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유정은 옆자리 부하직원을 흘겨보았다. 책상 아래로 꼰 다리를 덜덜 떠는 통에 맞닿은 유정의 책상까지 흔들려 짜증이 났다. 그뿐이랴, 업무 진행사항을 확인하려 슬쩍 건너다본 부하직원의 책상은 먼지와 각질로 엉망이었다. 키보드를 치다 검지로 엄지손톱을 긁어대는 버릇, 동태눈으로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검은 유광 책상의 위, 그리고 검은 키보드 틈틈이 쌓여 있었다.
"어우, 손때 묻은 거 봐. 좀 닦고 살아."
유정은 애써 웃으며 항균 티슈를 건넸다. 각질 대신 손때라고 짚어 말하긴 했지만 뱉고 보니 책상 위에 얼룩덜룩한 손때도 유독 불결해 보였다.
"… 감사합니다."
부하직원이 티슈를 건네받더니 책상 위를 대충 훔쳤다.
'아니 아니, 키보드 아래로 다 밀려 들어가잖아. 책상만 대충 닦을 게 아니라 키보드 사이사이도 좀….'
훈수가 턱 끝까지 올라왔다. 유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2년 차인 부하직원은 일이든 사회생활이든, 하물며 간단한 대답마저 똑 부러지게 하는 법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랬다. 국문과랬나 철학과랬나, 입사 초기엔 일이 안 맞는다며 우는소리도 몇 번 했었다. 어차피 취업이 잘 되는 과도 아니면서 이 일 저 일 가리는 게 우스워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도 어린 티를 못 벗은 만큼 당시엔 귀여운 맛이라도 있었는데….
1년이 막 지났을 무렵부터 일을 주면 네 일 내 일을 따지고 들었다. 담당자의 부재(퇴사)로 일을 조금 나눠 받은 정도로 금방 얼굴을 굳혔다. 말 하나 표정 하나 부드럽고 예쁘게 꾸미는 법이 없었다.
그 무렵부터였을 거다. 부하직원의 책상이 저렇게 더러워진 건. 그리고 유정이 그 말을 들은 건.
"― 없어져 버리고 싶어."
마침 부하직원에게 일을 맡기려던 유정은 그 비관적인 말에 흠칫 놀라 부하직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하직원의 표정은 한결같이 딱딱했고 그래서 일상적이었으므로 그런 엄청난 말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부하직원은 입술을 뜯었다. 출근 전에 하고 온 화장을 수정하지 않아 거의 지워진 립스틱이 입술 각질에 묻어 까만 책상 위로 떨어졌다. 까만 책상 위에 연분홍색 점이 찍혔다. 부하직원은 그것들을 금방 털어 버렸다. 그래, 그때는 알아서 털어내고 닦을 줄 알았다.
그날 이후 부하직원에게는 입술을 뜯는 버릇이 생겼다. 곧 손톱을, 손톱 각질을, 책상 밑으로는 발의 굳은살을 뜯기도 했다.
'안 보이는 줄 아나? 어우, 더러워!'
그럴 때면 유정은 질색을 하며 애써 모른 척을 했다. 청소 아줌마가 다녀가는 며칠을 제외하고 부하직원의 책상은 늘 끔찍하게 더러웠다. 눈에 띄기 시작하자 눈을 돌려도 보이고 심지어는 퇴근 후에도 생각이 났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유정은 다음날 한마디 하고야 말겠다며 이를 갈다 잠에 들었다.
다음날, 유정은 부하직원 자리에 내려앉은 가루, 부스러기, 먼지, 각질―이 가장 마지막에 나온 이유는, 차마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다―를 보고 기함했다. 부하직원은 쌓인 업무를 마저 하느라 전날 야근을 했는데 그게 분해서 사무실을 테러한 게 아닐까 싶었다. 일을 늘려 야근이 불가피하게 만들면서 야근수당은 주지 않는 회사라고 툴툴대던 게 생각났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유정은 상사로서 따끔하게 한마디 하겠노라며 사무실 입구를 주시했지만 출근시간이 한참 지나도 부하직원은 출근하지 않았다. 유정은 부하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기의 진동 소리가 부하직원의 자리에서 들려왔다. 깜짝 놀란 유정이 부하직원의 자리를 건너다보자 어제 본 겉옷과 신발, 가방까지 모두 부하직원 자리에 놓여 있었다. 부하직원이 내뺐을 것이라는 유정의 생각은 폭삭 내려앉았다. 대신, 아직 퇴근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그 자리에서 입술을, 손톱을, 각질을, 굳은살을. 자기 자신을 점점 뜯어내다가 정말로…. 정말로 없어져 버렸나?
부우웅. 부우웅. 전화 진동소리가 울렸다. 유정의 책상이 덜덜,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