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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night Jul 28. 2023

학교, 익숙한 구조를 낯설게 바라본다면

2014.8.11 / 2016.7.31 

2014. 8. 11  


선생님, 

오늘 아침에는 마음이 조금 더 들떴습니다.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고 불리는 덴마크의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가기로 한 날이거든요. 오래선드 해협 너머로 스웨덴이 바라다 보이는 해안가에 자리 잡은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전 세계의 미술애호가들을 불러 모으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건물의 대부분은 단층(1층짜리 건물)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벽의 한 면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는 데다가,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출입구를 곳곳에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지요. 이런 구조적 특성상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미술관의 내부와 외부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고, 자연이 건축의 일부로 들어와 서로를 껴안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마치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에 올라가 앉았을 때 누각의 기둥과 기둥 사이로 낙동강 건너편의 병산이 마치 병풍에 걸린 그림처럼 건축에 스며드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전시실도 있었어요. 어떤 분이 미술관 건물을 설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연과 문명을 분리하지 않고 이 둘을 관계론적으로 사고하는 동양적 세계관에 익숙한 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아무튼 이런 구조적 특징 때문에 관람객들은 미술관 내부의 동선을 따라 계속해서 미술관 안팎을 들락날락하게 됩니다. 외부와 끊임 없이 소통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걸까요?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이 유달리 천진난만해 보였어요. 마치 소풍을 온 아이들처럼요.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연상케 하는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한 전시실 ⓒ starry night
자연을 건축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루이지애나 미술관 ⓒ starry night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보며 학교 건축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도 이처럼 아이들을 자연 그리고 타인과 소통하게 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학교 건물이 단층으로 되어 있고, 통유리벽과 정원을 통해 외부의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쉬는 시간에 조금의 지체도 없이 친구들과 밖으로 나가 놀 수 있게 출입문을 많이 만든다면 생각만으로도 참 행복한 학교생활이 될 것 같아요. 건축과 공간이 인간의 행동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참 크다고 생각해요. 무뚝뚝해 보이는 어른들도 관람 도중에 건물 안팎을 들락날락하며 산책을 즐기고, 햇살 좋은 잔디밭에서 여유롭게 낮잠을 자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이런 학교에서 생활한다면 얼마나 즐거워할까요? 


많은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직선 구조를 층층이 쌓아 올려 만든 대부분의 한국 학교는 마치 좁은 닭장에 닭을 가둬놓고 키우는 양계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건축과 공간이 먼저 바뀌어야 할까요, 사람들이 먼저 생각과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 할까요. 저는 공간과 건축에 변화를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의 배치와 연결, 공간의 구조, 동선, 채광, 재료의 물성과 같은 건축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생활 방식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오늘 저는 어린이를 위한 미술관 아뜰리에에서 중요한 경험을 했어요. 구석에서 네 명의 아이들이 레고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아이들이 얼마나 놀이에 몰입을 했던지 제가 가까이 다가가도 모를 정도였어요. 레고 놀이에 열중한 아이들을 보면서 어린이들이란 어떤 존재인지, 아이들의 특성이 어떤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직접 무언가를 함으로써 몰입을 경험하고, 그때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사실 말이지요. 무언가 스스로 해봄으로써 배움에 대한 호기심, 흥미, 열정을 유지하고 몰입하게 되는 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여행도 그런 것 같아요. 단체관광버스나 택시 같이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려 훑고 지나간 길은 아주 쉽게 잊히지만, 지도를 들고 직접 더듬어 가며 한 발 한 발 누빈 길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더군요. 생면부지의 장소에서 직접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비로소 우리의 호기심과 관찰력은 증폭되고 낯선 사회를 깊이 체험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오늘 하루 코펜하겐 중심부를 벗어나 기차를 타고 소풍 가는 기분으로 찾은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뜻하지 않게 학교 건축에 대한 새로운 상상까지 덤으로 안고 돌아오는 제 마음은 이번 주 내내 코펜하겐 전체를 감싸고 있는 재즈 선율처럼 자유롭고 흥겹습니다. 덴마크의 기차표 가격 또한 저로 하여금 상상력을 진땀 나게 발휘하도록 만들었지요. 물론, 그 가격에는 인간의 육체노동을 충분히 존중하고 땀 흘린 만큼 누려야 할 소득을 보장해 주려고 하는 이 사회의 합의가 담겨 있음을 잘 알기에 흔쾌한 마음과 떨리는 두 손으로 저를 루이지애나로 데려다준 타인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이 도시는 어떤 예기치 않은 선물을 선사할까요?


