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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Dec 06. 2023

D-365

도전 혹은 유지 그것이 문제로다. 

현재까지 퇴사자 13명


이 번달에는 3명이 나갔다. 하루가 다르게 회사는 가라앉고 있었다. 정상적인 구조였으면 없어졌어야 했지만, 회사는 아직 살아있다. 다행히 월급은 아직 들어오고 있다. 이 회사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니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회사에 입사한 지 어느덧 5년은 훌쩍 넘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전문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5년 동안 낚시를 하던, 커피를 만들 던, 무언가 했었다면 어느 정도의 레벨이라도 있을 텐데, 아쉽게도 단순한 시간과 돈의 등가교환만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지금껏 이 등가교환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는지 모름에도 매달 나오는 월급에 취해있었다. 능력은 입사 전보다도 하락하고 있었음에도 나이가 들고 있음에 그런 것이라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던 중 자주 먹던 김치찌개는 올초 7천 원이였지만 이번 달에 만원이 되었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음에도 안일하게 살아왔던 시간이, 그리고 감춰있던 무력함이 시간 속에서 김치찌개 묵은지처럼 숙성되어 있었다. 시쿰하다. 그리고 그 시쿰함이 굶주림을 잠시 잊고 지내던 나의 포도청을 할퀴기 시작했다. 이번 시쿰함은 취준 때와는 달랐다. 연봉은 줄어들었고, 밖의 물가는 한 없이 올라만 갔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물론 강압적으로 직장을 잃어버리지는 않겠지만, 확실한 것은 자의든 타의든 정체 혹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더 이상 묵인한다면, 이제 김치찌개조차도 단념한 채 살아가야 함을 계좌의 잔액은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그 단어를 내 귀로 들을 수 있었다. 


'OVER TO' 


"부서가 없어지고, 정원이 축소되어 오버티오를 정리하려 하니 준비해라!"


모 차장이 나에게 말하였다. 불과 작년이었으면, 한숨부터 나오고 어찌해야 하나 걱정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더 이상의 미련은 남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급격한 내리막을 타기 시작한 회사는 예상보다 더 빨리 하락하고 있었고, 그 낌새를 눈친 챈 이들은 그전부터 준비해 나가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할만할 수도 있겠다.' 


내심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해야만 할 수도 있다. 어차피 남은 시간은 1년이고, 직감적으로 지금의 조직은 1년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 보였다. 


'1년이면 나는 변할 수 있을까? 두려움을 떨쳐내고 밖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쯤에는 항상 주변에서 춥다고 곡소리만이 들려온다. 주변 사람들 누구 하나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지 않는다. 시도도 못해보고 다시 한번 좌절감을 느낀다. 이제 3회 초가 이제 막 끝났는데, 마치 콜드패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무사 주자 만루도 아니었지만, 패배감이 벌써부터 몰아쳐 온다. 억울함이 그리고 자신한테 느껴지는 분노감은 모든 인생을 외면하듯 12월의 칼바람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나는 기로에 서있었다. 그 순간 경력이라는 무기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365일이 남아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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