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ry night Oct 21. 2023

왜, 가게 되었는가? 왜, 글을 쓰는가?

2014. 2. 9  

왜, 가게 되었는가? 왜, 글을 쓰는가?

선생님, 

지난밤에는 끝도 없이 눈이 내렸습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나 비가 다시 내릴 것처럼 온통 잿빛입니다. 그 하늘 밑으로는 잎을 모두 떨구어 낸 나무들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런 겨울 날씨 속에서 햇빛 한 줄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 중 한 명이긴 하지만, 사실 글을 쓰거나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북유럽의 겨울 날씨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제저녁엔 설거지를 끝낸 다음 집 근처에 있는 아우라 강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면서 소복이 쌓인 눈이 달빛과 가로등의 불빛 아래에서 반짝거리는 오묘한 광경을 보고 있으면 (핀란드의 눈은 습기가 적어 뭉쳐지지 않는 대신, 밤하늘 불빛 아래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신비한 특성이 있어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오릅니다. 이곳에서 글을 쓴다는 건 저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핀란드는 도대체 왜 가니? 지금까지 제가 아마 백번도 넘게 들은 질문일 겁니다. 그리고 박사과정 유학을 위해 다시 핀란드로 떠날 것을 결정하기 전 제 자신에게 수없이 물었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저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모아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했던 경험이 있어요. 그때 중국 윈난의 어느 모계사회 오지마을에서 일주일을 머물면서 마을 사람들의 농사일을 거들기도 하고, 그 사람들처럼 꼬박 두 시간을 걸어 시장에 가는 생활을 함께 하면서 제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회를 스쳐가듯 살펴보는 관광객이 아니라, 그 사회에 오래 머물면서 질적인 시선으로 좀 더 깊게 들여다보는 체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지요. 그런데 그 사회가 핀란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네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핀란드인들의 일상을 에워싸고 있는 보편복지를 지켜보는 관찰자이자 때로는 직접 수혜를 누리기도 하는 외국인 유학생이었던 저에게 핀란드라는 나라는 흔해빠진 저상시내버스조차 탐나는 글쓰기 소재로 다가오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처음 이년 반 동안의 석사과정 유학생활은 낯선 사회가 저를 양적인 새로움과 호기심으로 압도했던 시간이었지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학교에서 근무를 하다가 다시 핀란드로 와서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두 번째 유학 생활은 이 사회가 저에게 주는 어느 정도의 익숙함 속에서 질적인 새로움을 발견하고 한국이라는 사회와 견주어보기도 하면서, 그 속에서 생각을 키워가려고 시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듯 핀란드 생활을 통해 좋은 시선이 담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다시 유학을 결심하게 된 동기 중 하나가 되었지요. 어쨌든 저로서는 낯선 사회라는 글감을 통해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다시 가지게 된 셈입니다. 


그런가 하면 20대의 배낭여행과 지금의 유학생활을 통해 그동안 저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탑승교(boarding bridge)를 따라 몇 발자국 디뎠을 뿐인데 살갗에 와닿는 공기의 습도와 비행장에 쏟아지는 햇살을 감지한 제 몸은 이제 대한민국의 인천공항에 도착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곤 하지요. 빵빵한 성능의 스피커를 타고 뿜어져 나와 온 거리에 울려 퍼지던 상점의 노랫소리를 예전엔 분명 무심히 듣고 스쳤을 텐데 이젠 제 고막에 통증으로 다가올 때마다, 가게의 점원들이 모든 단어에 존칭 어미를 갖다 붙이며 공손하게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마다, 저의 감각기관과 촉수는 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습관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한국의 일상을 달리 보게 해 줍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교육학 공부도, 그리고 앞으로 하게 될 논문 연구도 누구나 경험해 보았기에 다 안다고 생각하는 학교의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낯선 학교의 풍경에서 보편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발견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대학 연구실과 학교 바깥에서도 친숙한 것을 낯설게, 또 낯선 것에서 사람살이의 친숙함을 발견하려는 두 개의 시선으로 학교와 교육을 아우르고 있는 사회를 유심히 봐두었다가 제 느낌과 함께 편지로 전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곳 대학에서 하는 일 역시 어차피 글을 읽고 쓰는 일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저의 하루는 글로 시작해서 글로 끝나는 겁니다. 제가 마침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네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핀란드라는 나라는 글을 쓰거나 피아노를 연습하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춥고 긴 겨울에 밖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고, 날씨는 몇 시간씩 책상머리나 피아노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제 감성을 자극하고, 게다가 한국에서처럼 시시때때로 전화기가 울려대거나 메시지가 날아들 일도 없으니까요.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이면 제 자신을 책상 앞으로 불러 앉힌 다음 글을 씁니다. 그렇게 제가 쓰는 글은 일차적으로는 제 내면과의 대화이고, 또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제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건네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글을 쓴다는 건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뜻이고, 그렇게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라는 건 결국, 혼자 생각하는 일을 즐기지만 그 생각의 끝에는 늘 타인과의 소통을 늘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이 만들어 낸 이야기일 겁니다.


글은 제 사유가 조금씩 자라온 궤적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성장 일기 같은 것이겠지요. 제가 이 책의 초반부에 보낸 편지들을 나중에 다시 꺼내어 읽어본다면, 제가 보기에도 분명히 편협한 사고가 눈에 띌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 번 보낸 편지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닌 까닭에 거둬들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적 자극과 경험이 쌓여 제 생각이 변화한다면 때로는 이전의 생각을 뒤엎기도 하면서, 그렇게 성장의 여정을 진솔하게 드러내 보이도록 할게요. 


저녁이네요. 선생님과 편지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이곳 학생주택 6B 블록의 2층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웃 D와 M 그리고 저는 일주일에 세 번 서로 번갈아가며 저녁을 준비하고 함께 밥을 먹고 있지요. 오늘은 제가 준비하는 날이에요. 메뉴는 새우튀김을 얹은 카레라이스와 오이 상추 겉절이입니다. 선생님의 추측대로 문화와 문화 사이에서 음식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익어가고 있는 공동부엌이지요. 


새우튀김을 얹은 카레라이스와 오이 상추 겉절이 ⓒ starry night

이미 내일이라는 현재에서 주무시고 계실 선생님께 아직 오늘을 살고 있는 제가 편지 보냅니다. 그럼 저는 이만 공동부엌으로 가볼게요. 


J 드림.

 


* 커버 사진 ⓒ starry nigh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