코펜하겐에서,

J 드림


2016. 7. 31. 


선생님,

뚜르꾸에 잘 도착했어요. 올여름은 ‘뜨거운, 습한, 조마조마한, 흥미진진한’이라는 형용사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여름 초입부터 장마가 끝날 때까지 한국에서 학교 네 군데를 돌며 현장연구를 진행했으니 말이에요. 한국에서 싸들고 온 인터뷰 녹음 파일과 관찰 일지를 풀고 들여다볼 걸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현장연구를 마쳤다는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선생님께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그 넓은 서울에서 어떤 학교를 선택하는 게 좋을지, 교사 섭외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척 막막했을 거예요. 도와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번 현장연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편지로 전해드리고 싶어요. 물론 나중에 박사논문이 나오면 드리겠지만(언제 그런 날이...), 메이킹 필름도 영화 본편만큼 재미있잖아요.


논문 연구에서 제일 힘든 과정이 바로 연구에 참여할 학교와 선생님들을 알아보고 허락을 받는 과정이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뜻인지 뼛속까지 깨달았어요. 인터뷰만 하는 게 아니라 교실 뒤편에 앉아 아침부터 마칠 때까지 관찰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신 선생님들이 거절하실 때마다 얼마나 속이 타들어가던지요. 한국 선생님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국 문화의 영향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으실 테니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면서도요. 그리고 아직까지 연구자들이 학교로 찾아가서 아이들의 생활을 관찰하는 질적교육연구가 많지 않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핀란드 선생님들은 어땠냐고요? 헬싱키나 뚜르꾸 같은 주요 도시에 있는 학교들은 핀란드에서 교육연구를 진행하려는 연구자들의 넘쳐나는 협조요청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보니 학교를 섭외하긴 무척 힘들었지만 일단 교장선생님께 연구 허락을 받고 나서는 선생님들께 수업 관찰에 대한 허락을 받는 건 무척 쉬웠어요. 뭐, ‘어디서 연구하는 애가 또 왔구나’ 하시면서 교실 한 구석에 앉아 꾸미지 않은 날것의 수업과 일상을 지켜보는 걸 별로 신경 쓰시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신경 쓰실 이유가 전혀 없었죠. 저는 정장을 차려입은 선생님과 허리를 바짝 세운 학생들이 뭔가 잘해보겠다는 결연한 눈빛으로 진행하는 공개수업을 보러 간 학부모나 장학사가 아니라 일상의 단맛, 쓴맛, 심심한 맛이 섞여 있는 학교생활을 보러 간 연구자였고, 보고 들은 내용은 모두 익명으로 처리될 테니까요. 아, 그리고 핀란드 선생님들은 제가 연구 기간 동안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어렵사리 섭외한 한국 선생님들은요, 모두 제가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있도록 행정실에 알아봐 주셨고, 어떤 분들은 점심시간에 교직원들이 앉는 자리에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불러주시기도 했지요. 저의 관심은 아이들이 어떻게 점심시간을 보내는지에 온통 쏠려 있었지만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 선생님들과 같이 점심을 먹기도 했어요. 그렇게 쿨내가 진동하는 핀란드 선생님들과 주인장이 되어 나그네에게 환대를 베푸시는 한국 선생님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비교문화의 냄새를 맡은 저는 이것 역시 질적연구의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되겠구나 생각하며 생선을 입에 문 고양이의 표정을 지었지요. 


