤에 알았다.


오하이오에서 잘 가던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에 무지개 표시가 있었다. 난 그때 무지개 싸인이 뭔지 몰랐다. 커피가 맛있고, 매우 친절하고, 가격도 착했다. 어느 날 Take Out 컵을 들고 마시니깐.. 수업 같이 듣던 친한 미국 친구가.. "너 혹시".. 그래서 "절대로 아닌데".. 그러니깐.. "그거.. 그거다", "뭐 거시기라고", 그러면서 귀걸이 표시법.. 등도 알려줬다. 너가 이런 컵을 들고 다니면, 나 찾는 중이라고 홍보 하는 거다 그러면서 너 혹시 차에다도 Rainbow 했냐? 고 하는데... 좀 웃지 못할 사연이다. 이날 친구에게도 Castro에 Rainbow 마크가 그거다 말하니.. 내 친구도 몰랐다며.. (요새야 워낙 상식으로 되었지만도..)


[한때.. 매킨토시 컴퓨터에 저런 마크가 있어서 난 스티브가 그런 줄 안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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