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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in Jul 18. 2023

서울이 아니면 안 됐던 대학생은



6월 30일, 친구를 보러 간 신촌에서 우리는 흐린 날답게 뜨끈한 국밥을 먹고 헤어졌다.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 친구들이 부러웠던 때가 있었다.

 교환학생 가기 전, 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전과를 고민하던 시기에는 어느덧 동네 친구에서 서울 친구들이 된 그녀들의 유혹이 있었다. 서울로 오라고, 어차피 거기서 할 거 없으면 서울에 와서 꿈을 찾으라고.

 글쎄, 꼬박 비행기 13시간을 타고 넘어가야 하는 파리에 가는 건 생각보다 쉬웠는데, ktx로 고작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서울은 뭐가 그리도 멀어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왜 서울로 올라올 생각을 안 하냐며 부추기는 친구의 말이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머릿속을 울렸다.

 

 복잡해진 마음을 안고 탄 기차, 창 밖의 풍경을 보내다가 울컥했다. 고작 서울을 떠나오는 것뿐인데 뭔가 특별한 것과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친구의 말은 타이밍 좋게도 어딘가 불만족스러웠던 내 삶에 불쑥 끼어들었고, 집에 돌아가는 내내 마음에 얹혔다.


 서울에 가야만 젊음을 제대로 누리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얽매였을 때 비로소 이 무뚝뚝한 장녀가 엄마 앞에서 울었다.

 가족들이 돌아가신 아빠 얘기를 해도 꾹 참았던 내가 내 인생에 관한 건 쿡 찌르기만 해도 거하게 꿈틀댔다.

 당장 몇 년 후 졸업인데, 전공에 재능도 없고 그러니 무작정 서울로 가면 꿈이 툭 내 발 앞에 놓일 줄 알았다.

 물론 꿈을 찾으러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그 당시 나는 무모함을 뒷받침해 줄 용기가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연고도 없는, 당장 낼 보증금을 빌려줄 수도 없는 우리 집의 형편을 알기에 그 비밀스러운 밤의 소동은 한 번의 철없는 해프닝으로 지나갔다.  


 그런 내가 몇 년이 지난 후, 어쩌다 보니 혼자 서울 여행을 하게 됐다. 프랑스에서 산 시간보다 프랑스에 가기 전이 더 설렜던 것처럼, 서울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서울은 특별했다. 마침 어학원에서 친해진 프랑스 친구가 인연이 이어져 한국에 교환학생을 오게 되었고, 오랜만에 만나 안부 인사를 했다. 바리바리 버킷 리스트를 가지고 온 그녀는 잔뜩 상기된 체 나에게 물었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냐고. 물론 서울 사람이 아니기에 이 질문에 꼭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도시가 우리나라 수도라면 얘기가 다르다. 얘기를 하다 보니 나보고 너 한국인 맞냐는 친구의 말에 마음이 뜨끔했다.


 나는 서울을 가 본 적이 손에 꼽았다. 그러니 친구에게 마땅히 추천해 줄 서울 여행지가 없던 것이다. 

광화문은 규현이 부른 노래만 들었지, 광화문에서를 흥얼거릴 때조차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친구와 국밥을 먹다 결론을 내렸고,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 무모한 내 발걸음은 광화문으로 향했다.

 하루라는 시간은 답을 찾기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도대체 서울이 뭐길래 어린 나를 서럽게 만들었던 걸까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젖은 발걸음으로 버스에서 내리니 광화문에 들어서기 전부터 넓은 거리가 길을 터 줬다. 건물에 들어서기 전 광화문 거리만 봐도 내 지난 서러움을 슬쩍 흘리고 내려도 묵묵히 다 품어줄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복잡할 때 광화문 거리를 걷는다던데, 직접 걸어보니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다. 공사 중인 대로변을 지나 경복궁에 도착했을 때, 뒷 목을 꺾어야 한눈에 겨우 담기는 경복궁 문의 자태. 들어설 때부터 애초에 한국인은 보이지도 않았다. 교과서에서 봤던 친근한 조선 전통 건물에 수많은 외국인 무리라니, 외국에 온 게 아닌데도 

외국에 온 것 같은 익숙한 외로움과 자유로움이 나를 이끌었다. 날씨마저 완벽한 여행을 꿈꾼 건 아니지만 

계속 내리는 비 덕분에 습했다. 한 손에는 입장권, 나머지 한 손에는 우산을 펼쳐 들고 외국인 무리를 지나 흥례문, 근정전 방향으로 쭉 걷고 걸었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 사이에 조선의 향기를 느끼는 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빗줄기 사이로 흘렀다. 

  

 

지도를 뒤져서 청계천으로 향했다. 파란색 티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연 현장,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연인, 헤드폰을 쓰고 뛰는 외국인. 버스에서 내려 가장 처음 본 청계천의 모습을 묘사하라면 이랬다. 각자의 시간을 걷는 사람들을 지나쳐 청계천을 걷기 시작했다. 경복궁부터 계속 걸었더니 슬슬 다리가 아파 길목 중간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유유히 흘러가는 하천 앞에서 마음이 고요해진다. 문득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어쩌다가 비 오는 날 청계천에 오게 됐는지, 어딘가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의 이유가 궁금했다. 새로운 곳에 가니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광화문에서 청계천으로, 마지막 광장시장까지 방문한 후 빽빽한 일정 탓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기차에 실었다. 똑같은 기차, 같은 풍경을 스치지만 다른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친구가 그토록 상경을 부추겼던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서울을 왔었어야 했구나'라는 마음보다는 '사람들이 이래서 서울에 사는구나'라는 나만의 작은 결론을 내린다.

  

 시골에 정착한 지 곧 일 년이 되어가는 날, 이사 온 후 호기심으로 그 좁은 동네를 들쑤시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서울은 나를 궁금하게 한다. 내가 모를 곳들을 더 들쑤시고, 이유를 찾아내고 싶게 만든다. 슬프게도 나는 몽상가에서 현실쟁이가 된 것 같지만, 가끔은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잊고 싶을 때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생각을 잊기 위해 연습해야 한다.

 아직은 안정감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 위태롭더라도 호기심이 무턱대고 나를 이끄는 삶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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