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Umbria
고속도로를 달리며 내다본 창밖에는 올리브밭이 펼쳐지다가 포도밭이 펼쳐지다가 다시 올리브밭이, 또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바다에 눈길이 간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 한여름의 어느 날, 우리는 풀리아 주를 떠나 몰리세 주(Molise)를 지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그곳을 그대로 통과해 오후 늦게 아브루초 주(Abruzzo)에 들어섰다.
우리는 움브리아 주로 올라가는 중이어서 이 두 개 주에서는 아무것도 구경하지 않고 달리기만 하다가 저녁에 아브루초 주의 한 오토캠핑장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냈다. 온 가족이 수제맥주 양조장과 바와 오토캠핑장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남편이 이곳에서 만든 맥주를 두 병 사 와서 창밖을 보며 하나씩 마셨다. 오토캠핑장이 언덕 위에 있어 풍경을 감상하기 좋았다. 낮은 언덕들과 산등성이마다 올라앉은 작은 마을들이 귀여웠지만 나는 풀리아의 바다가 그리워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탈리아의 여름 휴가는 7월 15일에 시작되어 공식적으로는 한 달, 체감상으로는 한 달 반쯤 이어진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 사람들이 이탈리아 해변으로 몰리는 기간이다. 우리는 이 시기의 극단적인 인파와 성수기 물가를 피해 시어머니댁에서 여행을 잠시 쉬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풀리아 주에 며칠 더 머무르다 천천히 돌아가도 됐지만, 휴가철이 시작되자마자 휴가를 떠나는 피노와 시어머니를 대신해 집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기로 남편이 이미 약속을 해 버려서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에 꼭 돌아가야 했다. 나와는 상의 없이, 게다가 원래 늘 부탁하던 사람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오래 준비해서 이제 겨우 장기 여행을 떠나왔는데 한 달 반도 안 되어 급하게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수기에 여행을 쉬는 것도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풀리아 주까지 다시 내려오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아마도 다시는 갈 수 없겠지.. 이미 결정된 일이니 속상해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어쩔 수 없이 속이 상했다.
(전자책 발간 예정으로 이하 내용은 삭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