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아침부터 아이가 분주하다. 오후에 학원에서 할로윈 행사를 하는데 따로 코스튬 같은 것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즐겨 쓰던 잡다한 소품들마저 최근 방 정리를 하면서 모조리 버린 터라 그 흔한 동물 머리띠나(남자 아이다) 판박이 스티커도 없었다. 급한 대로 네임펜을 들어 아이 손등에 거미줄과 거미를 그려주었다. 그 작은 선 몇 개에 신난 아이가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아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무거운 마음을 쓰다듬었다. 올해는 이태원 참사 2주년이다. 벌써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사라진 것 같은 그 날의 끔찍한 사고. 힘없이 꺼졌던 어린 생명들. 유일무이한 존재들. 그들이 자꾸만 내 발목을 붙잡았다.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 사고를 두고, 이 사고의 피해자들을 두고 몹시 편협한 말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사람 많은 데 뭣 하러 모여서 놀았느냐, 죽을 줄 몰랐느냐, 쓸데없이 놀러 나갔다가 죽었지 않냐, 알아서 조심해야지 술에 취해 돌아다닌 것 아니냐, 야한 옷 입고 정신 놓고 놀려고 했던 거 아니냐 등등 … 셀 수 없이 따갑고 날 선 말들이 들려왔다. 진짜 그럴까. 정말 그것뿐인가.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일상”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다. 아침에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아이가 다시 활짝 웃으며 현관문으로 돌아오는 일이 몹시도 익숙한 나머지 우리는 살아있음에 대한 기적을, 생경함을, 비정상적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산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오히려 기적이고 비정상적이라 여기는 나로서는 한순간에 그들의 무너진 일상이 자꾸만 떠오른다. 평소처럼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고, 평소처럼 할로윈 파티를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섰고, 평소처럼 많은 인파들에 놀라면서도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을 것이 분명한 일상의 어떤 풍경들. 그것이 마지막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한채 부지불식간에 납작해져 버린 일상의 어떤 순간들. 오늘 아침 내 아이가 손등에 거미줄 그림을 그리고 집을 나선 것과 그들이 할로윈 분장을 하고 집을 나선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일상이었다는 것, 그것 말고는 잘못이 없다.
우리는 온전한 애도를 마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재난이나 사고로 겪게 되는 이별은 또 다른 상흔들을 남긴다. 외상적이고 비현실감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사별 앞에서 우리는 상실과 관련된 무력감을 경험하게 마련이고 그에 맞서기 위해 분노를 끌고 올 수밖에 없어진다. 평범한 일상이 너무 손쉽게 무러 져 내린 모든 것들을 향해 고함치고, 원망하고, 화를 내고 싶어 진다. 그 사건으로 소중한 자녀들을 잃었을 부모님들은 수년 간, 아니 평생 지속되는 애도 반응을 격을 것이고(12개월 이상 심각한 애도 반응이 지속되는 것을 복잡성 애도라 하며, 해결해야 하는 심리적 상처다) 끊임없이 자책하는 것은 물론 일상으로의 복귀나 심리적 회복이 어려울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무너뜨렸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빼앗겼다.
무거운 그리움에 그 날을 담아본다.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그리움.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차갑게 식어갔던 많은 생명들이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