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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Dec 28. 2023

내가 만난 신기한 세 여자

그녀들에게 보내는 나의 작고 수줍 마음



          

눈물이 참 많다. 이정도면 매 시간 눈물만 1리터씩 생성하는 기관이 몸 안에 따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쏟아내는 양으로만 따지자면 몸 속 수분이 모조리 빠져나가 결국 바싹 메말라버리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다. 많은 눈물에 담아 쏟아낸 마음들을 채우기 위해서일까, 어마어마한 대식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이 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 참 복스럽고 맛있게, 많은 양의 음식들을 차곡차곡 포개듯 몸속으로 채워 넣는다. 먹는 양에 비해 몸은 좀처럼 불어나지 않는다. 아, 이쯤 되니 그녀가 먹는 음식이 곧 그 많은 눈물을 생성하는 에너지원일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강렬해진다. 먹는 족족 눈물로 쏟아내니, 계속 채워야만 하는 게 아닐까. 눈물이 많으면 다른 정서도 강렬하게 뿜어져 나올 것 같겠지만, 또 그건 아니다. 이렇게까지 화를 안 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그 누구를 향해서든,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거나 인상 찌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웃는 얼굴이다. 물론, 이 웃음도 강렬하게 뿜어져 나온다기보다는 은은하고 고요하게 얼굴 가득 퍼져있다. A는 그런 사람이다.      



나더러 예쁘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일단 의심해야 한다. 미의 기준이 퍽 이상한 사람이다. 우리 할머니, 엄마, 아빠까지도 나더러 늘 몬순이라고 불렀다. 아빠는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딸을 두고 다마내기(양파의 방언)라고도 했다. 조금의 죄책감이나 머뭇거림도 없는 표현들이었다. 나도 눈이 있다. 성형학적 미의 잣대를 두고 보건대, 나는 예쁜 얼굴이 아니다. 또 하나 더. 그저 사람이라면 다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뭘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한 번도 없다. 그녀에게서 안 된다는 소리를 듣기란 참 힘든 일이다. 하긴,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무언가를 제안했을 때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고민거리를 마구잡이로 던져도 그녀에게만 들어가면 뭐든 ‘된다.’는 출력 값이 튀어 나온다. 도대체 당신이 고려할 수 있는 수많은 대안 중에 ‘안 된다.’는 방향의 답이 있긴 한가,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을 때도 많다. 체력도 좋고, 자아도 6개나 된다. 자아 3개로 살고 있는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다. 겨우 자아 3개도 제대로 건사하기가 힘들어 허덕거리는 나와 달리, 그녀는 그 많은 자아들을 평온하게 품어주기에도 바쁘다. 이 사람이 B다.     



이상한 걸로 따지자면 C가 제일 이상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것 하나 나와 닮은 구석이 없다. 외모나 체형만의 문제가 아니다. 취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문제 대처방식도 다르다. 그냥 나랑 많은 부분, 반대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랑 잘 맞다. 부러 맞춰주는 것도 아닌데 잘 맞다. 그녀는 많은 시간 책 속에 파묻혀 산다. 책이 곧 그녀고, 그녀가 곧 책이기도 하다. 노안이 와서 눈이 불편하다고 툴툴 대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책만 품는 게 아니다. 그녀는 매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 읽고, 이해하고 품는다. ‘그럴 수도 있지.’ 그녀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싶은 지점들마다 입이 절로 떡 벌어진다. 세상에 이유 없는 마음은 없다고 버릇처럼 말하는 건 분명 나인데, 그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건 그녀임에 틀림없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 “못하겠다, 힘들다” 같은 말들을 입버릇처럼 하는데, 막상 닥치고 보면 못하는 일도, 힘든 일도 없는 사람 같다. 처음에는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닐까 했다. 그건 아니다. 입술이 터지기도 하고 여성 기관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 입버릇처럼 흘러나오는 게 또 하나 더 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시원한 트림을 자주 쏟아낸다.      


     

태어나 내가 만난, 신기하고 이상한 세 여자들과 함께 1년 간 글을 썼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가 나눈 것이 어디 글뿐이겠는가. 그녀들은 지난 1년 간 사랑으로 나를 먹여 살렸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무한한 애정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넘치는 마음들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낯설고 신기한 그녀들과 함께인 내가 좋다. 그녀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까지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 곱고 보드라운 사람이 되는 것을 즐긴다. 나의 이 간질간질한 마음을 와르르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나는 평소에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렇게 또 글로 풀어내고 있다. 이게 나다.     



