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늪에서 건져 올린 삶 이후
딱 일 년 전까지 나는 항우울제를 4개월 정도 복용했다. 약만 먹으면 쓰러져 잤기에 그때의 기억이 많지는 않다. 약기운이 좀 가셔서 잠에서 깨면 눈을 뜨기도 전에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또 잤네, 애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아이는 매번 조용히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 후엔 불안해서 티브이를 틀어주기도 했지만 아이는 절대 나를 먼저 와서 깨우지 않았다.
내가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그때 아이는 겨우 4살이었다. 내가 먼저 엄마가 너무 졸려서 자야겠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지금의 아이는 내가 자면 계속 와서 깨운다. 들여다보고, 주위에서 왔다 갔다 하고, 그래도 안 일어나면 언제까지 잘 거야?! 나랑 놀아야지! 역정을 내는 평범한 아이이다. 작년에는 아니었다.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아이도 알았던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아이가 와서 들여다봤는데 약기운 때문에 내가 세상모르고 잤다면 그건 더 슬프지 않은가.
어제 아이가 아팠다. 아이는 5년 넘게 응급실을 가거나 크게 아픈 적 없이 대체로 건강했다. 15개월부터 기관에 간 터라 감기 정도는 달고 살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의연하게 넘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 왔다. 아픈 아이는 일찍 잠들었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 보니 돌 전부터 써온 이불 크기 대비 훌쩍 큰 아이가 갑자기 새삼스러웠다. 아기 때 개구리 모양으로 벌리고 자던 다리, 작고 동그랗게 말려있던 손 등이 기억나면서 눈물겨워졌다. 지난 시간 육아로 지치고 우울증을 앓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스러운 아이의 시절을 놓치고 있었을까 생각하니 미안하고 슬퍼졌다.
나의 예민한 내면 아이를 돌보느라 정작 소중한 나의 아이를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한 게 아닌지 뒤늦게
한스러워졌다. 이렇게 아이가 훌쩍 크는 동안 난 뭘 하고 있었나.
그 이후 우울한 정도가 일정 수준 낮아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다.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그날 털어버리지 않으면 다시 우울증이 올 거 같은 느낌이 밀려든다. 지독한 우울증은 다시는 항우울제를 먹고 싶지 않다는 위기감을 새겨줬고, 그와 함께 걱정과 불안이 높아졌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에 인터넷 카더라 정보를 얻고 확장되어 간다.
이 높은 불안이 우울증의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일상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 낫지 않았고, 평생 이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