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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Oct 28. 2024

사실 시험은 좋은 겁니다

메타인지의 출발, 시험 효과



밤늦게 잠을 청했다. 학생들은 시험 종료와 동시에 비교적 홀가분한 마음으로 누릴 시간이지만 교수들은 채점으로 남은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는다. 아직 학기가 종료되지도 않았건만 무슨 채점 타령이냐 묻는다면, 모든 강의마다 중간고사 성적을 곧바로 공개하기 때문이다. 다소 번잡스럽고 귀찮아도 고집스럽게 이 패턴을 고수하고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현재 상태 중간 점검 역할을 톡톡히 주리라 믿는 마음에서다. 

 

 

'시험 효과(test effect)'에 대해 알고 있는가. 사실 시험은 좋은 것이다. 학습 성과를 단순 점수로 평가해 버리는 수단, 성차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용도로 전락해 버린 탓에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버린 현실이 몹시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시험의 순기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점검해 보면 좋겠다. 시험의 용도를 배제하고 원래 시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그 정의를 살펴보자. 기억 속에서 지식을 인출하는 행위가 곧 시험인데, 이러한 행위는 해당 지식을 나중에 더 떠올리기 쉽게 해 준다. 달리 말하면 시험은 학습과 기억에 상당히 효과적이다. 공부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이것이다. "어렵게 외우면(학습하면) 잊기 힘들다" 공부를 하면서 빈번하게 스스로를 시험해 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우리는 해당 내용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막상 백지에 써 보려고 하면? 진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어차피 치러야 하는 중간고사라면 각자의 점검, 검열의 수단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당연한 수순이다. 간략하게나마 시험 문제를 되짚어주고(대학은 더 그런 것 같은데, 시험이 끝나고 나면 다시 들춰볼 일이 참 적다. 다시 말하면 거듭 반복하여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각자의 성적을 공유함으로써 내가 어느 부분이 취약했는지, 어떤 부분을 더 보강해야 하는지 등을 확인케 한다. 실제로 학기가 끝나고 부여되는 성적에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외에 과제, 발표, 출석, 실험 참가 등 시험 외에도 관리해야 하는 점수들이 있으므로 그것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도 가능해진다. 

 

 

강의실 스크린에 전체 성적을 공개하지만 개인 정보는 아무것도 공개되는 것이 없다. 사전에 자신만의 성적 확인용 고유번호 자리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 고유번호와 함께 중간고사 성적과 석차, 평균 등을 가감 없이 공개해 준다.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은 같은 패턴과 무게로 기말고사를 준비하면 될 터이고 설령 성적이 다소 낮다고 해도 기말고사에 어떤 식으로 준비하는 것이 보다 유리한 학습법인지 고민하면 되니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에게 유리한 지점들을 빠르게 찾아내 적용하는 것은 이제 학생들의 몫이 된다.

 

밭은 기침으로 가슴께가 저릿해도 쉬지 않고 학생들이 써 내려간 답변들을 읽고 채점했다. 너무 납작하고 단편적인 '점수' 말고 그 너머의 것들을 읽어낼 학생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무수한 성장들을 기대하며 버티는 시간이다. 메타인지의 시작은 나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잘 아는 것이고 그 출발은 무수한 시험 과정들에서 톺아내는 것일 터. 학생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가득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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