A의 눈물은 때때로 나를 흠뻑 적신다. 어지간한 일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나는, 어쩌면 자연스럽고 시원하게 우는 법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눈물 많은 그녀가 좋다. 그녀의 눈물에 함께 녹아들며 간접 눈물 샤워를 한다. 그녀의 눈물을 가만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마음도 몽글몽글 보드라워진다. 또 우느냐고 타박하면서 뒤돌아 휴지를 가지러가는 길, 나만의 다정함을 휴지에 가득 묻혀 그녀에게 건넬 생각에 씨익,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언젠가 그녀가 내 앞에서 크게 소리도 지르고, 쌓여있던 울분을 왁! 토하듯 쏟아냈으면 좋겠다. 눈물 말고 다른, 그녀 안에 응어리져있는 조각들이 튀어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두 말 않고 나는 두 팔 크게 벌려 그녀를 담뿍 안아줄 텐데. 할머니처럼 너르고 따스한 그녀의 품에 나만 만날 폭 안겨 있는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맙다.      



오늘로 삼일 째, 계단을 오른다. 그 덕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은 퍽 숨차고 고되다. B 덕에 벌어진 일이다. ‘된다.’ 출력 값이 또 한 몫 했다. 3kg 정도만 감량하면 좋겠다는 나의 푸념에 그녀는 대번 ‘같이 하자, 하면 되지!’라고 받아쳤다. 아, 그녀에게만 가면 많은 것들이 가볍고 명료해진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 그만큼 자아가 하나씩 늘어난대.’ 그 언젠가 지인에게 들었던 말이다. B는 네 아이의 엄마다. 남편의 자아와 자신의 자아까지, 총 6개의 자아를 거느리고 산다. 심지어 평온하다. 여러 개의 자아 때문에 지쳐서 녹아내리는 그녀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가능한 일일까, 감히 상상조차 안 되는 나는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그녀의 자아들을 바라본다. 무한 긍정과 수용에 가까운 ‘된다.’는 그녀만의 방향은 어쩌면 그 다양하고 많은 자아들 덕인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이 모든 것이 그녀만이 가진 엄청난 능력인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녀도 알면 좋겠다. 그녀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다 된다, 뭐든. 그녀 곁에서 내가 뭐든 다 되는 것처럼.     



서른 셋, 교통사고처럼 맞닥뜨린 우울의 긴 터널을 C 덕에 빠져나왔다. C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책 덕분이었다. 그녀가 먼저 내게 함께 읽자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다시 삶을 사랑하기까지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맞춰 살려면, 서로의 모난 귀퉁이를 갈고 갈아서 이를 딱 맞춰야 한다던데. 처음부터 많은 것이 다른 우리 사이에는 오히려 채워 넣을 것이 많았나 보다. 공감으로, 배려로, 배움으로, 또 막연한 애정으로 그 공간들을 채웠다. 바람이 솔솔 통하는 그 너른 틈에 미운 것들 말고 좋은 것들로만 채우고 싶었는데 여전히 그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참, 나는 그녀의 시원한 트림 소리가 진심으로 좋다. 불현 듯 터져 나와 우리 사이의 정적을 깨는 것도, 대답 대신 크르릉 울려 퍼지는 것도, 나를 가만 불러주는 것처럼 들리는 것도 다 좋다. 나는 트림을 시원하게 못한다. 아아, 이마저도 다르다, 우리 둘은.  



늘 결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였다. 처음부터 끝을 바라보며 관계를 맺었다. 연인과만 그랬던 게 아니란 뜻이다. 나와 비슷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은 애초에 근처에도 못 올 정도로 높은 장벽을 쌓고, 촘촘한 채에 분류하고 걸러냈다. 그러니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거의 나의 분신 격이었다. 소울 메이트라고 이름을 붙여가며 쌍둥이 같은 (몇 안 되는) 그들과 외딴 섬에서 정을 나눴다. 다시 생각하니 이상한 습관이다. 



확신한다. 이 이상하고도 신기한, 낯선 세 사람이 서른일곱, 지금 이 순간 나의 소울 메이트다. 내가 못 하는 것들을 잘 해서 좋고, 나를 가능한 사람이 되게 해 주어 좋고, 나와 전혀 달라서 좋다. A 덕에 나는 쉬이 알기 힘든 감정의 너울을 경험한다. B 덕에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멋지고 예쁜 사람이 된다. C 덕에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가 180도에서 360도로 무려 2배나 확장됐다. 이 이상한 사람들 곁에, 누구보다 가장 이상한 내가 대롱대롱 붙어있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상상해보려다 관둔다. 그 무엇이든 이들과 함께라면 ‘만사 오케이!’라고 혼자 읊조린다.      



그러니까, 이 글은,

몹시도 진하고 끈적거리는 ‘사랑’에 관한 글이다. 그렇다고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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