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22
선생님,
어느새 찾아온 여름 무더위 속에서 업무에 더해 강연 일정까지 소화하시느라 고생 많으시죠? 저도 한국에 있을 때 더위로 손꼽히는 동네인 대구에서 살았습니다. 한국의 여름 하면 제게 떠오르는 것은 거리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에어컨 환풍기와 아스팔트 도로가 뿜어내는 열기,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뿜어내는 열기, 그리고 제가 살던 원룸에 찾아들었던 불청객 곰팡이입니다. 한국에선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살갗에 철썩 달라붙는 눅진한 공기로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지요. 이곳에 찾아오는 여름의 전령은 이른 아침부터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 짝짓기를 한다고 부산을 떨며 아침잠 많은 저를 기어코 잠에서 깨우는 새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 밤 아홉 시에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것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오래 떠 있는 해입니다. 그뿐인가요, 식물들은 마치 성장촉진제를 맞은 것처럼 이때다 하며 폭발적인 속도로 그들의 유전자가 부여한 청년기의 과업을 치릅니다. 북유럽의 생명체가 일 년 내내 손꼽아 기다려 온 여름이 시작되려 하는 지금, 갑자기 수다스러워지고 크게 웃기도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질 생각에 들떠있는 이곳 사람들을 지켜보는 저로서는 그들의 감정적 변화가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네요. 핀란드에서 이 시기 단연 최고의 뉴스는 정치‧사회면도, 국제면도 아닌 날씨인데 보통 두 개 정도의 날씨 예보 서비스를 비교해 볼 정도로 열성이지요.
한국과는 다른 기후를 경험하며 몇 해를 살다 보니, 날씨를 비롯한 여러 가지 환경이 사람들의 감정과 사고방식, 그리고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집이나 학교 같은 건축물도 그중에 하나가 되겠네요. 핀란드에서 첫겨울을 보내면서 들었던 생각은 겉보기엔 수수하고 평범한 건물이 안에 들어섰을 땐 참 견고하고 따뜻하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의 집처럼 온돌이나 보일러가 주는 바닥의 뜨끈뜨끈함은 없지만 현관문과 창문을 이중으로 해놓고 마무리를 빈틈없이 해놓았기 때문에 바람이 새어 들어오지도 않고, 건물 복도에도 라디에이터가 있어서 실내에서 외투를 벗어도 춥지 않아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제일 저렴한 학생용 주택이지만 그런 견고함 덕분에 집 안에서는 날씨로 인한 고생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네요. 일 년 중에 겨울이 다섯 달 정도 되는 이곳 사람들은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집이나 건물에 대한 마음도 그만큼 더 각별한 것 같아요. 제 핀란드 친구는 ‘핀란드 사람들에게 집이란 작은 성(castle)’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건물도 튼튼하게 짓고 난방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집안을 꾸미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답니다. 이렇게 의식주 중에 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학교 건축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한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핀란드의 학교는 학습이나 사무 공간을 넘어 주거 공간에 좀 더 가까운 형태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복도에도 난방을 하고 교사 휴게실에는 싱크대, 냉장고, 전자레인지, 식기 세척기가 비치되어 있더군요. 제가 있는 대학에도 교직원들이 커피를 끓이고 점심을 준비해서 먹을 수 있는 주방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고요.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핀란드에는 혁신적인 학교 건축으로 유명한 학교들이 있지요. 그중에 한 곳이 직접 방문하셨던 야르벤빠 고등학교(Järvenpään lukio)*인데요, 이 학교 건물을 지을 때 변화하는 교사와 학생의 역할, 그리고 학습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교직원들의 교육 철학을 건축 설계 과정에 반영했다고 해요. 사실 이 학교의 독특한 원형 구조는 19세기 영국의 공리주의 정치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창안한 원형 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파놉티콘의 중앙에 재소자들을 감시할 수 있는 탑이 설치되어 있다면, 야르벤빠 고등학교 건물에는 그 탑이 없는 대신 1층 가운데에 아레나라고 불리는 실내원형광장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네요. 저도 이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교실에서 내려와 아레나에서 즉석 공연을 하고 구경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건물 구조가 원형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실에서 나오는 즉시 1층의 아레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쉽게 알고 모일 수 있겠더라고요. 감시와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근대 감옥 파놉티콘이 소통과 교류를 위한 현대 학교 건물로 바뀐 셈입니다.** 이런 실내 광장 공간은 이 학교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푸투룸 종합학교(Futurum Framtidens Skola)***와 헬싱키의 라또까르따노 종합학교(Latokartanon peruskoulu)****에서도 볼 수 있었어요. 실내 광장이 학교 건물의 중심에 있고 문으로 막혀 있지 않은 개방형 공간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을 지나가게 되지요. 점심시간에는 식당으로 사용하고, 지나가다가 잠시 앉아서 쉬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공연장으로 사용하는 다목적 공간이었어요.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건축 구조가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말하면서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감시와 통제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으로 18세기의 감옥, 군대, 학교 건물을 그 예로 들었지요.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주어진 일을 시키는 대로 하는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 이런 학교 구조가 유용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일자형 복도, 칸마다 벽으로 분리된 교실, 시간표와 종, 상벌점제, 학생생활기록부, 시험과 서열화로 대표되는 통제와 구분은 여전히 현대의 학교에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야르벤빠 고등학교와 같은 혁신적인 학교들은 이런 구조에 문제의식을 갖고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학교건축을 고민하던 사람들에 의해 탄생했을 것이고요. 영화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에서 휴 그랜트가 ‘인간은 섬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문득 생각나요.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학교 건물 구조가 교사들을 외로운 섬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복도를 따라 일렬종대로 늘어선 사각의 교실에 각자 앉아 쏟아지는 업무를 테트리스 게임 하듯 쳐내고 있지요.
