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내지 않는 언어

생각을 수감시키는 기록과, 생각을 공양하는 그림

by 휴사

나는 세 가지 언어를 보다 온전하게 구사하려 오늘도 고민하고 노력한다.


그 세 가지 언어란 내가 내린 기준하에

크게 한글이라 하는 발성어, 기록이라 하는 무성어, 그림이라 하는 추상어로 분류된다.


나는 발성어를 제외한 저 두 가지 언어의 가치를 높게 매기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다.

언어의 순기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시금 그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저장의 이점을 가진 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을 가장 빠르게 입력할 수 있는 발성어는 우리 주변에 만연하여 있다.

이 말은 즉슨 상대적으로 익히기 쉽기에 접근성이 좋아 우리의 주위에 밀접하게 붙어있는 표현과 교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우기는 쉬워서일까.

발성어가 가진 한계 또한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많고 많은 이유들을 제쳐놓더라도 소리 내어 말하는 언어는

너무나도 즉흥적인 면이 강하다.

내뱉은 말은 수정이 불가능하니까.

그것이 나에게 있어선 가장 큰 단점으로 다가왔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과 글은 내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언어이다.

그림은 자신의 표현을 추상적이고 천천히 자아내고. 글은 자신의 표현을 빠르고 직관적으로 자아낸다.

이렇게 상반되는 면을 체감하고자 평소와 똑같이 글과 그림을 짜낼 때

어떤 감정과 결과가 교차하는지 나름대로 적어보려 한다.


기록이 주는 특징은 수면 위로 고개를 들까 고민하고 있는 감정들을 신속하면서도

세세하고 와일드한 느낌으로

종이에 '수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빠르게 흩어지는 뇌 내 입놀림을 순간적으로 보이는 곳에 가둬 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록이다.

너무 센티멘탈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무신경하지도 않은 것이 글자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그림이란 심해에서 반짝이는 아귀의 초롱처럼 한줄기 빛나는 생각을 진득하게 끄집어내어

다양하고 섬세하게 '공양'하여 주는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리고 남기려 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때가 언제일까. 떠올려보니

잊혀가는 자들에게 진심 담은 위로를 공양하는 때라는 것을 기억해 보니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신경 쓰는 것과 유사한 점이 몇 가지 눈에 뜨여 이렇게 표현하였다.



요컨대 정리하자면.

세 가지 언어는 내게 있어 지금껏 취한 것들의 전부이다.

그들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오체불만족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제
태어나면서부터 익힌 소리의 언어와

타인의 심장을 터뜨리고. 굳히는 글이라는 언어와

그들의 뇌를 엉망으로 녹여내고 주름지게 해주는 그림이란 언어.

그 3개 국어를 세상에 풀어놓고자 한다.
그것이 내 궁극적 목표의 단면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겨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