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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Nov 01. 2024

아이가 만들어 온 트로피

내가 네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니

 

 

아이가 학교에서 트로피를 만들어 왔다. 사실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나 자랑거리를 쉬이 감추지 않는 아이인지라 며칠 전부터 몇 번이나 힌트를 줬던 트로피였다. 학교에서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누군가에게 상장을 만들어 주는 시간이 있다, 그런데 그거 사실 엄마한테 줄 거다, 기대하고 있어라 등등. 좋은 영향이라니 내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준 걸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오늘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한껏 들뜬 얼굴로 가방에서 트로피를 꺼냈다. 종이를 접어 만든, 작고 귀여운 보라색 트로피가 하늘하늘 흔들렸다. “저는 엄마 덕분에 성대모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트로피의 의미에 차마 참지 못한 웃음이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다. 이게 무어냐 물으니 설명인즉슨, 엄마가 평소에 책 읽을 때 캐릭터 목소리를 다양하게 내주어서 그걸 따라 하다 보니 자기도 성대모사를 잘하게 되었다는 것. 참으로 아이다운 발상의 칭찬이 담긴 트로피라는 생각을 했다. 좋은 영향을 준 사람으로 나를 떠올린 그 마음이 고맙고 또 기특했다.

 

 

거창하게 책육아를 했다고는 명함도 못 내민다. 목이 아픈 날에는 잠자리 독서를 회피하기도 했고 시간이 늦은 날에는 딱 한 권만 고르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주는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임했다. 실감 나게 내용을 전달하려 무수히도 노력하면서 (개인적으로 모든 종류의 책 낭독을 정말 좋아하고 즐긴다) 마음 다 해 책을 읽었다. 그런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캐릭터 목소리였는데 남녀노소 특징은 물론 동물의 목소리까지도 캐릭터를 살려 최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포켓몬 캐릭터의 목소리를 따라 하는 것도 당연지사. 신기함 반, 경이로움 반. 아이는 그런 나의 능력을 대단하게 여겼고 자신도 나의 음성을 옹알옹알 따라 하기도 했다. 한글조차 읽지 못했던 더 어린 나이에도 자주 읽었던 책은 혼자서 (글자를 읽은 게 아니라 외운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읽었던 톤과 억양 그대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제가 경험하고 들었던 것을 꼭꼭 기억에 담아 두었다가 그대로 배출하는 능력은 실상 아이 고유의 것임에 틀림없는데 아이는 그 공을 내게 돌려 트로피를 선물했다. 그 보드랍고 다정한 마음이 고마워 아이를 품에 꼭 안고 엉덩이를 힘껏 좌우로 흔들었다. 예상치 못한 어떤 순간에 지친 나의 에너지를 한껏 끌어올리는 선물 같은 순간을 잊지 않기로 한다. 네가 내게 준 트로피의 진짜 의미를, 깊고 따뜻한 사랑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아이의 이런 모습들을 자랑하는 글을 당당히 남기기로 한다. 이거, 자랑하는 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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