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은 없었고, 나는 혼자였다”
2005년 여름.
유난히도 뜨겁고, 마음까지 지치게 만들던 계절이었다.
1년 전, 2004년 여름에 독일에서 돌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실패한 인생’이라는 무거운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할 수 있는 건 클라리넷밖에 없었다. 마치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줄을 겨우 붙잡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연히 지휘자 선생님을 알게 되어 오케스트라 공연도 다니고, 앙상블 팀을 꾸리며 활동을 이어가긴 했다. 하지만 미래는 늘 안개 속이었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스쳤다.
귀국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밑바닥 인생’이라는 자책이 지워지지 않았다.
매일같이 부정적인 생각들에 잠식된 채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지?’
그 시절, 나에게 가장 무서웠던 건 시간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과 마주한 스물아홉의 여름…
그 여름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거라는 건, 그때의 나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