참, 헬싱키의 라또까르따노 종합학교에도 교사들의 교육 철학이 건축에 스며들어 있었어요. 무학년제로 유명한 이 학교 안에는 다섯 개의 작은 학교, 즉 홈그룹이 있어요. 그리고 하나의 홈그룹 안에는 대여섯 개의 교실과 복도, 쉼터 등이 있고 1학년부터 9학년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120여 명의 학생들이 하나의 홈그룹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데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집과 비슷한 편안함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요. 기본적인 학년 개념은 있지만 과목에 따라서는 비슷한 학년끼리 묶어 좀 더 유연하게 반을 편성해서 수업을 하기도 한다네요. 그리고 같은 연령대의 아이들이 동학년이라는 이름으로 한 군데에 몽땅 모여 있지 않고 여러 홈그룹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과 같은 문제들이 많이 줄어든다고 해요. 제가 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교실 두 개가 투명한 유리벽과 문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마침 4-5학년반인 레빠반과 6학년 반인 빠유반의 담임선생님 두 분이 수업시간에 두 교실과 복도를 활용해서 총 세 개의 코너를 마련해 놓고 모둠별 협동학습을 함께 진행하고 계시더라고요. 물론 어떤 동료를 옆반 선생님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겠지만 저처럼 동료 교사들과 자주 상의하고 수업도 함께 준비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마침맞은 교실 구조라고 생각했어요.
박사과정 유학을 오기 전 제가 영어 전담교사로 있을 적에 5학년 수업 시간이었을 겁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생활과 학교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고 표현해 보도록 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은 지난 시간에 제가 보여 준 핀란드의 라또까르따노 종합학교, 야르벤빠 고등학교와 스웨덴의 푸투룸 종합학교가 인상에 많이 남았나 봐요. 많은 아이들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별 모양이나 개미집 모양 같이 학교 공간이 긴밀하게 얽혀 있고 건물 가운데 모일 수 있는 소통 공간이 있는 유기적인 건물을 그리고 있더군요. 또 아이들은 원하는 학교의 모습에 잠시 낮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나 쉴 수 있는 공간을 그려놓기도 했고요, 요리하고, 실습하고, 체험하는 등 몸으로 직접 하는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었어요. 대한민국 대도시의 중산층이 모여 사는 브랜드 아파트와 그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학교, 그리고 학교 주변에 포진해 있는 학원. 이 사각의 공간들을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오가는 직선의 삶을 살아가는 그 아이들은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수다를 떨고 딴짓도 하고 쉬기도 하는 원형의 공간과 시간이 참 부러웠나 봅니다.
저도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교직원들의 교육 철학을 반영한 건축, 아이들이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안정감과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학교, 인간이 원자화되고 소외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교류와 소통의 공간을 마련한 구조, 교사 사이를, 학생 사이를 그리고 교사와 학생 사이를 보다 민주적으로 이어 줄 수 있는 학교 건축, 아이들의 미적 감수성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디자인, 옛 건물을 현대의 쓰임새에 맞게 고치고 다듬어 아이들이 장소에 담긴 시간과 공간의 흔적과 교류하게 하는 학교, 그리고 주위의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학교를 생각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건축과 디자인이 존재하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 집니다.
여름이 곧 신과도 같은 북유럽에서는 하지가 아주 큰 명절입니다. 그저께는 하지를 이틀 앞두고 강가에서 밤 없는 밤을 새우며 보냈습니다. 한밤에도 하늘이 채 깜깜해지지 않은 채 푸르스레하게 남아 있다가 이른 새벽부터 붉그스레한 여명이 대기 중에 떠다니는 이곳의 백야는 외지인들을 매혹하지요. 저는 백야의 기운 속에서 뜬금없이 한국의 여름 날씨와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정이라고 불리는 폭넓은 마음 씀씀이가 때로는 지나친 간섭과 갈등으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습기를 잔뜩 머금은 여름 공기처럼 왕성한 에너지로 사람과 사람을 이으면서 일을 벌이는 한국 사람들의 성정은 아마 여름 날씨를 빼닮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름에 한국 갈 일이 생기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습기와 무더위를 맞이해야겠어요. 여름 잘 보내시고요, 읽고 쓰고 강연하실 일이 많은 만큼 눈과 목 건강을 잘 챙기시길 바라면서 선생님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뚜르꾸에서,
J 드림
* 야르벤빠 고등학교 홈페이지 https://jarvenpaanlukio.fi/
** 학생들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아레나에서 즉석공연을 벌이고 다른 학생들이 모여들며 서로 교류하는 모습은 다음 기사(핀란드어)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http://www.jarkimagazine.fi/kaksikymmenta-minuuttia-hyvaa-musiikkia/
*** 푸투룸 종합학교 홈페이지
https://www.habo.se/utbildning-och-barnomsorg/grundskola/grundskolor/futurum.html
**** 라또까르따노 종합학교 홈페이지
https://www.hel.fi/peruskoulut/fi/koulut/latokartanon-peruskoulu/
***** Foucault, M. 2003.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 나남출판. 213-347쪽 참고.
****** Rittelmeyer, C. 2005. 느낌이 있는 학교 건축. 송순재, 권순주 옮김. 내일을 여는 책. 206-210쪽 참고.
******* 커버 출처: http://www.jarkimagazine.fi/suvaitsevaisuusviikon-kuvasatoa
(사진: Jonna Koskin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