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교환독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옥대장님께.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앉습니다. 침대 아래, 좁은 공간에 나란히 누웠던 할머니와 오스카처럼 무언가에 잔뜩 짓눌려 있어요. 그간 읽었던 무수한 책들 중, 이토록 저를 코너로 몰아넣고 옥죄어오는 책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이것 이상의 감정과 통증을 느낄 만한 책은 없을 것 같다는 사실에 온 몸이 파르르 떨리기도 합니다.
쓸 말을 찾아보지만 제게 남아있는 단어가 없습니다. 며칠 전, 함께 필리프 베송의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를 읽고 독서모임을 했지요. 세 번을 읽었는데도 자꾸만 하고싶은 말보다 할수없는 말이 많아지는 책. 지난 편지에서도 말했지만 연이어 책을 따라 여러 죽음들이 저를 덮쳐오는 시기입니다.
사실 저는 죽음 그 자체가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은데요. (할아버지 죽음 이후로 그렇게 되었지요) 남겨진 것들은 무섭습니다. 파편처럼 남아있을 마음과 존재들과 형체없는 슬픔 말예요. 그러니까, 저의 죽음 이후에 남겨질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혹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후 남겨진 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911 테러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넘어가기가 힘들겠어요. 섬광 기억이라고들 하죠. 제게 몇 안 되는 섬광 기억 중에 911 테러도 목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날, 화장실과 거실을 오가며 졸린 눈으로 양치를 하고 있었지요. 그게 아침이었는지, 밤이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지만 집안을 서성이며 양치를 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켜져 있던 TV에서는 비행기와 건물이 충돌하는 장면이 송출되고 있었는데 막연히 영화의 한 장면이라 생각하며 입을 헹구러 화장실로 들어간 것도 선연히 그려집니다. 개운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거실에 발을 들이는데 어쩜, 조금 전에 보았던 장면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데자뷰라도 경험하는 건가, 그렇다기에 너무 똑같은 화면이지 않은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쇼파에 주저 앉았습니다. 차라리 영화의 한 장면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예요.
물리적 땅덩어리의 거리도, 하루를 살아가는 시간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저였지만 911 테러, 그 사건은 엄청난 충격과 공포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들은요. 남겨진 가족들은요. 감히 제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감히, 제가 무어라고. 그것을 넘겨짚어보고 상상하는 것도 죄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재앙같은 사건은 비단 911 테러만은 아니지요.
복잡성 애도(complicated grief)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애도 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심한 애도 반응이 최소 12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정신 및 사회적 기능이 손상되는 경우는 말해요. 또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되다가 6개월 가량 지난 후 갑자기, 불현듯, 예기치 않은 어떤 장면에서 슬픔의 감정이 한 사람을 삼킬 듯 넘쳐흐르는 형태도 있습니다. 저는 아빠를 잃은 오스카와 자식을 잃은 할머니, 그리고 남편을 잃은 아내 모두에게서 복잡성 애도를 읽어냅니다. 그 끝없는 심연을 알 수 없기에 이렇게 설명하기 힘든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잡성 애도는 오스카의 아버지처럼 예상치 못한, 외상성 죽음에도 나타나지만 시신 수습조차 되지 않은 실종 상태에서도 나타납니다. (물론, 비어있던 관을 떠올리자니 오스카의 아빠는 시신 수습조차 되질 않았네요) 제가 마지막으로 읽은 페이지에는, 늘 편지글로만 마주했던 오스카 할아버지가 정말로 돌아왔습니다. 언니의 연인이었던 남자, 할머니의 첫 사랑, 어디에도 발 붙이지 못했던 남자. 그 오랜 시간 할머니에게는 남편에 대한 복잡성 애도도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모든 관계가, 마음이 뒤엉키고 복잡합니다.
동시에 다시 떠올립니다. 저희 할아버지 말예요. 갑작스런 죽음이 아니었고(늘 편찮으셨으니까요. 연세도 많으셨고.) 외상성 죽음이라고 할 것 까진 없지요. 시신 수습도 매우 잘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팠지요. 오랜 기간 말을 잃고, 생기를 잃고, 감정을 잃었어요. 어쩌면 애도는 무너진 마음이 다시 한 톨씩 쌓여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넓은 사막에서 모래 한 알을 옮기는 일만큼이나 단순하지만 그래서 대단하고 또 힘든 일. 이 이야기가 저를 어디까지 데려갈 지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흘러간대도 좋으니 부디 모두가 지금보다는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막연한 기도를 허공에 날려봅니다.
아무런 판단 없이 제 이야기에 맞장구 쳐주는 옥대장님의 다정한 음성과 손길이 그리운 저녁입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이 돌덩이를, 저는 아무래도 한동안 가슴에 묵직하게 올려두고 지낼 것 같아요.
밤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