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lin Dec 29. 2023

시골 편의점의 근무태만 알바생을 소개합니다


 딸랑, 시골 편의점에는 어떤 손님들이 올까요?


 졸업한 지 몇 달 후, 나는 더 이상 용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동생이 늦은 꿈을 펼쳐보겠다고 시작한 축구는 달에 백이 넘는 돈을 가져갔고, 보탬은 되지 않더라도 집안에 누가 되지 말자는 생각으로 편의점 면접을 보았다. xx면, 이 작은 동네에는 세 개의 편의점이 있다. 모퉁이를 돌면 하나, 또 다음 모퉁이를 돌면 또 하나씩 나온다. 시골 마을에 대단한 건 없어도 편의점이 세 개나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만은 감소됐다.


 여하튼, 일 년도 넘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벌써 두 개의 편의점에서 일을 했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은 ic를 가는 길목에 툭 놓여 있다. 주민들보다는 대부분 차를 끌고 오는 외지인들이 많이 온다. 공장 가는 길에 공장 직원, 비싼 차를 모는 사장님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아, 편의점에서 혼자 일한다고 생각하면 금물이다. 나는 카운터 안 묶여 있는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일하는 중이다. 내 강아지냐고? 아니다. 나는 아토피가 있어서 강아지를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덜컥 사장님 강아지와 함께 주에 18시간씩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별로였다. 

개털이 날리는 매장, 새벽에 한 번씩은 산책을 시켜 줘야 하는 성가신 동물, 

가끔은 손님이 올 때마다 뭐에 그렇게 성질이 났는지 금방이라도 물 것처럼 짖어대는 강아지. 




물건을 정리할 때면 손님이 오지도 않았는데 짖어대고 카운터로 헛걸음하게 시키는 주범. 

그런 뒤 누워서 이런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유일하게 근무 태만인데 안 잘리는 아르바이트생. 


하도 짖어대는 탓에 손님의 인상은 점점 찌푸려지고 민망한 웃음으로 때우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철저히 매장의 마스코트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고매출, 매출을 높이자! 

믿거나 말거나지만 사장님은 실제로 이 아이가 매장에 온 후, 매출이 증가했다고 한다.


 내가 일하는 시간은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다. 용변을 밖에서 처리하는 매출이를 위해 새벽에 한 번씩은 꼭 산책을 나가 줘야 한다. 몸이 찌뿌둥하거나 매장에 있기 답답한 새벽 시간에는 매출이 목줄을 풀고 산책했다. 목줄을 풀어주려고 손을 대면, 벌써부터 꼬리를 헬리콥터처럼 돌리며 왕왕 짖어댄다. 나는 귀가 아주 예민한 사람이다. 영화관의 사운드가 너무 커 한 손으로 귀를 살짝 막고 볼 정도다.

그런 아이가 옆에서 짖어댈 때면 귀가 찢어질 것처럼 아파 매출이의 목줄을 풀어주기 전에는 꼭 에어팟을 낀다. 


 처음에는 내 꼴이 웃겼다.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는데 덩달아 강아지를 덜컥 키우게 된 것 아닌가. 

 동물에게 연민을 느꼈던 적은 없는데, 실컷 놀다가 목줄을 다시 묶어야 할 때 매출이의 눈을 보면 슬쩍 보면 마음이 쓰라렸다.

 

 매장에 있는 매출이를 볼 때, 손님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뉜다.

 

 - 매번 아침 시간에 커피를 사 가는 아저씨가 사 온 매출이 간식. 카운터 밑에 쏙 숨어있는 매출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입으로 딱딱 소리를 낸다. 시선은 매출이에게 고정, 나에게는 눈도 두지 않은 채 자신이 맡겨 둔 간식을 달라고 얘기한다. 이런 손님의 유형은 개를 보러 온 김에 물건을 사 가는 부류 중 한 명이다.


 가끔 매출이의 커다란 눈망울을 볼 때면 그 아저씨의 간식을 몰래 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간식의 개수까지 새 놓았을 것 같아 시도해 보지는 않았다. 매출이도 자신을 예뻐하는 것을 아는지 그 아저씨만 보면 땡그란 눈을 뜨고 애교를 부린다.


- 이와 상반된 아줌마의 반응을 이야기해 본다. 매출이가 아주 예민한 날에는 달려들어 물 것처럼 카운터에 얼굴을 내밀고 짖는다. 그럴 때면 손님들이 미간을 찌푸리게 되고, 내가 매출이의 주인이 된 것처럼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진다. 어느 날, 술에 취한 것 같은 아줌마가 매출이의 짖는 모습을 보고 개새끼라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개새끼라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짖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매출이에게 너무 억울한 상황이지 않는가.  

애써 손님을 진정시키려고 얘기를 해 봤으나, 이미 매출이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손님의 눈.

이미 기분이 상한 그녀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도대체 여기서 개를 왜 키우냐며, 이거 갑질 아니냐며 개를 보며 소리치는 아줌마의 모습 때문에 더 짖어대는 매출이, 손님의 말을 자동 노이즈캔슬링 해 주는 매출이다. 그러자 이거 완전 내 얘기 알아듣는 거 아니냐며, 이 개새끼 때문에 여기 안 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했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매장에 날리는 개털하며, 싸우자는 톤으로 짖어대는 매출이 때문에 실제로 싫어하는 손님이 많았으니까. 사장님께 얘기해 보겠다고 말을 꺼내는 순간, 이미 2년 전부터 얘기해 봤지만 도대체 바뀌질 않는다며 얘기하는 여자. 상황을 눈치채고 풀이 죽어 자신의 집으로 쏙 들어가는 매출이가 불쌍했다. 


 아무튼 새벽 공기와 함께 매출이와 산책하는 것은 나의 힐링 시간이 되었다. 평소 개를 보면 아무 생각도 없었던 나였지만, 이미 휴대폰 갤러리 속 개 사진이 한가득이다. 얘를 보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개에 환장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나를 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이 아이에게 스며든 것 같다.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 어김없이 산책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넌 내가 그만두는 거 아냐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눈으로 짖는 매출이를 보니 감성이 싹 사그라들었다. 그럼 그렇지, 개는 개였다.

내가 그만둔다고 말하는 순간, 개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이라도 꺼내 눈물을 훌쩍일 줄 알았던 순진한 나.



그렇지만 덕분에 외롭지 않은 새벽을 보냈으니 그걸로 됐다. 

내 새벽을 지켜준 매출이에게 조만간 개 껌을 사 들고 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서울이 아니면 안 됐던 대학생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