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횡재를 포기하는 마음
함께 글을 쓰는 문우들이 있다. 문우들과 함께 따뜻한 밥을 지어먹듯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정성스레 지어낸 지도 벌써 2년 차가 되었다. 처음 목표는 간단했다. 꾸준한 글쓰기. 소위 우리도 글쓰기 근육을 한 번 만들어보자는 것이 시작이었다.
1년이 넘어서면서 무수한 글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개인적으로 애정이 큰 글, 글 자체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몹시 좋은 글, 많은 이들이 울고 웃는 공감력이 높은 글 … 제각기 다른 매력 혹은 주제 별로 분류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글들이 모였다. 그러다 보니 공모전으로도 눈을 돌리게 됐다. 아주 가끔이었지만 눈에 띈 공모전이 있으면 쌓인 글들 중 적합한 글을 꺼내어 응모했다. 그냥 그것이 전부였다. 응모를 한다고 해서 당선이 될 거라는 기대는 전연 없었고, 공모전에 나의 글을 보내는 과정과 마음 그 자체에 조금 더 많은 가치와 무게를 두었다. 쓰는 삶의 연장선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며칠 전에도 공모전에 글을 투고했다. 그러고서는 늘 그랬던 것처럼 까무룩 잊고 있었다. 지인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 공모전 주최 측에서 온 문자였다. 메일을 확인하고 답을 달라는 내용의 문자. 다급히 메일을 열었다. [당선 내정 및 등단 절차 안내] 제목에서부터 눈이 번쩍 뜨였다. 당선이라니? 내가? 메일을 클릭하니 이번에 투고한 수필 당선과 관련한 긴 설명이 이어진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수록 자꾸만 힘이 빠진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투고한 수필은 현재 당선 내정인 상태로 당선 확정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를 요구했다. 사진, 당선소감, 후원금. 사진도 당선소감도 오케이. 그런데 후원금이라니 당최 이게 무슨 말인가. 조금 더 읽어보니 당선작이 실릴 등단지 수령부수에 따른 최소 비용(금액은 밝히지 않겠다)을 요구하고 있다. 기한 내에 이 제안을 자유롭게 수락 혹은 거부할 수 있다는 설명도 보인다. 그렇단 말은 내가 이 제안을 거부하면 다른 사람에게 또 똑같은 연락이 가는 걸까? 지금 나의 이 당선은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중요도와 무게로 이해하는 것이 옳단 말인가?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연이 닿아있는 주변 작가님들께 직접 문의를 해 가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영세한 문예지나 계간지에서는 그 맥을 이어나가기 위해 오늘 내게 제안한 것과 같은 후원금 요구가 통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신종 기법의 사기는 아니구나,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입 안이 자꾸만 썼다. 이러한 세태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 다만 선택은 해야 했다.
공모전 당선 자격을 포기하기로 했다. 당선 자체에 대해서까지 뻗었던 의심의 안개는 말끔히 거두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나의 글이 그들의 눈에 들었다는, 이 정도 선에서는 필력이 인정되었다는 점은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딱 거기까지. 그 이상의 불확실한 횡재에 대해서는 탐하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는 편이 보다 내게 걸맞는 옷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유료 등단은 덥석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금액의 문제가 아니다. 뭔가 정당하지 않은 일을 하는 기분을 씻어낼 수가 없고, 그런 기분이 덕지덕지 묻은 채로 나의 글 생활 혹은 작가 생활이 시작된다면 몹시 부끄럽고 속상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 당선 여부와 별개로 매일 꾸준히, 열심히 글을 쓰는 이 삶은 오래토록 지속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칭찬 스티커 하나를 가슴팍에 커다랗게 붙이고 기꺼이 다음 글을 짓기로 한다.
어쩐지 포기한 뒤가 더 말끔하고 가볍다. 이제야 기꺼이 나의 당선을 기뻐하며 축배를 들고 싶어 진다. 계속해서 쓸 것. 이 시간에도 열심히 쓰고 있을 모든 이들의 시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