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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Nov 13. 2024

이게 무슨 맛이야!

몹시 더럽고 그래서 웃긴 기억 하나

 

 

원래 오늘 자로 발행하려고 쓰고 있던 글을 (저장해 두고는) 과감히 덮었다. 아무래도 오늘이 지나기 전에 이 글을 써야겠다. 단순하고 별 것 아닌 기억이지만 나의 웃음창고에 콕 박혀있는 기억 조각에 관한 글이다.

 

엄마는 지저분한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어쩔 수 없이 쌓이는 일상 먼지들, 사소한 부스러기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부러 어지럽히지 않아도 사람이 살아가며 흘리는 무수한 흔적들이 엄마에게는 모두 치워야 할 무엇에 해당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두꺼운 테이프를 한 바퀴 휘감아 만든 찍찍이를 손목에 끼우고서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머리카락을 쩍! 쩍! 소리와 함께 수집했고 가구와 바닥의 먼지들을 열심히 쓸고 닦았다. 그것은 엄마의 중요한 일과이기도 했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랐으니 무엇 하나 행동거지가 자유롭지 않았다. 특히 부스러기가 많이 날리는 과자(웨하스, 애플파이, 비스킷 등)는 극도로 혐오했는데, 아예 못 먹게 할 수는 없으니 커다란 쟁반 하나에 과자를 그득 담아 건네는 것으로 보호막을 마련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입에 과자를 넣을 때 쓰읍! 숨을 들이마시며 잘라먹는 것을 거듭 설명했고(잘못 숨을 삼키면 사레들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먹을 때마다 쟁반 가까이에 얼굴을 갖다 대거나 혹은 쟁반을 들어 턱 아래를 받치도록 가르쳤다. 세뇌의 힘은 엄청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가르침에 따라 부스러기들을 바닥에 흘리지 않고 과자를 먹는 데에 도가 텄다. 

 

그 날은 간식으로 제크를 먹었다. 짭짤하고 고소한 동그란 과자. 다급히 엄마가 준 나무 쟁반을 들고 야금야금 과자를 음미하는 시간은 퍽 달콤하고 행복했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짤랑짤랑 흔들며 좋아하는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무용한 시간을 진하게 즐겼다. 유유자적 혼자만의 간식 타임을 즐기고 있는데 내 곁에 앉는 엄마의 입술이 앙, 힘이 잔뜩 들어갔다. 무언가 불만스럽다는 의미다. 알면서도 모른 척 나만의 여유를 즐겼다.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어휴, 부스러기를 뭐 이렇게 많이 흘렸대~ 아깝게!"

 

바닥에 흘린 것도, 소파에 흘린 것도 아닌데 엄마는 미간에 내 천자(川)를 굵게 새기며 투덜댔다. 쟁반 위에 눈처럼 흩뿌려진 과자 부스러기에 대한 불만 표현이었다. '이 정도면 양호하구먼' 속으로 말을 삼키는데 엄마가 다짜고짜 검지 손가락으로 부스러기들을 꾹꾹 눌러 찍어낸다.    

  

"이거 다 모으면 과자 하나 나오겠네, 나오겠어!"

 

차곡차곡 눌러 모은 과자 부스러기는 엄마 검지 손가락 바닥면에 딱 달라붙었다. 자그마한 부스러기 뭉치가 엄마 입으로 직행한다. 오물오물 엄마의 입술이 바삐 움직인다.

 

"어머 얘, 이거 너무 짭짤하다. 다음에는 다른 거 사줄게~"

 

엄마가 입 안에 들어찬 부스러기를 우물거리는데 일순간 내가 굳었다. '세상에, 엄마. 그거 과자 부스러기만 있었던 거 아닌데! 엄마가 그걸 먹을 줄 몰랐지 나는!' 아...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뇌가 멈춘 기분이다.

 

"엄마... 그... 거기 내 코딱지도 있었는데..."

 

 

 

어머 얘!!! 엄마의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이 거실을 가른다. 퉤 퉤 퉤, 아무리 혀를 날름거려도 진즉에 엄마의 목구멍을 넘어간 과자 아니, 코딱지 콜라보 과자 부스러기가 튀어나올 리가 만무하다. 아연실색한 엄마의 표정이 휘청인다. 

 

"아니, 과자 부스러기를 그렇게 다 모아 먹을 줄 몰랐지..."

"얘, 과자 부스러기 사이에 코딱지가 있는 게 더 이상하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말도 안 되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코딱지 테러 현장에서 뜨악한 표정의 엄마와 끔벅끔벅 두 눈을 깜빡이는 나의 시선이 얽힌다.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진다. 어우 얼마나 딸이 좋으면 코딱지까지 먹어 주느냐, 은근히 과자 부스러기랑 내 코딱지가 좀 닮은 것 같다, 어차피 흘린 부스러기니까 아무 생각 없이 코딱지도 같이 버렸다, 먹기 전에 말을 해 주지 그랬느냐, 진짜 먹을 줄 알았겠느냐 등등 무수한 말들이 웃음 사이사이 끼어들어 소리를 증폭시킨다. 깔깔 터진 웃음보는 멈출 줄을 모른다. 좀처럼 웃을 일 없던 그 시절의 엄마와 내가 배를 움켜쥐고 끅끅 웃고 울기를 반복했다. 

 

 

 

오늘 저녁, 엄마가 채 식지 않은 토치의 스테인리스 끝에 팔이 닿아 화상을 입었다. 운동을 하다 말고 뛰어나와 24시간 화상 병원에 다녀왔다. 다급하게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와 코딱지 이야기를 하다 불현듯 이 장면이 펑! 떠올랐다. 그저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웃음이 튀어나와 여러 번 숨을 고르며 이야기를 이었다. 박장대소하는 아이 곁에 발그레한 얼굴의 엄마가 함께 미소를 짓는다. 엄마에게 이 날의 기억은 어떤 색채인 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다. 아니, 엄마도 이 기억이 진하게 새겨져 있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 나에게는 웃음버튼 그 자체인 좋은 기억이 어쩌면 엄마에게는 엄청난 더러운 경험으로 새겨져 있지는 않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한 엄마의 표정으로 추측컨대 모르긴 몰라도 나쁜 기억은 아닐 거라는 확신도 든다. 

 

나 진짜 과자 부스러기 사이에 끼어든 코딱지가 감쪽같이 위장에 능한 줄 정말 몰랐다구, 엄마. 우리 그 때 진짜 즐거웠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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