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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Feb 27. 2023

저도 사실 애를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애엄마가 보는 초저출산율

나는 애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었다. 아이 엄마가 된 지금도 식당에서 돌아다니는 아이를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마음보다는 거슬린다. 너무너무. 아무리 애엄마라도 아이들이란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눈으로 보는 애들은 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미혼 시절 누구보다 애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이 정도도 나의 아이가 가져온 큰 변화 중 하나이다.


5살 애엄마가 겪은 바로는 한국 사회는 아이들에게 관대하지 않다. 아이들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싫어하는 이유는 애엄마인 나도 공감은 된다. 외근 때문에 대치동 스타벅스에 평일 낮에 갔는데 돌도 안 된 엄마 셋이 나와있었다. 그중 한 명이 스타벅스 소파에서 버젓이 딸 기저귀를 가는 게 아닌가. 말로만 듣던 식음료장 한복판에서 기저귀 가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오 마이갓. 가끔 내 상식이 남의 상식은 아닌 충격적인 순간을 만난다.


식당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흔하다. 남자애 둘이 식당 안에서 뛰어놀다 의자에 걸린 내 가방을 떨어뜨려서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이해 안 된다는 듯한 남자애들 엄마의 표정이 기억난다(그때 내 옆엔 아이가 있었다). 사람이 별로 없다고 식당에서 10살은 된 당신 애들이 뛰어다니는 건 이해되고요…? 한국의 공중도덕 수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요즘의 노키즈존은 마음은 아프지만 이해는 된다. 아이가 5살이 되었어도 난 웬만하면 외식을 안 하거나 좀 시끄러워도 괜찮은 푸드코트나 룸 있는 식당으로 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타인에게 나는 그냥 맘충일 가능성이 있는 미취학아이를 둔 애엄마일 뿐이다. 휴직 기간에 아이와 다니면 특히 그러한 시선을 느꼈다. 아이와 다닐 때면 유모차가 와도 유리문 잡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고, 화장실에 기저귀 갈이대가 있는 곳도 없다. 아기밥 달라고 한다고 욕은 하지만 아이용 메뉴 자체가 없는 식당이 대부분이다. 최근 외국 식당 같은 키즈밀이 가끔 보이기 시작한 수준이다. 개념 없는 엄마도 많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우리 사회도 그다지 아이 친화적이진 않다. 육아휴직 기간에 82년생 김지영처럼 공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주부 팔자 좋다고 옆에서 떠드는 것도 들어봤다. 그런 얘기를 면전에서 하는 사람이 진짜 존재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출산 이후 여자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다. 일을 하던 여자는 단기간에 강력한 사회적 단절을 느끼게 되어 많은 엄마들이 산후우울증이 올 수밖에 없다. 육아 자체도 힘든데 육아로 인한 경력 문제는 또 여자를 주저앉힌다. 애가 어릴 때 한창 아프면 휴가를 내고 데리러 가야 하는데 여전히 회사에서는 이래서 여자는 안 된다는 따가운 눈빛을 쏜다. 나의 경우에는 회사와 어린이집의 거리가 한 시간 반이라 애가 아프다고 데리러 갈 수도 없었다. 상황이 그러해도 아프다고 데려가라고 전화 오는 건 항상 엄마다. 죄책감도 괴로움도 육아 문제로 휴가를 내는 일도 여전히 엄마 몫이다. 못마땅한 표정의 남자 상사를 보며 남자인 네가 아내와 나눠서 휴가를 내면 여자들만 애 때문에 휴가 낸다고 욕먹을 일도 안 생긴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돈도 벌고, 애도 보고, 집안일도 해야 되고… 내가 20대였으면 나도 결혼 안 했을 것 같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정도로 힘들 줄 몰랐다. 복직 3개월도 안 돼서 대상포진에 걸릴 만한 삶이었다. 맞벌이 입장에서 보면 프랑스처럼 3세부터 의무교육으로 무조건 퇴근시간까지 보육을 강제하지 않는 한 이 나라 출산율은 올라갈 수 없다. 그리고 놀이학교 같은 사교육 허가는 차별 없는 보육의 질을 위해서 어릴 때만이라도 좀 안 했으면 한다.



거기다 보태어 ‘엄마라면 당연히-’로 시작하는 강력한 모성 신화마저 엄마를 짓누른다. 가뜩이나 칭찬 드문 한국 사회에서 엄마라면 당연하게 해내야 된다는 부담을 계속 씌운다. 아이에게 생기는 아주 작은 문제도 엄마 탓, 아이 언행도 무조건 엄마 탓, 아무튼 아이와 관련된 건 다 엄마 잘못이다. 엄마가 일을 하건 주부건, 한부모이건 엄마에게 바라는 잣대는 여전히 아주 엄격하고, 무조건적인 모성애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일하는 엄마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다.

엄마는 사실 외롭고 불안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별로인 엄마 같아서 괴롭고, 아이가 잘 크고 있나 항상 불안하다. 육아 프로그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회적인 기대치가 높아져 왜 그거밖에 안 되는 엄마냐고 비난하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항상 공감해 줘야지?! 엄마도 사람이라고요..



그뿐이랴. 겪어 보지도 못한 아이가 주는 기쁨, 보람만으로 출산을 강행하기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미래는 너무 암울하다. 나는 2016년에 결혼했는데 부동산 폭등기 2018년 후라면 무서워서 결혼 못했을 거 같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봉차, 최저시급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사무직 노동자의 박탈감, 2019년부터 펼쳐진 벼락거지의 삶 등 요즘 미래에서 희망을 보기란 매우 어렵다. 여간한 자신감이 아니면 이런 사회에서 내 능력을 믿고 밝은 미래를 꿈꾸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개룡남이 없어졌다는 말이 나오는 계급 고착화, 양극화 시대에 자본주의 금수저와의 콜라보로 희망이 없는 나라가 돼 가고 있다. 집안에 조금만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취준생이랍시고 집에 들어앉아있는 애매한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이 주위에 얼마나 넘치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나의 육아 목표는 성인이 되면 자기 앞가림하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게 되었다. 서른씩 되었는데도 원하는 곳에 취직을 한답시고 부모한테 얹혀사는 모습들이 무섭다.

회사원인 나도 중소기업과의 임금 격차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포기와 타협이 있어야 되는데 요즘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젊은이가 많은 것 같다. 지나가도 인사도 안 하는 신입 사원들을 보면 30대 후반에 내가 이미 꼰대가 되었나 싶지만 아무리 봐도 나를 포함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에 비해 정신력도 약하고, 희생정신도 없는 건 맞는 것 같다. 본인은 조금도 손해 볼 수 없지만 남을 위한 배려는 부족하다는 게 내가 받은 인상이고, 그런 세대가 암울한 미래에 더해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출산을 할 거란 기대는 별로 되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아이가 하나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가슴을 수없이 쓸어내렸다. 반면 좋은 오빠가 될 수 있다고 동생 가지고 싶다고 해사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너무나 외로울 것 같아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다. 아이의 미래도, 이 나라의 미래도 정말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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