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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Nov 04. 2024

사소하고도 오래된 습관

난 때때로 내 머리카락을 만져


 

이십 대 중반부터 줄곧 짧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했다. 단골 미용실에 방문해 길이를 다듬을 때마다 요구하는 멘트도 항상 같다. '숏 컷도 아니고 단발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이제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스타일을 맞춰 주신다. 오히려 기장이 긴 머리 스타일을 상상하기 조차 힘들어진 내가 영유아기부터 줄곧 고수하고 있는 습관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머리카락 만지기. 

 

 

짧은 머리 스타일로 그 습관이 어떻게 유지되느냐 묻는다면 글쎄, 이 습관은 머리카락 길이와 전연 관계가 없다.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일은 결코 없지만 스포츠형 헤어스타일의 남성 머리로도 가능할 것임에 틀림없다.) 엄지와 검지로 머리카락 일부를 잡고 천천히 비비거나 베베 꼬는 식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오른손과 왼손 중 어느 쪽 손을 쓰느냐에 따라 해당 방향의 옆머리를 일부 끄집어내어 비비고 만지는 식이다. 머리카락을 정돈하기 위함도 아니고, 현재 머릿결을 점검하기 위함도 아니다. 이유가 없다. '그냥' 만진다. 이 오랜 습관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인 것이어서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없이 발생하는 일이 다반사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굳이 그 출발을 꼽아보자면 젖먹이 때로 시간을 돌려야 한다. 어느 정도 스스로 몸을 가눌 줄 알 때쯤, 젖병으로 분유 수유를 하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나의 주양육자는 할머니였는데, 아무리 양손으로 젖병을 쥐고 먹는 것을 가르쳐 주어도 어린 나는 한 손으로만 젖병을 잡고 나머지 한 손은 허공에 둥둥 띄워 놓고 놀았단다. 어디에도 닿지 않고 휘청이는 한 손이 영 마뜩잖고 불안정해 보였던 할머니는 제 머리칼이라도 만지라며 놀고 있는 손을 매번 머리 쪽에 붙여주셨다나. 여러 번 반복 끝에 한 손은 머리카락, 한 손은 젖병을 쥔 자세가 완성되었다. 그 때 머리카락을 갖고 놀던 모양새가 딱 지금 내가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모양새와 똑같다(고 부모님이 알려주셨다.).  

 

 

부러 찾아가며 몸에 새기고 싶은 습관들을 루틴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뇌에까지 흔적을 새기려 적어도 20일은 흐트러짐 없이 반복하는, 일명 '좋은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가 인기 있는 요즘이다. 나의 머리카락 만지기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우연히 형성된 습관이고 좋고 나쁨을 논할 어떤 범주에 속하지도 않는다. (굳이 없애고 싶은 나쁜 습관도 아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생긴, 이 사소하고도 오래된 습관에 묻어있는 사연과 향수가 좋다. 할머니, 분유, 따스함, 편안함, 안정감, 안도감, 부드러움 같은 것들. 실제로 밀접한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아무 때나 머리카락을 매만지지는 않는단다. 뭔가를 깊이 고민할 때, 불안할 때, 혹은 심심할 때(적적할 때) 머리카락으로 손이 절로 움직인다나. 오늘 하루는 각자가 가진 '우연한' 혹은 '이유 없는' 습관들을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습관 안에 당신의 무엇이 담겨 있을지 모를 일이다. 

 

 

(+) 오늘, 이 글을 쓰는 그 잠깐 동안에도 아마 몇 번은 손가락이 머리카락에 올라왔을 거라 예상한다. 오늘따라 글이 참 안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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