그렇게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관찰할 수 있게 된 저는 학교라는 공간과 그 구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특히 인상적인 건 교무실과 교장실이었는데요. 핀란드에서 연구를 진행했던 학교의 교무실에 가니 빨간 소파와 갈색 패브릭 의자, 그리고 찻잔을 놓을 수 있는 둥근 원목 탁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천장에는 원기둥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조명등이 달려 있었고요. 마침 선생님 네 분이 소파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중 한 분이 교장선생님이었는데 앉아계신 모습만 봐서는 어느 분이 교장선생님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어요. 다른 한쪽에는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책상과 등받이가 없는 스툴이 놓여 있었는데 거기서 선생님 두 분이 노트북을 올려놓고 일을 하고 계셨어요. 벽에는 큼직한 회화 작품이 걸려 있었고, 교무실 한켠에 마련된 주방에는 싱크대와 수납장, 식기세척기도 구비가 되어 있었지요. 그 옆에 있는 교장실도 살펴봤어요. 교장 선생님의 업무용 책상과 책장 정도만 겨우 비치되어 있는 작고 소박한 분위기의 방이었어요. 그보다 더욱 인상적이던 건 교장실 문 앞에 ‘kurssilla(수업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는 거예요. 교장선생님도 일주일에 네다섯 시간 정도 수업을 하시면서 학생들을 직접 만난다고 하시더라고요.

핀란드 어느 학교의 교무실 ⓒ starry night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근무를 했던 학교나 현장연구에서 보았던 학교의 교무실과 교장실 풍경을 말씀드릴게요. 선생님께도 너무나 익숙한 모습일 텐데 교무실에 들어서면 앞쪽 벽에 태극기와 학교 현황표가 붙어 있고 바로 앞에 교감 선생님 책상이 있었어요. 핀란드에서 본 교무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교무실에 들어선 사람의 시선이 앞쪽 중앙을 향하도록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라는 거예요. 또, 교감선생님 책상 위에는 직위와 이름을 명조체로 새겨 넣은 검은색 명패가 놓여있고 사무용 가구들은 다들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어서 질서와 위계가 더욱 강하게 형성되지요. 교장실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 본관 1층의 중앙 현관 근처에 있잖아요. 한마디로 학교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거죠. 사실 접근성만 놓고 보자면 교장실보다는 휠체어를 타는 학생이나 교사가 있는 교실이 그 위치에 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봐 온 교장실은 모두 일반 학급 교실 한 칸 크기는 되어 보였어요. 학교에서 유일하게 자기만의 방을 가진 교장선생님의 전용 공간이 학생들과 교사를 합쳐 서른여 명이 북적대는 교실과 같은 크기인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가죽 소파와 탁자, 냉장고, 커피 머신 같은 시설들도 교장실 안에 갖춰져 있었죠. 이렇게 교무실과 교장실을 비롯해서 학교 공간 전체가 위계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묻거나 명패를 보지 않아도 어느 분이 교장, 교감선생님인지 알 수 있었어요.


예전의 제 경험을 떠올려 보면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수업을 하는 학급 교실이나 수업 공간을 꼼꼼히 살펴보려고 했지, 교무실이나 교장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런데 현장연구를 하게 되어 인사를 드리기 위해 교무실과 교장실을 드나들게 되면서 이 두 공간이 학교 전체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고, 어떤 질서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학교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생각을 했어요. 교무실과 교장실의 배치와 내부 구조가 위계질서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 있는 학교는 학급과 학급 사이, 학년과 학년 사이에 단절이 강하고,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이 오며 가며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유기적인 공간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렇게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공간에선 관리자와 교직원 사이에, 또 교직원과 학생 사이에 활발한 소통이 일어나는 민주적인 학교를 기대하긴 힘들 거예요. 


비록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누군가가 허락해 준 공간에 초대되어 그들의 일상을 지켜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친해지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진행한 이번 연구는 저에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에서 인류 사회의 공통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어요. 교사로 근무할 때 학교란 그저 정신없이 일거리를 쳐내다가 나오는 곳이었는데 연구자의 입장으로 다시 찾은 학교, 그 속에서 펼쳐지는 관계를 관찰하면서 일지를 끄적이다 말고 이게 웬 호사인가 생각했습니다. 학교를 좀 안다고, 면담하고 관찰했다고 한 인간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전지적 작가의 오만함을 내려놓고 관찰자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이들과 선생님의 학교생활에는 급식처럼 평범하면서도 필수영양소를 고루 갖춘 이야깃거리가 들어있었습니다. 갓 구워낸 따끈따끈한 메이킹 필름 어떠셨나요. 바쁘신 중에도 기꺼이 현장연구의 물꼬를 터주시며 제가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 이번 편지를 읽으시면서 잠시 하던 일 멈추고 웃음 지으셨으면 하는 욕심과 바람 가져봅니다.


뚜르꾸에서,

J 드림


*커버 사진 ⓒ starr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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